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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바베트의 만찬’&‘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갑자기 굴러온 복권 대박 … 그리고 우여곡절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1627@hotmail.com

갑자기 굴러온 복권 대박 … 그리고 우여곡절

갑자기 굴러온 복권 대박 … 그리고 우여곡절

‘바베트의 만찬’

또 들려오는 담뱃값 인상 소식으로 애연가들은 다시 한번 햄릿이 되게 생겼다.

‘담배, 끊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흡연자의 숙명적인 고민이다.

이들에게 “담뱃값이 오르면 금연을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보다 더 많이 “그렇다”는 대답을 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이 흥미롭다.

역설적이지만 흡연자에 대한 여러 조사 결과는 하나같이 못 배우고 못사는 사람들이 더 많이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연율이나 금연 시도율도 저소득과 저학력 계층이 훨씬 낮다. 부국과 빈국으로 대상을 넓혀보아도 전 세계 담배 가운데 60%가 개발도상국에서 소비된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가 있다.

같은 2500원이라도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부담이 부자의 그것과는 같지 않을 텐데, 이들은 왜 이렇게 몸에도 해로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걸까. 경제학에서 말하는 ‘투자 대비 효용가치’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체재를 별로 찾을 수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담배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간편한 기호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이들과 담배 소비는 역설이 아닌 정비례의 상관관계라는 것이 오히려 수긍이 간다.



이런 면에서 담배와 비슷한 게 복권이다. 복권이 잘 팔리는 동네를 조사해보면 십중팔구 부유층 지역보다는 빈곤 지역이 더 많다. 복권을 흔히 ‘가난한 자에게 물리는 세금’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이 세금이라는 것을 알고서, 기꺼이 세금을 내는 기분으로 복권을 사는 건 물론 아닐 것이다. 많은 서민들이 왜 주말이면 정해진 일처럼 복권 창구 앞에 줄 지어 서서 복권을 긁는 것일까. 복권은 세금이면서 또한 가난한 자들이 꿈꾸는 기적의 방망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타지 못하는 이들에게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주는 마술이 숨어 있어서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서의 복권이 이를테면 그 같은 놀라운 마술을 부린다.

덴마크의 바닷가 작은 마을, 독신으로 늙어가는 목사 집안의 두 딸. 이들 앞에 요리사 바베트가 찾아온다. 1년 내내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도 없는 이 조용하고 외진 마을에 유일하게 외부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면 복권 배달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바베트는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다. 바베트는 이 당첨금으로 자매 아버지의 생일 만찬을 완벽한 프랑스 식으로 차린다. 바베트의 만찬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생전 처음 맛보는 만찬 음식을 먹으며 오랫동안 닫아왔던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된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인 카렌 블릭센이 고향 덴마크로 돌아가 쓴 소설을 영화로 만든 ‘바베트의 만찬’에서의 복권이야말로 전혀 생각지 못한 행복한 기적을 선물한다.

우여곡절을 겪긴 하지만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서도 복권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뉴욕 경찰관이 커피숍 종업원에게 팁을 줄 잔돈이 없자 복권에 당첨되면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는 정말 400만 달러에 당첨되고 약속대로 돈을 나눠주지만 욕심 많은 아내가 이를 훼방한다. 주인공은 결국 복권을 포기하지만 그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성금이 답지해 복권 당첨된 것과 같은 돈을 얻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복권 당첨은 ‘당신에게 일어날 수는’ 있지만 대부분에게 실제 일어나지는 않는다. 복권은 누구나 당첨을 바라지만 극소수만 그런 행운을 누릴 때만 마술이 연출된다는 데 그 비극이 있다. 가령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을 선물받은 짐 캐리처럼 모든 복권을 당첨시켜 준다면 그건 이미 복권이 아닌 것이다.

번호가 추첨되는 단 몇 초간에 기적을 부르는 요술방망이가 될지 한낱 쓸모없는 종잇조각이 될지 결정되는 것에서도 복권은 ‘두 얼굴’이다. 그러나 이 이중성이야말로 복권의 비극이자, 마력인 것이다.

은퇴한 조폭의 당첨된 로또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린 ‘마파도’에서 거액의 당첨 복권은 그 운명이 위태롭기 때문에 그만큼 황홀한 황금덩어리인 것과도 같다. 어마어마한 금액을 대신하는 증서이기도 하지만, 잃어버리거나 찢어져버리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종이쪽지 한 장이다.

빈곤 인구가 700만명 시대라는데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 그중에서 한 명 뽑는 정도쯤 된다고 한다. 빈곤층이 될 확률은 7명 중 1명꼴인데, 로또 한 장 사서 거기서 벗어날 가능성은 700만분의 1이라는 얘기다. 그 차이를 따져보면 너무나 아득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로또 추첨을 기다리는 ‘7일몽’은 오히려 그래서 한 개비의 담배처럼 달콤하다.



주간동아 2005.09.13 502호 (p33~33)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162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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