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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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은 사격훈련 하지 마?

‘쿠니’ 폐쇄 후 대체 사격장 못 구해 … 한국 공군 ‘필승·직도’ 사격장 제공도 브레이크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5-09-07 13: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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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공군은 사격훈련 하지 마?

    경기 화성 매향리의 쿠니 사격장 일대에 흩어져 있는 포탄껍데기. 쿠니 사격장 폐쇄로 미 공군은 사격장을 잃게 되었다.

    경기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의 쿠니 사격장이 8월31일자로 완전 폐쇄되었다. 6·25전쟁 중인 1951년 잠정적으로 미 공군 사격장으로 조성됐다가 55년 한미행정협정(SOFA·이하 행협)에 따라 정식으로 미 공군 전용 사격장이 된 719만평의 땅과 바다가 ‘총알받이’에서 해방돼 주민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물론 매향리 주민들은 쿠니 사격장 폐쇄를 반긴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한국 공군 이상으로 한반도 방어에 중요한 몫을 해온 미 7공군(오산)은 쿠니를 대체할 새 사격지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초보 조종사 공대지 훈련 연습

    미군 사격장은 행협으로 결정된 사안이라 쿠니를 대체할 새 사격장은 협정 당사자인 한국 외교통상부가 가닥을 잡아줘야 한다. 그러나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는 ‘나는 모른다’며 외면하고 있다. 미 7공군과 동고동락해온 한국 공군만이 해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는데, 정부는 그마저도 중지시켜 버렸다.

    쿠니는 태평양 지역에 있는 미 공군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사격장이었다. 어느 분야이건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매우 중요하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기본 과정’이다. 쿠니는 초보 전투기 조종사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반드시 익혀야 하는 기본 공대지 훈련을 연습하는 곳이었다. 따라서 어느 사격장보다도 붐볐고, 상대적으로 정교하지 않은 사격이 이뤄져온 곳이기도 했다.



    미 태평양 공군은 7공군과 5공군(일본) 11공군(알래스카) 13공군(괌)으로 편성돼 있는데, 이 지역에서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사격장은 여섯 군데였다. 한국에 있는 쿠니-필승(태백산)-직도(군산) 사격장, 일본 오키나와현에 있는 구메지마(久米島)와 도리시마(鳥島) 사격장, 그리고 아오모리(靑森)현의 립소 사격장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가장 큰 것이 쿠니였기에 7공군은 물론이고 5공군 13공군까지 날아와 훈련을 했다. 그런데 이것이 사라졌으니 7공군 사령관(중장)은 같은 오산 기지 안에 있는 한국 공군작전사령관(중장)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고민에 빠진 한국 공군이 찾아낸 해법은 필승과 직도 사격장의 제공이었다. 필승과 직도는 미국 공군의 사격장인데 왜 한국 공군이 이곳을 제공한다고 했을까.

    필승 사격장은 1977년 한미 공군참모총장의 합의에 따라 81년 8월 개장한 전술사격장이다. 부지 제공과 운영은 한국 공군이 맡고 훈련에 필요한 장비는 미 공군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만들어, 양쪽이 5대 5의 비율로 사용하기로 했다.

    미 공군은 사격훈련 하지 마?

    쿠니 사격장 폐지를 반기는 매향리 주민들(위). 태백산에 있는 필승사격장 전경.

    필승은 태백산이라고 하는 험준한 산악지대에 있어, 깊은 계곡에 숨어 있는 목표물을 찾아내 초정밀 공격을 하는 고급 훈련이 이뤄져 왔다. 이곳에는 계곡 사이에 숨어 있는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해 들어오는 전투기를 요격할 목적으로 미군 측이 설치한 일곱 개의 레이더 기지가 있다.

    레이더는 탐색 레이더와 추적 레이더로 나뉜다. 탐색 레이더는 360도 전 방향으로 ‘휘 휘-’ 전파를 쏴 움직이는 물체가 있는지 살핀다. 그러다 수상한 물체가 발견되면 그 하나의 물체에 대해서만 전파를 쏘는 추적 레이더를 바로 가동시킨다. 이어 대공미사일을 발사하는데, 추적 레이더는 이 미사일을 목표물까지 정확히 유도하는 임무도 맡는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가장 두려운 것은 추적 레이더의 전파를 맞았을 경우다. 때문에 전투기에는 추적 레이더 전파를 맞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보장치(RWR)가 있다. 이 경보장치가 울리고 수초 후면 바로 대공미사일이 날아오므로 경보장치가 울리는 순간 조종사는 재빨리 회피 조작에 들어간다.

    “소신 있는 정치인 찾아보기 힘들어”

    가장 대표적인 회피 조작은 은박지와 유사한 채프(chaff)를 방사해 추적 레이더 파를 교란시켜 버리는 것. 추적 레이더가 기능을 잃는 순간 조종사는 급강하 기동으로 초정밀 폭격을 하고 잽싸게 도주하는 것이다. 북한의 주요 전략 시설은 대부분 깊은 계곡에 숨어 있으므로 이곳에서 펼친 훈련은 유사시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공군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처음에는 미 공군도 이곳을 많이 활용했다. 그러나 미 본토의 네바다 사막에는 더 좋은 사격장이 있어 이곳의 이용도는 줄이고 대신 쿠니를 기본 훈련용 사격장으로 많이 활용해왔다. 그 덕분에 필승은 한국 공군이 독점해서 사용하는 사격장이 됐던 것.

    직도는 한국이 8, 미국이 2의 비율로 투자 및 사용하기로 합의하고 건설한 사격장이다. 그러나 쿠니의 이용 빈도가 높아지면서 이곳 또한 한국 공군의 전용 사격장이 되다시피 했다. 한국 공군은 이러한 점을 고려해 미 공군 측에 필승 이용권의 50%, 직도 이용권의 20%를 활용하라고 권유한 것.

    그런데 이것이 일부 언론에 의해 ‘필승이 쿠니를 대체하는 미군 사격장이 되었다’라고 잘못 알려지자, 인근에 있는 강원도 영월군 의회가 ‘필승 사격장을 폐쇄하라’고 들고 나왔다. ‘미 공군은 사용하지 말라’도 아니고, 한국 공군도 사용하지 말고 아예 폐쇄하라는 주장이 나오니 한국 공군도 당황하게 된 것.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에 있는 직도 사격장 문제는 더욱 이상한 쪽으로 변질되었다. 정부는 아예 “미 공군에도 직도 사용권이 있다는 말조차 하지 말라”고 나온 것이다. 수수방관도 아니고 적극적인 저지로 나온 것인데, 여기에는 나름대로 정부의 고충이 있다.

    현재 정부가 최우선시하는 사업은 방사성폐기물유치장(방폐장) 건설이다. 군산시는 방폐장 문제를 놓고 고민하다 유치 신청을 내게 됐는데 정부는 유력한 방폐장 후보지인 군산시가 ‘제2의 부안’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따라서 군산 시민을 자극할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보니 미 공군에 직도 사격장 사용권을 주겠다는 말을 하지도 못하게 한 것.

    ‘쿠니는 닫았고 직도는 안 되고 필승도 곤란하다.’ 그렇다면 한반도 방어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미 7공군은 어디에서 훈련하라는 말인가. 미 공군 사격장 문제에 대해 결정권이 없음에도 동료의식 때문에 발 벗고 나섰던 한국 공군은 정부의 거듭된 저지로 잔뜩 움츠러들었다. 자칫하면 한국 공군이 독자적으로 갖고 있는 사격장을 폐쇄하라는 말이 나와도 정부가 외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한 소식통은 “우리는 극우 보수라고 비난하지만 일본 정치인 사이에서는 독도는 일본 땅이고 자위대를 군대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만큼 일본에는 소신 있는 정치인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진짜 소신을 펼치는 공무원과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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