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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미국 이어 북한 말도 못 알아듣나

北 핵 개발은 김정일 체제 안전 보장 목표 … 한미동맹 유지 속 해법 찾기 한국 과제

미국 이어 북한 말도 못 알아듣나

미국 이어 북한 말도 못 알아듣나

6자회담을 앞두고 6개국 대표와 주최 측인 중국의 리자오싱 외교부장(가운데)이 손을 맞잡았다.

4차 6자회담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휴회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국엔 의미가 있는 회담이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에 필요한, 북한 주장에 대한 우리나라의 청취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한국은 동맹인 미국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지만, 동족인 북한의 말만큼은 잘 이해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출범 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가 미국 전문가(외교안보)보다는 북한 전문가(통일) 중심으로 꾸려짐으로써 이러한 자신감을 의심하는 분위기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이번 회담을 통해 이 자신감은 신화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전력 아닌 적대정책 폐기 요구

4차 6자회담 직전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북한이 핵무기 계획을 폐기할 경우 200만㎾의 전력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올해 초 ‘안중근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이종석 NSC 사무차장에 의해 구상된 이 제안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처음 보고된 것은 2월15일. 6월17일에는 방북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이 제안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이 200만㎾의 전력을 공급받는 조건으로 핵무기 계획을 폐기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북한이 핵무기 계획 폐기 대가로 요구해온 것이 전력 지원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폐기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 의회가 비준한 북-미 간 불가침조약이 아니면 어떠한 안전 보장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2002년 10월25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 이후 이 생각을 바꾼 적이 없다. 그리고 북한은 4차 6자회담을 앞두고 북-미 간 평화조약과 관계 정상화도 함께 요구했다.



2차 북핵 위기는 2002년 10월4일 방북 중이던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를 만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고농축 우라늄(HEU) 핵무기 프로그램 보유를 시인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해 10월16일 미국이 한국과 함께 북한의 핵무기 플그램 보유 사실을 발표하자 북한은 이를 부인하면서도 “조선(한)반도의 핵 문제는 미국의 적대정책에 그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미국이 북-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한다면 조선반도의 핵 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미국은 일관되게 선(先)핵폐기, 후(後)대화를 북한에 요구했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전선’이 형성됐다.

미국은 그해 12월부터 북한에 1억 달러에 이르는 중유 50만t의 제공을 중단했다. 그러자 북한은 2002년 12월부터 2003년 1월 사이 핵 개발 재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봉인 제거 및 감시 요원 추방,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등 인화성 강한 벼랑 끝 전술을 단숨에 구사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은 간단했다. 동원 가능한 모든 화력을 집중함으로써 2차 북핵 위기를 북-미 양자간 직접 대화의 계기로 삼아, 미국의 적대정책 폐기를 이끌어내는 데 승부를 건 것이다.

미국 이어 북한 말도 못 알아듣나

북한의 전력난을 보도한 노동신문을 읽고 있는 평양 시민들.

그런데 미국이 이라크전쟁에서 조기에 승리를 거머쥐고 대북 압박 네트워크인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를 출범시키자, 북한은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듯 북-미 양자 대화 주장을 접고 미국의 다자간 대화를 수용했다. 2003년 4월, 3자(미국·북한·중국) 회담을 받아들인 데 이어 그해 8월부터 6자회담에 참가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다자간 회담에 응하면서도 8000개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확보한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미국은 강경하게 대응했다. 2003년 11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이사회를 열어 경수로 건설을 중단시킨 것.

현실성 없는 200만kW 무상 공급

이로써 2차 북핵 위기를 일으킨 북한은 두 가지 손해를 보았다. 하나는 경수로 완공 때까지 매해 미국이 제공하기로 했던 1억 달러어치의 중유 50만t을 공급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제네바합의대로라면 올해 KEDO는 100만㎾급 경수로 1기를 완공해야 하는데, 이것이 물 건너 갔다. 또 하나는 중유 50만t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이 30만㎾이니, 북한은 모두 130만㎾의 전력을 날린 셈이 된다. 이러한 북한에 한국은 200만㎾의 전력을 제공할 테니 핵무기 계획을 폐기하라고 제의했다. 130만㎾의 전력을 날리며 미국과 일촉즉발의 긴장을 벌인 북한에 과연 이 제의가 먹힐 수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북한은 2004년 6월 3차 6자회담에서 핵 개발의 ‘폐기’가 아닌 ‘동결’ 조건으로 미국에 200만㎾의 전력 제공을 요구해놓았다. 2004년 6월28일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 개발) 동결에는 보상이 따라야 하는데, 그것은 미국의 제재 및 봉쇄의 해제와 (테러 지원국) 명단 삭제, 그리고 중유와 전력 등 200만㎾ 에너지의 제공을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의 NSC는 전력 200만㎾ 무상 공급 제안이 북한의 핵무기 계획 폐기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왜 이렇게 현실성 없는 대안을 내놓은 것일까. 이유는 2차 북핵 위기의 역사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데 있다. NSC는 북한이 2차 북핵 위기를 일으킨 것은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데 있다는 경제 결정론을 쉽게 수용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4차 6자회담의 당초 목표는 향후 회담에서 논의할 북핵 문제의 최종 해결 방향에 대한 합의를 공동 성명에 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13일간의 마라톤협상을 했음에도 실패해 휴회하고 8월30일쯤 재개될 예정이다. 공식적으로 드러난 회담 교착 원인은 뒤늦게 제기된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 보장 주장을 둘러싼 북-미 간 이견이었다.

애초 미국은 모든 핵 계획의 폐기를 주장했는데, 막바지에 타협을 시도했다. 북한이 NPT에 복귀해 핵사찰을 받는다면 평화적 핵 이용(경수로 건설 재개)을 보장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공동 성명에 넣자고 제안했으나 북한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불발로 끝난 것이다. 그러나 4차 6자회담이 교착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AP와 로이터 등 외신은 회담이 교착된 근본 원인은 북한이 핵무기 계획을 폐기하는 대가로 무엇을 받느냐는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도 8월7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미국이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요인을 제거하는 일이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미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경수로 건설 재개와 같은 평화적인 핵 이용 권리를 보장하라는 북한의 주장이 유일한 회담 장애물인 것처럼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뉴욕타임스가 미국 대표단의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경수로 건설 재개 주장은 힐 차관보가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받은 유일한 회담 교착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백악관은 힐 차관보에게 다른 교착 요인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엔안보리 상정 가능성 배제 못해

어쨌든 4차 6자회담에서 북-미 간에 형성된 실질적인 전선은 북한이 핵무기 계획을 폐기하는 대신 무엇을 받느냐는 문제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서울대 하영선 교수(국제정치)의 지적대로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나선 목적이 김정일 수령 옹위 체제를 지키는 데 있다면, 전력 공급 제안으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포기케 한다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은 기대에 불과하다. NSC가 이러한 발상을 했다는 것은 이들의 북한 말 해독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북한의 주장을 정확히 알아들었다고 하더라도 2차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적합한 해법을 마련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북한이 김정일 수령 옹위 체제 사수를 위해 북한의 핵무기 계획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공동으로 폐기하자는 주장은 한미동맹을 근본부터 바꾸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의 변경은 주한미군 철수를 비롯한 군사동맹 체제의 와해를 의미하는데, 이렇게 되면 한국 경제의 내일은 기약하기 힘들어진다.

노무현 정부가 진정으로 북핵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한미동맹 구조를 흔들지 않는 선에서 북한이 수용할 해법을 마련해내야 한다. 1차 북핵 위기가 제네바 기본합의로 해결될 때까지 북-미 협상은 1994년 8월부터 10월까지 2개월 반이나 걸렸다. 이에 비하면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개최된 4차 6자회담은 13일밖에 소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2개월 하고 10여일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어차피 미국과 북한은 변할 가능성이 낮다. 4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북한과 양자 회담을 자주 했지만 합의점을 찾기 어려웠다. 4차 회담 휴회 직후 미 수석대표가 상대의 태도 변화가 회담 성패를 가른다고 지적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4차 회담이 재개됐는데도 북-미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부시 행정부에서는 체니 부통령 주도로 북핵 문제를 유엔안보리에 상정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북한을 믿을 수 없다면 평화적인 핵 이용도 불허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엔안보리로 가면 미국은 더욱 공격적으로 북한을 다룰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8월1일 상원 휴회 기간을 이용해 체니 부통령의 직계인 대북 강경파 존 볼튼 전 국무부 차관을 유엔 대사에 임명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주간동아 2005.08.23 499호 (p58~60)

  • 이교관/ 한반도 문제 평론가 leekyo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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