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9

2005.08.23

들어라, 反 맥아더 세력아!

1996년 로버트 김 사건 주역 백동일 씨 격정 토로 “자유와 평화위해 싸웠는데 동상 철거 웬말”

  • 백동일/ 해군 예비역 대령

    입력2005-08-18 1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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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라, 反 맥아더 세력아!

    백동일 예비역 대령은 1996년 주미 해군 무관으로 근무하던 중 로버트 김을 통해 미군 군사기밀을 빼낸 혐의로 미국에서 추방됐었다.

    제헌절이었던 7월17일 인천의 자유공원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이 공원 정상에 건립돼 있는 맥아더 동상의 철거 문제를 놓고 반미와 친미 단체가 한 장소에서 집회를 열고 대립하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닫는 작태를 보인 것이다. 나라의 위신을 추락시키는 불유쾌한 모습이 노정(露呈)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해군사관학교를 다니던 1962년 5월12일, 맥아더 장군이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 고별연설에서 한 “군인의 본분은 의무, 명예, 그리고 조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희생하는 것이다”는 말이 너무 좋아, 이를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런데 지난해부터인가 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와 심히 마음이 불편했다.

    “자유와 평화 지켜준 대가가 이거냐”

    어떤 사람은 동상 앞에서 67일간 철거를 위한 시위를 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한 대학 교수는 “맥아더는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 원수”이며, “미군이 군사 통치한 남쪽은 전투와 폭동의 연속이었지만, 북쪽은 안정을 누리며 친일 청산과 사회경제 개혁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남의 집안싸움인 통일내전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 달 이내에 끝났을 것이고, 사상자도 남북한 합쳐 1만명 미만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들어라, 反 맥아더 세력아!

    맥아더 동상을 지키기 위해 집회를 열고 있는 향군 회원들.

    미국 국회의사당 맞은편의 링컨기념관 오른쪽에 6·25전쟁과 관련한 기념조형물이 있다. 이 조형물 한쪽에는 ‘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자유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자유와 평화’,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보다 더 중히 여겨야 할 누림이 있을까.



    그러나 자유와 평화는 권리로만 향유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이 아니다.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무라는 명제가 수반된다. 실제로 지금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리고 있는가. 지금이라도 눈을 돌려 찬찬히 전후방을 살펴보면 수많은 젊은이가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한 축을 맥아더 장군이 제공해주었다. 조국이 낙동강 방어선이라고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을 때, 그가 단호히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이러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라는 주장을 마음 놓고 떠들 수 있는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맥아더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대열에는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6·25전쟁 때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한 사람들이기에 그런 억지주장을 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자행케 한 것인가. 위기에 처한 남의 나라를 고귀한 부하들의 생명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구해준 은인을 칭송하지는 못할망정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작태가 반복되다 보면 충무공 이순신 제독과 안중근 의사, 백범 김구 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대해서까지도 해괴한 잣대를 들이대 흠집을 내려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섬뜩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과거 부정은 자존심을 포기하는 행위”

    지금 우리에게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갈려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하고 골치 아픈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대치가 바로 6·25전쟁의 후유증이다. 분단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북에 있는 가족과 편지를 주고받을 수가 있나, 전화를 걸 수가 있나, 마음대로 만날 수가 있나.

    우리 민족에게 동족상잔이라는 큰 상처를 준 것이 누구인데, 그 상처를 딛고 일어나 자유와 평화를 이룬 이 땅에서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며 어찌 그런 주장을 펼친다는 말인가. 물론 개중에는 미국이나 미국 사람에 의해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필자 또한 개인적으로는 미국으로부터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상처와 국가의 존망 문제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필자가 국민에게 간곡히 말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선진국형 자존심을 갖자’는 것이다. 내실을 기하면서 나라 힘을 키우려면 우리는 발전지향적 자존심을 배양해야 한다. 이것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수구적인 자존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퇴영할 수밖에 없다.

    내 나라를 국제경쟁력을 가진 나라로 만들려면 군사력이나 경제력 못지않게 우리의 위엄과 명예, 자존도 지켜야 한다. 우리는 남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피땀을 흘려줄 수 있는 진정한 자존심을 가진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 보존이듯, 국가에 가장 소중한 것은 안보다. 나라를 지키고 나를 지켜줌으로써 나와 내 이력이 존재할 수 있도록 애써준 사람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것은 진정한 자존심이다.

    모든 역량을 결집해 앞으로 나아가도 국제무대의 대열에 동참하기 어려운데, 과거를 부정하고 자신이 걸어온 바탕을 무시하는 작태가 반복돼서는 더더욱 힘들다. 이러한 행위야말로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이며, 이 나라 발전을 저해하는 무서운 장애요소임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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