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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 영화인|‘웰컴 투 동막골’ 정재영

건달에서 인민군 장교까지 … ‘변신의 귀재’

건달에서 인민군 장교까지 … ‘변신의 귀재’

건달에서 인민군 장교까지 … ‘변신의 귀재’

스크린 밖에서 정재영은 털털한 인상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란 ‘일상적 리얼리티’로 관객과 공명하는 것이다.

배우들을 직접 만나보면, 화면에서 보던 모습과는 다른 얼굴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스크린을 통해 형성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배우들도 있지만, 지금 그런 내면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외모에 관한 이야기다. “실물이 훨씬 낫네.” 배우들이 공공장소에 나타났을 때 흔히 듣는 말이다. 사실 “화면발이네”라는 말을 듣는 배우들은 별로 없다.

배우 정재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를 직접 만나면 그가 얼마나 잘생긴 배우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이른바 꽃미남 배우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첫 주연을 맡은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는 이 사회 밑바닥 투견장의 건달이었고, ‘실미도’에서는 북파공작원이었다. ‘귀여워’에서의 청계천 건달 역은 한국 영화사상 가장 사실적인 건달의 모습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도 그는 오른쪽 이마에서부터 뺨까지 길게 칼자국이 나 있는 험상궂은 인민군 장교로 나온다.

내가 그를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것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열린 부산 영화평론가상 시상식에서였다. 나는 사회를 보고 있었는데 바로 앞에 ‘아는 여자’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정재영이 앉아 있었다. 그때 나는 그가 진짜 잘생긴 배우라고 생각했다. 내 눈이 이상한 건가? 물론 정재영은 “나 같은 외모로 멜로드라마를 한다니까 사람들이 실망하는 것 같다”며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자신 없어했지만 말이다.

연극으로 다진 연기 실력 … 장진 감독과 서울예대 동기동창

그는 ‘실미도’의 성질 더러운 한상필 역으로 대중에게 기억되었지만, 그의 영화 출연은 꽤 오래되었다. 대학로의 장진 사단에서 연극을 하면서 ‘박봉곤 가출사건’부터 시작해 ‘조용한 가족’ 등에 출연했고, 장진 감독이 본격적으로 영화를 하기 시작한 이후 ‘킬러들의 수다’ ‘간첩 리철진’ ‘아는 여자’를 같이 했다. 장진 각본·연출로 연극무대에 올려졌다가 박광훈 감독의 영화로 재탄생된 ‘웰컴 투 동막골’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도, 한 주 뒤에 개봉하는 장진 감독의 ‘박수 칠 때 떠나라’에 카메오 출연까지 한다. 그만큼 그는 장진 사단의 핵심 멤버다.



본명은 정지현, 1970년생. 서울예대 연극과를 나왔다. 장진 감독과는 같은 대학 동기동창이다. 연극판에서 터를 잡은 뒤 영화판으로 성공적으로 진출한 장진 사단의 핵심에 정재영은 있다.

건달에서 인민군 장교까지 … ‘변신의 귀재’

정재영이 인민군으로 나온 ‘웰컴 투 동막골’, 북파공작원으로 나온 ‘실미도’, 부드러운 캐릭터로 변신한 ‘아는 여자’(위부터).

스크린 밖에서 만난 정재영의 인상은 털털하다는 것이다. 관상학적으로 보면 두주불사하는 애주가 티가 난다. 배우가 갖는 신비주의적인 치장이나 화려함과도 거리가 멀다. 찢어진 청바지에 아무렇게나 걸친 티셔츠, 그리고 심드렁한 표정. 이런 서민적인 모습이 그의 최대 강점이다. 지나친 개성이 부각되지 않아서 오히려 더 많은 캐릭터로 변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크린 진출 초기에는 선 굵은 건달이라든가 강렬한 이미지의 역할을 많이 했지만, ‘아는 여자’에서의 성공적인 변신 이후 부드럽고 서민적인 캐릭터를 주로 맡고 있다.

정재영은 한동안 조연이나 카메오 출연을 많이 했다. “연기 비중이 크고 작고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주어진 역의 강약을 조절하고, 적절히 안배하는 힘의 조절이 더 중요하다.”

연극무대는 그로 하여금 배역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몰입의 체험을 하게 해주었다.

정재영은 좋은 연기란 “일상적 리얼리티를 정확하게 연기로 옮겨서 관객들과 최대한 공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생명”이라고 말한다. 즉 그의 연기론이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이야기한 리얼리즘 연기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연기는 연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현실 속의 인물들과 밀착되어 있다. 실제 인물을 보는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정재영이 가장 목표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재영의 연기가 관객들의 눈에 들어오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나의 결혼 원정기’에선 노총각 만택 역 열연

‘웰컴 투 동막골’엔 출연 배우들이 많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동막골 마을 주민 수십명이 떼로 등장한다. 물론 마을 촌장과 약간 정신 상태가 이상한 소녀(강혜정 분)가 도드라지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 탈영한 국군 2명, 후퇴 대열에서 낙오한 인민군 3명, 그리고 불시착한 미군 1명까지 6명이 끼어든다. 인민군 장교 정재영은 국군 장교 신하균과 양쪽의 힘의 균형을 이뤄내야 한다.

정재영의 연기가 탁월한 것은 ‘웰컴 투 동막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튀지 않으면서도 중심을 확실하게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출연진 가운데서 몇몇이 지나치게 도드라지면 주제가 훼손될 수 있다. 그렇다고 많은 출연진에 의해 배가 산으로 가버리면 그것도 난감한 일이다. 그러나 정재영은 신하균과 함께 기둥을 튼튼하게 받쳐주고 있다. 자신의 역에 대한 강한 신념, 그러면서도 이데올로기에 우선하는 휴머니즘, 무엇보다 생명과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소박한 마음이 정재영의 강렬한 눈빛 사이로 드러난다.

그는 요즘 황병국 감독의 ‘나의 결혼 원정기’로 바쁘다. 여기서 그는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농촌 노총각 만택 역을 맡았다. 역시 노총각으로 그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는 희철 역의 유준상이 나오고, 수애가 고려인 가이드 라라 역으로 등장한다. 신붓감을 구하려는 시골 노총각과 정재영은 무척 잘 어울린다. 타슈겐트의 결혼 광장인 압둘 카심 사원에서의 마지막 촬영을 끝으로 ‘나의 결혼 원정기’ 팀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철수했다.

정재영이 ‘나의 결혼 원정기’를 위해 준비한 것은 뱃살이다. 원래 시골스러운 얼굴이기 때문에 살만 더 찌면 되겠다는 제작진의 말을 듣고, 이때다 싶어 술만 마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늘어난 뱃살이 무려 10kg. 그러나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퇴로가 차단된 뒤 산속으로 숨어든 북한군 장교 역이었으니까 살이 찌면 안 되었다. 같은 마을 안에서 국군과 대치해야 하는 그때의 배역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예민하고 감성적이며 동시에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도 갖춰야 했지만, ‘나의 결혼 원정기’는 뚱한 표정으로 있으면 된다. 그러면 옆에서 뽀글뽀글 파마 머리를 한 유준상이 느끼한 말투로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들이 너무 예뻐서 정재영, 유준상 두 배우는 촬영에 집중을 못하더라’고 폭로한 사람은 수애다. 우즈베키스탄은 40℃를 훨씬 넘는 살인적인 날씨였고 동물원의 호랑이도 더위를 먹어 홀쭉해졌다고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다. 정재영은 이제 긴 무명 기간을 벗어나 정상권으로 막 진입한 참이고, 개화의 초 읽기만 기다리는 꽃과 같다. 그 꽃이 우리 곁에 오랫동안 피어 있기를 기원한다.



주간동아 2005.08.23 499호 (p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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