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7

2005.08.09

우리의 일그러진 ‘부패 카르텔’

주고받는 문화 한국 사회 깊은 뿌리 … “정상 안 통할 것” 피해의식 비리 부추겨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5-08-04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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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일그러진 ‘부패 카르텔’
    부정부패는 공직사회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분식회계도, 사학재단의 뇌물 수수도, 각 단체의 공금 횡령도 모두 부정부패에 해당한다. 공직자 부패만 해도 다른 한 축을 이루는 건 일반인이다. 받은 이가 있다면 준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봉호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는 부패를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이나 권위를 오용·남용하는 모든 행위”라 정의한다.

    요즘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이른바 ‘X파일’ 사건만 해도 그렇다. 녹취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은 어떤 방법으로인지는 모르지만 거액의 돈을 마련해 정치권 및 검찰에 보험성 내지 청탁성 ‘뇌물’을 건넨 셈이 된다. 그 과정에는 재벌그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한 거대 언론사 사주가 깊이 관여했다. 전형적인 정-경-언 유착 비리의 종합선물세트다. 두산그룹 ‘형제의 난’도 마찬가지. 진위야 검찰에서 밝힐 일이지만, 이런 일이 자꾸 터져서야 국민들의 대(對)기업정서가 좋을 리 없다.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기업들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이나, 대우·SK그룹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민간 부문에서의 부패 행위가 대기업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회계감사나 공시 등에 구애받지 않는 중소기업에서의 부패 또한 만만치 않다. 오너가 자신의 돈과 회사 돈을 구분해 쓰지 않은 것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말한다. 일반 시민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하다못해 집을 고치고 가게 하나 내는 일에도 다양한 ‘떡값’과 급행료, 보험성 접대가 뒤따른다. 교사에게 촌지를 내미는 학부모들도 광의의 부패 행위에 연루됐다 할 것이다. 윤인진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그러나 역시 핵심은 개인에 의해 저질러지는 우발적 범죄가 아닌, 구조적·체계적·조직적으로 연계된 부패 행위들”이라 말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자행되는 부패 행위의 대부분이 바로 그러한 구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은 물론 일반인도 ‘떡값’과 급행료 만연

    박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부패는 개인의 탐욕과 가치의 문제라기보다, 다양한 제도 내에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거나 공직사회 혹은 민간 부문의 권력 중심부로부터 체계적·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생활양식”이라 설명한다. 부패가 ‘문화화’된 수준이라 할까. 타 집단에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매우 관용적인 것도 한 특징이다. 정상적·합법적인 방법으로 일처리를 해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피해의식은 일반인들의 부패 행위 가담을 부추긴다.



    우리의 일그러진 ‘부패 카르텔’

    7월25일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안기부 X파일을 통해 금품을 주고받은 정황이 드러난 정·재계 인사들을 고발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촌지나 뇌물, 향응, 접대 등은 상대가 꼭 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는 쪽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인식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받는 쪽도 그렇게 얻은 재원이나 기회를 혼자 독차지하지는 않는다. ‘받은 것을 나눠 먹는’ 구조가 관행화돼 있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 바탕에 우리나라 특유의 가족주의와 온정주의, 연고주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등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조 교수는 “업무상 관계라도 몇 차례 만나고 나면 바로 ‘형’ ‘동생’ 하는 식의 가족적 위계로 서로를 자리매김하는 것이 우리나라”라고 지적한다. 공적 관계를 사적 관계로 치환해버리는 것이다.

    민간인 ‘공익제보자 보호법’ 제정 필요

    민간 부문 부패 중 사회적 해악이 큰 것은 역시 대기업에서 저지르는 대규모 비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투입한 공적자금 153조원 대부분이 분식회계 등의 기업 범죄가 초래한 부실을 막는 데 쓰였다. 이후 기업 안팎에서 다양한 자정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만족스런 수준이라 하긴 어렵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기업 부패의 대부분은 위태로운 지배구조 때문”이라 말한다. “적은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기 위해 비자금 마련, 분식회계 등을 일삼는 경우가 많은 데다, 오너 ‘1인 독재체제’ 아래 있기 때문에 감시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실제로 기업 수사를 많이 담당하는 검찰 쪽에서는 “방만한 조직 관리, 상명하복의 기업 문화, 의사소통 부재, 책임회피, 실적지상주의 등도 부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제품 결함을 알면서도 무조건 출시부터 한다거나, 국민 건강 및 환경 오염을 도외시한 이윤 추구 등이 대표적이다.

    만연한 기업 비리는 사회적 낭비와 비효율성 증대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정성진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나라가 2003년에 조인한 유엔부패방지협약에서도 회계 투명성 등 민간 분야 부패 방지를 위한 시책 강화를 권고하고 있다”며 “국가청렴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민간 분야 부패의 근원적 해결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각종 제도적 장치 마련에도 민간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부패 행위를 잡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새삼 강조되는 것이 민간인 내부고발자 보호다. 이를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 소속 정성호 열린우리당 의원실은 올 9월 정기국회 발의를 목표로 ‘공익제보자보호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정 의원 측은 “특히 환경·교육·건설·식품 등 공공의 이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의 공익제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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