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5

2005.07.26

수사반장님 연극계로 컴백하다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5-07-22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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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사반장님 연극계로 컴백하다
    6월28일 반가운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2년 전 주간동아 독자들과 했던 약속을 지키고, 32년간의 경찰관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김원배(57) 서울경찰청 수사부 형사과 사건반장이 보내온 e메일이었다(주간동아 383호 참조).

    2년 전 인터뷰에서 김 반장은 “27년 동안 강력사건 전담 수사관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정년 퇴직하기 전에 살인사건에 관한 자료를 집대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2005년 1월, 김 반장은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발생한 주요 살인사건 9000여건을 분석한 2300쪽 분량의 방대한 저서 ‘한국의 살인범죄 실태와 수사’를 펴내고 여섯 달 뒤인 6월30일 정년 퇴직했다.

    “여든한 살의 노모가 퇴임식 날 아침에 전화하셔서 ‘가슴 쫙 펴고 고개 번쩍 들고 당당하게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했어요. 32년 경찰관 생활이 끝나는 게 아쉽지만 후배들에게 도움 되는 저서를 남기게 되어 기쁩니다.”

    1970년 이후 주요 살인사건 분석 ‘한국의 살인범죄 실태와 수사’ 발간

    김 반장은 저서에서 각각의 살인범죄를 상세히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연극 유추기법을 통해 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수사 방법도 소개했다. 범죄와 그 범죄를 해결해가는 수사 과정은 모두 ‘도입-전개-절정-결말-대단원’이라는 연극의 5단계를 밟는다. 각 단계에 맞춰 범행을 유추하고 수사를 진행하면 범인을 검거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논리다. 요즘 경찰관들은 사건현장에서 범인이 움직인 ‘동선’을 유추하며 단서를 찾는데, 이 같은 동선 개념 또한 김 반장이 처음 도입한 것이다.



    9000여건이나 되는 살인사건 데이터는 김 반장이 27년 동안 강력사건 전담 수사관으로 일하면서 전국의 사건현장을 발로 뛰며 모은 성과물이다. 김 반장은 70년대 말부터 강력범죄 외근형사 생활을 시작한 뒤 86년에는 서울경찰청 수사부 형사과 강력계로 들어와 살인사건을 전담했다. 서울 전역에서 발생한 주요 살인사건 현장에 출동해 현장을 유지하고 수사를 지휘하는 것이 그의 임무.

    강 반장은 못 말리는 ‘살인사건 수사 중독자’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발생한 주요 살인사건 현장에도 시간을 쪼개어 내려가 수사에 참여했다. 2004년 초 발생한 부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현장에 밤 9시 무렵 도착했을 때 한 젊은 형사가 그를 알아보고는 반가워했다. 그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하는 그 형사와 김 반장은 수사 방향을 함께 고민했다. 같은 해 2월 발생한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 때도 수사본부를 찾아가 사건 브리핑을 받고 수사 방향에 대해 함께 의논했다. 그는 2003년 경찰청으로부터 살인사건 수사·분석·해석 전문가 호칭을 선사받았다.

    수사반장님 연극계로 컴백하다

    1968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2학년에 다니던 중 윤대성의 ‘형제’를 연출한 김원배 반장(왼쪽에서 세 번째).

    “아내도 살인사건 현장에 아주 익숙합니다. 피서 갈 때도 오고가는 길에 서너 군데 살인사건 현장에 들러야 직성이 풀리는 제 성격을 잘 이해하고 따라다녀주거든요. 이제는 먼저 ‘이번에는 어딜 들를 거냐’고 묻곤 합니다.”

    전북 무주에서 제재소 사업을 하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 반장은 연극연출가가 되겠다는 뜻을 품고 67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넉넉했던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안정적이지 못한 연출가의 길 대신 공무원을 택했다. ‘스릴러를 좋아하니까 형사가 되어 범인을 잡자’는 생각에 73년 경찰에 입문했다. 순경 합격 통보를 받은 날, 김 반장의 가족은 모두 울었다고 한다.

    “장남이었으니까요. 돈 벌어 동생들 공부시키고 집안을 추스른 다음 내 꿈을 펼쳐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경찰 생활 하면서 중간 중간 연극판으로 돌아가고 싶고, 학교에 복학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매번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요.”

    대신 그는 99년 관내에 대학로가 있는 서울 동숭파출소장이 되어 한동안 연극과 이웃해 지냈다. 김 반장은 매일 대학로에 있는 극단, 문화단체, 배우협회 등을 드나들며 애로 사항을 경청하고, 첫 무대가 서는 날엔 축하 메시지를 전달하고, 여러 경찰서에 공연 팸플릿을 보냈다. 이런 김 반장의 지극정성으로 한국연극협회로부터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정년 퇴직을 앞둔 공무원은 3개월 정도의 장기휴가를 받는다. 김 반장 또한 4월1일부터 휴가였다. 그러나 그는 퇴직하는 날까지 계속 출근했다. 6월25일에는 새벽 4시에 60대 조선족 여성이 무참히 구타당해 살해된 현장인 서울 종로의 여관으로 출동했고(이 여관이 김 반장이 출동한 마지막 사건현장이 됐다), 퇴직 하루 전날인 29일에는 하루 종일 전문수사관 인증프로그램 관련 워크숍에 참석했다. 그의 아내 임지현(53) 씨는 “30년 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지었는데 이제는 그걸 하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하다”고 하지만, 김 반장은 “퇴직도 얼마 안 남았는데 뭐 하러 출근하냐는 후배들의 말이 가장 섭섭했다”고 털어놓는다.

    “기회 닿는 대로 수사 노하우 후배들에게 전수”

    32년간 경찰에 투신해 수천 번 사건현장에 출동하며 살인사건을 해결해온 김 반장은 겨우 ‘경위’라는 직급으로 경찰 생활을 마무리했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경위로 경찰에 입문한 아들 또래의 후배들이 시험을 통해 금세 경감으로 진급하는 것을 수차례 지켜봤다. 그의 후배들은 “일하기만 좋아했지 ‘자기 관리’에는 신경 쓰지 않은 탓”이라며 아쉬워한다. 하지만 그는 “우리 사회를 뒤흔든 주요 강력사건마다 그 중심에 있었기에 후회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수사반장님 연극계로 컴백하다

    6월30일 정년 퇴임식에서 옥조근정훈장을 받고 있는 김원배 반장.

    그러나 현장을 지키느라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지금도 마음속에 한과 죄송함으로 남아 있다. 뇌출혈로 두 번의 큰 수술을 받고도 기적적으로 살아 계신 노모에겐 그래서 감사한 마음뿐이다.

    “살인도구로 사용된 칼을 만든 경기 파주의 공장에 내려가 있는데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열네 살 때 대전으로 유학 가는 바람에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습니다. 퇴직하고 가장 먼저 무주에 계신 어머니께 내려가 이틀 밤 자고 왔어요. 앞으로는 효도를 많이 해야죠. 그런데 먼저 응석부터 실컷 부려보고 싶습니다.”

    김 반장은 평생 바라온 대로 연극계, 영화계로 돌아갈 계획이다. 이미 연극연출가협회와 영화감독인협회에 회원 가입을 해두었다. 사건현장에서 얻은 많은 소재로 각본이나 시나리오를 쓸 계획이란다. 올 연말쯤 첫 무대를 올리기 위해 벌써부터 바빠졌다고.

    “기회 닿는 대로 경찰 후배들에게 살인사건 수사의 노하우도 전수해야지요. 관련 저서 출판과 수사 강의도 꾸준하게 하고 싶습니다. 경찰에선 정년 퇴직했지만, 내 인생을 정년 퇴직한 건 아니니까요.”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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