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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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뒤 조심하세요”

여야는 물론 정보기관·대기업도 정보전 ‘후끈’ … 외상값 여부부터 저명인사 접촉까지 ‘촉각’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07-21 18: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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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님 뒤 조심하세요”
    6월25일 오후, 한나라당 정보통 A 씨는 ‘6월24일 11인회의 모임에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 심상치 않은 발언을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친한 기자가 제공한 정보였다. 이해찬 총리,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 이강철 대통령시민사회수석 등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이 매주 토요일 오후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개최하는 11인회의는 정국 운영과 흐름을 가늠하는 여권 최고의 파워 모임.

    A 씨는 노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확인 작업에 나섰다. 그날 저녁 9시, A 씨는 “노 대통령이 민주노동당(민노당)과 민주당에 연정을 제의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A 씨는 정보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11인회의는 기록도 없고, 배석자도 없다. 확인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A 씨가 이 첩보를 당 지도부 인사에게 구두로 보고한 것은 이튿날 아침. 그 이후 한나라당은 11인회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전방위로 채널을 가동했다.

    야당 중진 2명의 선상회동에 이목 집중

    7월4일 언론이 노 대통령의 연정론을 공개함으로써 당시 파악했던 정보는 ‘팩트’였음이 확인됐다. 그 직후 한나라당의 반응은 차분했다. 당은 소속 의원들에게 연정과 관련한 발언을 자제하라고 요청했다. 방송 출연도 금지시켰다. 무분별한 공론화에 동조하는 모습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성냥불처럼 타올랐던 연정론은 야당의 외면 속에서 세를 잃었다.

    비슷한 시기 서울 여의도 한강 둔치. P, H 의원 등 야당 중진 2명이 유람선을 개조해 만든 선상 레스토랑에 마주앉았다. 의원회관도, 호텔 커피숍도 아닌 정치인들의 선상회동은 남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들의 회동은 즉각 ‘정보라인’을 통해 여권 요로에 전달됐다. 몇몇 분석가들이 즉시 ‘팩트’를 놓고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두 인사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던 여권 인사들은 이날 회동의 주요 의제로 ‘연정 및 연대’ 문제를 꼽았다. 선상회동과 관련(우리당) 사무처 K 씨의 설명이다.



    “사무실과 승용차 안까지 의심해야 하는 도·감청 시대 아닌가. 한국 정치인들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아야 살아남는다.”

    선상회동이 정보 노출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란 지적이다. 하한 정국이지만 정치인들의 정보전은 이처럼 치열하다. 좁게는 국회에서 넓게는 여의도 전체가 정보 전쟁터다. 정보전에 가세한 면면도 각양각색이다. 여당과 야당은 물론 중진들도 별도의 정보라인을 가동, 정보전을 리드한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경찰 등 국가기관의 이른바 연락관과 주요 대기업 소속 정보팀 등도 가세한다. 여기에 증권거래소 관계자들과 행정 부처 및 산하기관과 공기업, 각종 협회 등 관계자들까지 포함하면 대한민국의 모든 기관이 여의도에서 정보전을 펼치는 셈이다. 이들은 통틀어 1000명이 넘는다.

    정보전은 상대보다 더 많은 정보를 확보,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거나 정치 지형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것에서 출발한다. 연정을 둘러싼 여야의 정보전이 불을 뿜은 것도 기선을 제압해야만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당 관계자는 “7월의 정보전은 9월의 정치 지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정보전은 성역이 없다. 때로 팩트에 새로운 내용을 가공, 정보전에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최근 국회 앞 모 호텔에 투숙했다, 승용차를 잃어버린 우리당 노영민 의원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역구가 있는 청주에서 매일 출퇴근하는 그는 조찬 모임 등이 있을 경우 국회 앞 호텔을 이용한다.

    6월29일, 호텔에 투숙했던 노 의원은 이튿날 자신의 차를 잃어버렸다. 호텔 직원이 승용차 키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 것. 경찰에 차량 분실 신고를 낸 직후 그는 정치권을 움직이는 각종 정보원들의 표적이 되었다. 차량 분실 장소가 호텔인 점이 문제였다. 이 때문에 여의도에서 출발한 차량 분실 사건이 영등포경찰서를 거쳐 다시 국회를 돌아온 뒤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다. 한 측근은 “고양이를 놓고 호랑이를 그렸다”고 말했다. 노 의원의 설명이다.



    “의원님 뒤 조심하세요”

    6월29일 열린 국회 본회의장과 국회 전경.

    호텔서 차 분실하자 온갖 뜬소문 나돌아

    “자고 나니 없어진 차를 찾기 위해 도난신고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온갖 말들이 다 돌더라. 스님과 함께 술을 먹었다, 호텔 로비에서 행패를 부렸다 등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얘기들이 덧칠돼 돌아다니더라.”

    노 의원 측은 정치권의 정보팀들과 노 의원의 도덕성에 타격을 가해 정치적 반사이득을 얻으려는 측에서 의도적으로 사건을 왜곡, 확대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노 의원 측은 의혹이 일자 호텔 측에 “당시 상황을 찍어놓은 CCTV 테이프를 버리지 말라”고 요청했다. 그렇지만 호텔 측은 “테이프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7월6일 우리당 유시민 의원과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회동도 정보팀들은 예사롭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다. 이 소식은 정치권 인사들에게 알려져 유 의원과 관련한 갖가지 시나리오를 양산했다(상자기사 참조).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여야는 대화와 협상을 전제로 하는 ‘정치’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상대방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감각적 발언과 논평이 쏟아졌다. 그 사이를 관통하는 메신저는 ‘정보’. 특히 상대방의 위크포인트가 확보되면 여지없이 여론재판을 유도했다. 5월 정부 과천종합청사 인근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한 아주머니가 공무원들에게 “외상값을 갚아달라”고 인터넷에 호소, 공무원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적이 있다. 정치판인 여의도의 경우도 외상 술과 밥은 존재한다. 국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일식집과 한정식집. 4~6인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 많은 이 일식집을 찾는 단골 정치인들은 주로 여야의 초선 의원들. 지난 7월 초, 일식집 관계자가 평소 안면이 있는 야당 관계자에게 “현역 의원들이 외상값을 갚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정치인들의 외상값’ 문제는 여의도 정보통들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많은 기자들과 정보통들이 외상장부를 확보하기 위해 음식점을 찾았다. 야당 관계자도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음식점 주인은 최근 정치권과 기자들의 과도한 관심에 기가 질린 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업소 관계자는 7월7일 전화통화에서 “정치권과 기자들이 자주 전화를 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야당 일각에서는 지금도 이 음식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외상장부에 이름이 거론되는 인사들 가운데 여권 인사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여야를 관통하는 정보전은 때때로 조직 내부의 아군끼리도 펼쳐진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당직자들이 소속 의원들의 동향을 체크, 당 지도부에 보고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주간동아’가 입수한 민주당의 대외비 보고서에는 당내 상황은 물론 소속 의원들의 움직임까지 파악, 정보전의 실상을 알게 해준다. 당 대표 경선이 있던 1월 말, 한 당직자가 작성한 이 보고서에는 소속 의원들의 동선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이정일 의원의 경우 김상현 선거 운동 관련, ‘나주 화순은 내가 있는 한 걱정하지 말라’며 호언하고 있다고 함. 1월25일(화) 오전 국회 정책위 행정실에서 이낙연 의원과의 전화통화 시 ‘전당대회 할 필요가 있나’ 하면서 전대를 무산시키기 위해 의원들을 선동하고 있음.”

    이와 관련 민주당 대표실의 한 관계자는 “일상적인 흐름을 정리, 보고하는 경우는 있으나 의원들의 동향을 사찰하는 경우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만약 문건이 존재한다면 누군가 개인차원에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최근 당직자 및 소속 의원들에게 ‘가급적 골프를 자제하라’는 골프 주의령을 내렸다. 몇 달 동안 공들여 만든 개혁 이미지가 무절제한 골프장 출입과 폭탄주 한잔에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번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곽성문 의원의 골프장 맥주병 사건, 경남 의원들 10여명의 베트남 골프 여행 등이 공론화된 배경을 살펴본 당사무처 한 인사는 “아무리 몰래 골프를 쳐도 정치인들이 밟고 지나간 족적들은 하루 이틀이면 인터넷에 실명으로 공개된다. 그 시스템을 살펴보면 바로 여야의 정보꾼, 그리고 정보기관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정보는 항상 권력이 있는 곳으로 몰려든다. 당장은 권력이 없고 권력을 잡을 가능성만 있더라도 정보는 넘쳐난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특보로 활동했던 한 인사의 기억이다

    “2001년부터 2002년 10월까지 우리가 집권당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정보가 몰렸다.”

    그러나 대선 패배 후 정보는 단절됐고, 최근에는 극심한 정보 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정보 부족 현상은 정보전의 흐름마저 바꾼다. 과거 정보전은 앞뒤 가리지 않고 ‘폭로’, 상대방에게 타격을 가하는 단순한 작전이었다. 한나라당 정형근·홍준표 의원 등이 이런 작전을 주도했던 주 공격수들. 그러나 17대 국회 출범과 함께 이들은 저격수 은퇴를 선언했다. 1세대 저격수가 떠난 자리는 현재 대역이 거의 없다. 우리당도 사정은 비슷하다. 역대 어느 당보다 정보 빈곤에 허덕인다. 당정 분리 등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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