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9

2005.08.23

영웅된 히딩크, 억울한 코엘류, 본프레레는?

대표팀 부진에 경질론 ‘들먹’… 그에게 충분한 시간 주었나

  • 최원창/ 축구전문기자 gerrard@joynews24.com

    입력2005-08-19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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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축구는 거스 히딩크를 통해 인내심을 배웠고 움베르투 코엘류로 인해 그 인내심을 망각했다면, 요하네스 본프레레를 통해 다시 인내심의 심판대에 올랐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 우리는 ‘인내심이 명장을 만든다’는 소중한 진리를 체득했다. 한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극과 극의 반응으로 감독 경질을 반복해왔던 한국 축구가 긴 호흡으로 기다린 끝에 월드컵 4강이라는 믿기 어려운 성과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나무가 클수록 그림자도 큰 법. 어느 순간부터 한국 축구의 모든 잣대는 ‘히딩크’가 돼버렸고, 이후 지휘봉을 잡은 코엘류와 본프레레는 항상 그와 비교되며 성적 부진 때마다 여론의 도마에서 난도질당하고 있다.

    본프레레가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동아시아축구선수권(7월31, 8월7일) 대회에서 중국, 북한, 일본을 상대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최하위의 수모를 당했다. 3경기를 통틀어 51개의 슈팅을 쏟아 붓고도 1골만 성공시킨 최악의 골 결정력에다 ‘숙적’ 일본에 0대 1로 패한 것이 비판 여론의 불길을 순식간에 지펴놓고 말았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의견이 팽배하며 본프레레의 경질론이 대두됐다. 이를 다루는 언론들도 ‘경질해야 한다’는 쪽과 ‘경질은 금물이다’는 쪽으로 나뉘어 연일 상반된 의견을 내놓는다.

    독일월드컵 본선에서의 선전을 위해서는 본프레레의 경질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본프레레를 경질한다면 최선의 대안은 있는가? 그리고 때마다 대두되는 감독의 경질론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

    히딩크는 한국 축구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개혁했다. 기술보다는 체력이 필요하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 전환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대표팀 취재 환경을 바꿔놓았고, ‘파워트레이닝 프로그램’과 ‘과보상 효과’ ‘멀티플레이어론’ ‘러닝디펜스’ ‘서드맨’ 등 다양한 선진 축구 이론을 한국 축구에 접목시켰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는 영웅이 됐다. 자서전이 팔려나갔고, 한국 사회 각 분야에서 ‘히딩크 따라 배우기’가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히딩크에 대한 이미지는 과연 어떤 것일까? 히딩크는 재임 시절 두 차례의 경질 위기에 놓였다. 우선 2001년 8월 체코에 0대 5로 대패한 뒤 이전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전에서 0대 5로 패배한 것과 맞물려 ‘외국인 감독 무용론’이 거세게 불었다.

    잠시 위기를 넘긴 히딩크는 2002년 2월 북중미골드컵과 남미평가전에서 잇따라 3연패하며 다시 비판의 도마에 올라야 했다. 당시 자신의 애인 엘리자베스를 전지훈련에 대동했던 일은 코칭스태프뿐 아니라 선수들에게서도 강한 반발을 샀다. 본프레레에게 가해지는 ‘전술과 색깔이 없다’ ‘선수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그 당시 히딩크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우리가 히딩크를 믿기 시작한 건 월드컵을 불과 석 달 앞둔 2002년 3월 스페인 라망가 전지훈련 때부터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는 히딩크 감독에게서 2시간이 넘도록 ‘파워트레이닝 프로그램’과 ‘팀 건설론’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우리가 현재 히딩크에 대해서 느끼는 믿음은 2002년 월드컵의 성과를 과거로 소급시켜 재해석한 긍정적인 이미지뿐이다. 그렇다 보니 당시 히딩크의 시행착오와 부진은 아예 잊혀졌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진정 우리의 목표가 독일월드컵 본선이라면, 그 과정에서의 시행착오와 실패를 감싸 안을 수 있는 여유를 배워야 한다.

    #영웅을 쫓아낸 대한민국

    히딩크 이후 한국 축구의 지휘봉을 잡은 포르투갈 출신의 코엘류는 그야말로 방패막이였다. 짙게 드리운 히딩크의 그림자 속에서 자기 색깔을 제대로 내보이지도 못하고 여론에 밀려 귀국 길에 올랐던 비운의 지도자인 것이다.

    코엘류의 경질은 한국 축구의 ‘4년 주기 위기론’과 명맥을 함께한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이 열리기 두 해 전에 반드시 감독이 경질되는 위기를 겪는다는 ‘4년 주기 위기론’은 코엘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98년 프랑스월드컵을 2년 앞둔 96년 박종환 감독이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2대 6으로 대패하며 낙마했다. 또 2002년 한일월드컵을 2년 앞둔 2000년 아시안컵에서도 허정무 감독이 3위를 기록했지만 비난 여론에 휩싸여 경질되고 말았다.

    이 같은 사실은 ‘족집게’와 ‘벼락치기’에만 능한 한국 사회의 특성과도 관련이 깊다. 우리는 4년마다 찾아오는 월드컵을 꾸준히 준비하지 못하고 상시 체제 때는 위기를 자초하다, 막상 월드컵 최종예선을 앞두고는 감독을 바꾸고 전시 체제로 나서는 우를 반복해왔던 것이다.

    코엘류는 부임 기간이었던 440일 동안 불과 83일의 소집기간만을 활용했을 뿐이다. 부임기간 대비 소집기간으로 따져봤을 때는 역대 최소 소집기간의 불이익을 당한 셈이다. 지난해 6월 유로2004(유럽축구선수권)가 벌어진 포르투갈을 찾았을 때 코엘류는 포르투갈 축구의 영웅이었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의 결승전이 끝나고 포르투갈 공영방송에서는 코엘류의 1시간 특집 해설이 따로 마련됐다. 한국에서와는 자못 다른 모습이었다.

    포르투갈에서 만난 ‘축구 영웅’ 에우제비오의 말에 따르면 코엘류는 “한국은 월드컵 4강팀다운 저력이 있었다. 한국의 선전을 꾸준히 지켜보겠다”는 신사다운 면모를 보였다.

    #본프레레에게 드리워진 그늘

    히딩크는 부임과 함께 두 달여의 합숙훈련으로 선수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다. 그리고 개최국이다 보니 월드컵 최종예선의 과정 없이 1년 6개월간의 시간을 고스란히 준비 과정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고도 히딩크는 무려 8개월의 선수 파악 시간이 필요했고, 효과를 드러낸 것은 부임 후 14개월이 지나서였다.

    546일의 부임기간 중에서 반절이 넘는 274일을 선수들과 함께했던 집중력의 효과였던 셈이다. 지난해 7월 부임한 본프레레는 그동안 아시안컵과 독일월드컵 2차예선, 최종예선전에 집중해왔다. 이 시기 역시 팀 만들기의 일환이었지만 매 경기 새로운 시도보다는 안정된 승리를 얻어야 했다는 점에서 강팀 만들기 작업은 지금에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그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동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부진했다고 해서 그를 탓할 수는 없다. 본프레레는 히딩크처럼 달변이나 유머로 우리를 안심시킬 수 있는 성격도 아니어서 자신이 처한 위기 상황을 부드럽게 돌파해내지 못하는 고집불통이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내년 6월까지 한국이 진행할 로드맵이 분명 그려져 있고 이제 막 그것을 꺼내 들려 한다.

    본프레레는 그동안 선수기용과 전술운용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해왔다. 하지만 이는 좋은 교과서로서 이후 과정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전쟁에 패하면 장수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유용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전쟁이 아닌 전투를 치르고 있고, 그 과정이 진정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하는 데 힘을 실어줘야 한다. 장수에게 강한 리더십을 기대한다면, 우리가 장수에게 얼마나 힘을 실어줄 수 있는지에 대한 ‘팔로우십’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볼 때다. 그럼에도 본프레레의 어깨엔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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