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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기생충 굿바이?

세 종류 유전자 염기서열 해독 … 수면·샤가스·리슈마니아 병 정복 실마리

  • 김홍재/ 한국과학문화재단 연구원 ecos@ksf.or.kr

지긋지긋한 기생충 굿바이?

지긋지긋한 기생충 굿바이?

유전자 염기서열이 밝혀진 트리파노소마 브루세이, 트리파노소마 크루지, 리슈마니아 기생충(왼쪽부터).

학생들이 학교에 정기적으로 채변을 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변을 검사해 기생충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 몸길이가 수십 cm인 회충이나 촌충이 입 또는 항문을 통해 나오는 끔찍한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생활수준이 급격히 향상되면서 현재 기생충은 기억 속의 희미한 존재가 돼버렸다. 실제로 1971년 84.3%에 이르던 국민들의 기생충 감염률은 97년 2.4%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올해 5월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국민 중 감염자 수가 178만명으로, 감염률이 3.67%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기생충이 다시 증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생충은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아프리카, 중남미 등 생활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는 해마다 1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생충 때문에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기생충에게는 살 장소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한낱 숙주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해마다 1000만명 이상 사망

인간게놈 프로젝트에 앞장섰던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영국의 웰컴트러스트 재단은 기생충 연구를 위해 대대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세 종류의 기생충에 대한 유전자 분석이 마무리돼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 7월15일자에 발표됐다.



전 세계 46개국 250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해 거둔 이번 성과는 세 종류의 기생충이 갖고 있는 모든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밝힘으로써 이들 기생충과 관련된 모든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 밑바탕이 되는 기본암호를 갖게 되었다.

유전자 염기서열이 밝혀진 첫 번째 기생충은 트리파노소마 브루세이다. 이 기생충은 아프리카 남부 사하라 지방에서 주로 발견되는데, ‘수면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한 녀석이다. 체체파리가 이 기생충을 인간에게 옮겨서 발생하는 수면병은 줄곧 잠에 빠져 있게 만드는데,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도 할 수 있는 끔찍한 질병이다.

두 번째 기생충은 트리파노소마 크루지로, ‘샤가스병’의 원인이 되는 기생충이다. 침노린재라는 빈대 비슷한 곤충에 물림으로써 감염되는 샤가스병은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중남미에서 아주 흔한 전염병이다. 심한 고열과 두통을 일으키는데 중남미에서 대략 1600만명이 이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기생충이 어떻게 샤가스병을 일으키는지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밝혀졌다. 생명과학 분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셀’지에 발표된 최근 논문에 따르면, 이 기생충의 DNA가 인간이나 동물의 게놈에 들어가 숙주와 기생충의 상호작용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생충이 인간 유전자에 변이를 가져와 샤가스병을 일으키는 것이다.

마지막 기생충은 리슈마니아다. 중·남부 아시아에 만연해 있는 이 기생충은 리슈마니아병이라는 피부질환을 일으키는데, 치명적이진 않지만 심각한 피부 손상을 야기한다. 매해 150만명 이상이 이 기생충 때문에 흉측한 흉터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번에 염기서열이 밝혀진 세 종류의 기생충은 해마다 2000만명 이상을 감염시키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로 다른 3개의 연구 프로젝트에 의해 수행된 DNA 염기서열 분석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논문으로 발표됐는데, 이는 생식 전략과 전염 방법이 서로 다른 기생충을 비교해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특히 트리파노소마 브루세이는 인간의 면역체계가 발견하기 매우 힘든 유전자 염기서열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기생충이 갖고 있는 1300개의 유전자 조직은 숙주 안에서 살아남는 능력을 갖고 있어 전염에 중대한 구실을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자들은 이번 논문에서 기생충의 생식 생활사를 보여주는, 단백질 유전자 수준의 지도를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다.

알레르기 치료 연구에도 활용

과학계에서는 이번 연구를 통해 기생충이 보유한 특정 일을 수행하는 유전자와 공통 유전자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됨으로써 기생충 감염에 의한 질병 치료법 기술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생충에 감염돼 발생하는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나 백신 개발이 한결 쉬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간과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기생충은 인간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결코 떨쳐버리기 힘든 존재다. 기생충은 사람의 몸속에서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사람을 위한 일에 유용하게 활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생충은 사람에 비해서 염기서열이 간단하기 때문에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예쁜꼬마선충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 선충의 게놈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료돼 생명현상의 신비를 밝히는 데 공헌하고 있다.

한편 기생충은 알레르기 질환과 같은 병을 치료하는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생충 감염자와 알레르기 질환자 수가 반비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 의학계에는 길이 3m가 넘는 광절열두조충이 천식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지난해 ‘사이언스’에는 천식 원인이 기생충 대항효소인 키티나제이며, 이 분자를 차단하는 약을 개발하면 천식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기생충, 겉모습만 보면 매우 징그러운 존재지만 질병 치료 등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결코 눈을 떼서는 안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주간동아 2005.08.02 496호 (p66~67)

김홍재/ 한국과학문화재단 연구원 ecos@ks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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