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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커져라! 성장판

행복은 키 순서? 키 늘이기 대작전 ‘붐’

“성장판 닫히기 전 키우자” 성장클리닉 북적 … 호르몬 주사 맞고 요가까지 단신 탈출 총력

행복은 키 순서? 키 늘이기 대작전 ‘붐’

행복은 키 순서? 키 늘이기 대작전 ‘붐’

어린이들이 전용 스포츠 클럽에서 키를 키우는 데 효과적인 스트레칭을 배우고 있다. 학부모들이 위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돼 있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인 윤정이의 하루는 벽에 붙여놓은 ‘성장 측정’ 자로 키를 재는 것으로 시작한다. 147.5cm. 어젯밤에 쟀을 때는 146cm였다(2004년 초등학교 여학생 6학년 평균 키는 150.3cm).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은 아침엔 눌렸던 척추가 늘어나 밤에 쟀을 때보다 키가 커진다.

윤정이는 팩에 든 한약을 꿀꺽꿀꺽 마셨다. 성장클리닉으로 유명한 한의원에서 지어온 것이다. 다른 일에는 덜렁대는 윤정이지만 이 약만은 절대 잊지 않고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한 달 동안 약을 먹으면 두 달 후에 ‘성장통’이 오는데, 그때 다시 약을 먹게 된다.

윤정이네 가족은 이번 여름방학을 ‘작은 키와의 전쟁’ 기간으로 선포하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 덕분인지 키가 3cm나 컸다. 일주일에 한 번 ‘키 크기 요가’ 수업을 받는데, 수업 없는 날엔 집에서 40만원을 주고 구입한 키 크기 기계에 거꾸로 매달려 스트레칭을 한다.

“성장클리닉에서 제 뼈의 성장판이 거의 닫혀 키가 크지 않을 것이란 말을 들었을 땐 정말 깜짝 놀라 많이 울었어요. 반에서 작은 편에 속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거든요. 물론 지금은 신경 많이 쓰죠. 의사 선생님이 그냥 두면 151cm까지밖에 안 자란다고 하니, 저도 창피할 것 같고, 엄마 아빠도 절대 안 된대요. 방학 때 약도 먹고, 운동도 하니까 키가 자라서 기분이 좋아요.”

우연히 성장판 엑스레이를 찍어본 윤정이에게 의사는 성장판이 거의 닫혔다는 진단을 내렸다. 체지방률이 높아 초등학교 3학년 때 생리를 시작한 데다 신경까지 매우 예민해 이미 키가 다 자랐다는 것이다. 의사는 성장호르몬 주사 맞기에도 너무 늦었다고 했지만, 성장클리닉 한의원에서는 약을 먹으면 157cm까지는 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이 엄마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아이가 그 약을 먹고 10cm가 큰 것을 보고 주저 없이 그 한의원에서 40만원을 주고 일종의 ‘성장탕’을 주문했다.

피부과 의사이자 초등학교 3년생의 학부모인 김모 씨 역시 아이가 표준보다 작아 호르몬 주사를 맞혀야 할지 고려 중이다. 김 씨는 아이의 키를 크게 하려면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 밤 시간에 숙면을 취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학기 중에 아이가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보통 9시. 그 시간에 간식 먹고, 숙제하고 나면 10시 이전에 잠자는 것이 불가능하다. 불규칙한 수면 습관이 성장에 가장 큰 적이긴 하지만, 키도 커야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니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행복은 키 순서? 키 늘이기 대작전 ‘붐’

고려대 구로병원 성장클리닉 송해룡 교수가 ‘골연령’ 엑스레이를 보며 성장클리닉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아들을 서울 한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는 박미영 씨는 “학교 운동회에 갔다 아이 키 번호가 2번인 걸 알고 충격받았다. 요즘 남자들 공부는 기본이고 몸짱, 얼짱 아니면 사회생활 제대로 하기도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라고 말한다. “아기 때 국산 분유보다 훨씬 비싼 수입 분유로 키웠는데 결국 아이 키가 이렇게 작은 걸 보면 소용없었나 보다. 이번에도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성장클리닉에 간 박 씨는 “의료보험도 되지 않는 침과 약을 처방하면서도 아이들로 성황을 이루는 병원을 보고 다시 놀랐다”고 말한다.

박 씨 아들은 일주일에 세 번 성장클리닉에 가서 발목과 무릎에 침을 맞고 단백질 중심으로 식사를 한다. 매일 밤 성장판 자극에 좋다는 줄넘기를 200개 한다. 박 씨는 혹시 아들이 꾀를 낼까봐 옆에서 숫자를 세며 감시한다.

박 씨는 “평소에 외모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던 아이들 아빠가 매일 아이들 키를 재고 ‘골연령’을 본다며 손가락을 들여다본다. 그럴 때면 마치 내 키가 작은 것을 탓하는 듯해 죄지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주위에서도 아빠 키는 큰데 엄마 키가 작을 경우, 엄마들이 아이의 키 문제에 더욱 필사적인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시댁이나 남편으로부터 ‘엄마 닮아 작다’는 말이 듣기 싫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들 요가 시키고, 약 먹이면서도 쉬쉬해요. 스스로 유난 떤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했는데도 키가 크지 않으면 창피해서죠.”



‘얼굴 못생긴 건 용서해도 키 작은 건 용서할 수 없다’는 유머는 이제 진리처럼 받아들여진다. 대중 스타의 필요충분 조건은 큰 키가 되었다. 표정 연기보다 옷과 스포츠카를 돋보이게 하는 7등신이 미디어의 환영을 받는다. 못생긴 얼굴은 ‘쿨하다’고 하지만, 작은 키는 치료가 필요한 일종의 ‘질병’으로 간주된다.

뼈 나이 14~16세 성장판 닫히면 키 교정 사실상 불가능

또한 성형수술은 어른이 된 뒤 언제든 가능하지만, 키의 성장은 의사들에 따르면 ‘뼈의 나이’(실제 연령과 다르다)가 14~16세가 되는 청소년기에 성장판이 닫혀버리고 나면 교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점들이 학부모들의 활화산 같은 책임감과 결코 닫히지 않는 ‘교육열 성장판’을 자극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성장클리닉을 비롯하여 성장 보조제와 키 크기 요가 및 피트니스 등 ‘키 크기 산업’은 우리나라 젊은이들(15~25세)을 아시아 국가 중 가장 큰 키(남자 173.3cm, 여자 160.9cm)로 키워놓았고, 미국 성인(남자 175cm, 여자 162.5cm)과의 차이를 불과 1cm대로 줄여놓았을 정도다.(자료: 상계백병원 성장클리닉)

행복은 키 순서? 키 늘이기 대작전 ‘붐’

어린이들은 성장을 방해하는 음식들에 노출돼있다. 동시에 서구인을 기준으로 한 ‘큰 키’에 대한 갈망도 미디어와 현실 어디에나 있다.

1989년 ‘수술로 키를 늘일 수 있다구요?’란 책을 펴낸 송해룡 고려대 구로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키를 키우는 일리자로프 수술은 왜소증 같은 병적 원인으로 인해 키가 작은 사람들을 위한 수술로 제안한 것인데, 책을 써낸 뒤 키에 대한 관심이 일면서 성장클리닉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요즘은 방학 때 아이 키를 키워보려는 학부모들이 늘어났는데, 몸 만들기를 ‘과외’와 비슷하게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대중 스타를 통해 자기 모델을 찾는 아이들이 큰 키를 희망하는 건 당연하다. 상계백병원이 초·중·고교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상적인 키는 남자 181cm, 여자 169cm로 대답했다.

송 교수는 자신의 대학생 딸의 키는 158cm로 요즘 젊은 세대가 원하는 이상형은 물론이고 평균에도 못 미치지만 한 번도 아버지에게 키를 크게 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며 웃었다.

송 교수의 성장클리닉을 찾은 신수현 군도 방학을 맞아 성장클리닉을 찾은 경우다. 수현이는 만 11세로 138cm(평균은 142cm)이니 크게 작은 키는 아니다. 검사 결과 성장판이 많이 열려 있고, 골연령도 자기 나이를 보이고 있으며, 구루병 검사 및 모든 호르몬 검사에서도 정상치를 보였다. 송 교수가 “‘가족성’으로 인해 키가 좀 작다”고 말하자 수현이의 아버지는 호르몬 주사요법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각종 과외로 지친 상태서 ‘키 키우기 과외’ 추가

아버지 신 씨는 “내 키가 165cm라 사회생활 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고 마음 고생도 많이 했다. 아들도 나처럼 될까 걱정이 크다. 크기 전에 미리 안전장치를 해두려고 왔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네 번 집에서 직접 주사를 놔야 한다는 말에 수현이가 “주사 안 맞겠다”고 겁을 내자 신 씨는 약간 망설이는 듯했으나 “어떻게든 키는 키워놓겠다”고 말했다.

7년 전 울산에 성장클리닉을 낸 한의사 김수성 씨는 “3년 전부터 키 크기 열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요즘은 방학 때마다 오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성장판이 일단 닫히면 키가 크기 어렵지만 골프 등 모임에서 누구네 아이가 어디 가서 키가 컸다고 입소문이 나면 회원들이 모두 그리로 몰려가는 식”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된 단편영화 ‘해피버스데이’는 ‘훌륭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아들의 키를 매일 강제로 늘여 ‘괴물’을 만들어놓은 아버지 이야기로 실제 왜소증을 가진 황정영 씨가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키 늘이기 열풍은 청소년기 아이들 사이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제 생후 4개월 된 아들을 둔 주부 이은지 씨는 시간 날 때마다 아이의 발목과 무릎을 스트레칭해준다. 갓난아이 때부터 성장판 부분을 자극하면 키가 커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강남의 어린이 피트니스 클럽들이나 백화점 문화센터의 ‘아기 요가’ 강좌는 대개 키 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등학교 1학년생 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일요일에 ‘등 맞추러 간다’는 애들도 있다. 키는 클 만큼 컸으니 눌린 척추를 펴서 키를 늘인다는 것이다. 엄마들이 의사보다 더 유식하다”고 말한다. 숨겨진 키 1mm라도 찾아내려는 노력의 결과다.

키에서 남부러울 것이 없을 듯한 패션 모델들도 좀더 큰 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톱모델들을 많이 배출한 동덕여대 스포츠모델학과 황지선 조교는 “99년 학과가 신설됐을 때 163cm 키의 모델도 있고 173cm가 평균이었는데, 올해 신입생들은 전원이 177cm 이상이고, 180cm 이상도 5명이나 된다. 옷과 쇼가 서구 기준으로 맞춰지니 큰 규모의 무대에 어울리는 모델들을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고등학교 땐 다들 ‘한 키’ 된다는 말을 듣던 학생들이 여기 오면 상대적으로 작은 느낌이 들어 키를 키우기 위해 나름의 비법들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 수람기공체조를 가르치는 유영준 교수는 “일부 모델 에이전시들은 키 180cm에 50kg이란 식으로 키와 몸무게로 오디션 제한을 한다. 몸이 근육인지 지방인지에 대해선 전혀 고려가 없다. 몸무게를 더 줄일 수 없는 모델들은 키라도 2~3cm 키우기 위해 척추 늘이기 체조를 하는데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정도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성분을 알 수 없는 약을 먹어 신장이나 간을 해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키 늘이기 열풍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심야의 과외수업 스케줄로 아이들의 잠을 줄이고, 체육시간에 영어수업을 하면서, 또한 어디서나 트랜스지방산이 들어 있는 패스트푸드와 과자들을 팔고, 미디어는 몸무게를 비정상적으로 줄이라고 강요한 뒤, 여기에 ‘키 키우기 과외’를 하나 더 얹었다는 것이다.

김영훈 고려대 스포츠의학실 운동치료사는 “여기서 기구를 통해 키 키우기 운동을 한다. 그러나 밖에서 ‘그냥’ 뛰어노는 것만큼의 효과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키 키우기 수술을 소개한 송해룡 교수는 지금의 키 늘이기 열풍에 꽤 시니컬해져 “우리나라 사람들의 골연령 자료를 모으는 중이다.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의 표준 골연령 데이터가 없어 미국에서 만든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기준도 없는데 어디에 맞춰 키를 키울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송 교수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몸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정상적으로 성장하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병적 원인으로 키가 크지 않는다면, 어렸을 때 이를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래 어린이 100명을 키 순서대로 세워 세 번째 안에 든다면 성장이 멈추기 전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 어렸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잘못된 수면과 식습관을 고친다면, 아이들은 하늘로부터 받아 몸 안에 잠재된 키만큼 클 수 있다. 그것이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몸이 아닌가.



주간동아 2005.08.30 500호 (p56~58)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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