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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너 잘하고 있니”

영화계 위기 ‘스크린 결투’로 표출 … 쪽박 부담 제작사 ‘스타 모시기’ 엄연한 현실

“한국 영화, 너 잘하고 있니”

“한국 영화, 너 잘하고 있니”

김래원 주연의 ‘미스터 소크라테스’의 촬영현장

7월6일 오후 4시 서울 외곽의 한 공구상가 옥상. 청춘스타 김래원이 주연을 맡은 영화 ‘미스터 소크라테스’의 촬영현장이 처음 언론에 공개됐다.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천하의 악질’인 동혁(김래원)이 범죄조직에 의해 납치돼 강력반 형사로 키워진다는 줄거리로, 이날 촬영분은 주인공이 폭력배들에 일당 백으로 맞서 폼나게 ‘맞장’을 뜨는 장면이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 김래원은 땀을 쏟으며 각목과 구둣발을 맨몸으로 막아내는 장면을 7, 8차례 반복했고, 100명이 넘는 카메라 기자들은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스타’ 캐스팅 끝나야 투자 결정

원래 의미대로라면 ‘촬영현장 공개’는 영화 촬영현장에 기자들이 취재를 가서 생생한 분위기를 담아오는 것이지만(이런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영화 제작사에서 영화 홍보를 위한 장면을 ‘만들어’ 공개한다. 언론사의 카메라들이 모여들어서는 제대로 촬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 실제 액션신 촬영은 기자들이 뜨거운 햇볕에 지쳐 돌아간 심야에 이뤄졌다.



배우와 스태프, 기자들이 뒤엉켜 어수선한 촬영현장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지금 한국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최근 ‘강우석 대 송강호와 최민식’이라는 사건으로 터져 나온 한국 영화 ‘위기론’의 진원지가 어디이고, 대략 어디쯤에서 해결이 날 것인지도 알 수 있다.

촬영현장에서 유일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이는 ‘투자’ 관계자라고 보면 정확하다. 이들은 CJ나 롯데, 쇼박스(동양제과 계열)처럼 투자도 하고 극장을 통해 배급도 하는 3대 메이저사의 사장일 수도 있고, 창투나 벤처투자의 간부일 수도 있다. 투자자들은 감독과 제작자, 배우들이 ‘성실하고 효율적으로’ 촬영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격려도 하러 촬영현장에 온다. 이들의 이름은 영화 타이틀에 ‘제공’, ‘공동제공’(투자액 순서)으로 올라간다.

투자자들이 줄곧 바라보는 이는 영화의 주인공, ‘스타’들이다. ‘스타’를 보고서 투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때 오너의 취미로, 망하든 말든 영화를 찍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극장관객 수, 비디오와 DVD 판권액수, 해외수출액수 등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계산한 뒤 제작사에 최소한 ‘아무개’급 이상 스타를 캐스팅해야 투자할 것임을 밝힌다. 롯데시네마의 최건용 이사는 “김래원의 연기 변신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미스터 소크라테스’를 제작하는 ‘커리지필름’ 최용기 대표는 “김래원이 출연하기로 했을 때가 내 생애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 영화 대부분이 적자를 보는 마당에, 상식적인 투자자들이라면 원금의 2배를 벌고자 하지는 않는다. 보통 10% 이익을 보고 들어온다. 따라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들로서도 스타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 영화, 너 잘하고 있니”

제작 모범사례로 꼽히는 ‘연애의 목적’. 각자 기자회견을 하고 갈등을 빚었던 영화제작가협회와 배우 송강호, 최민식(왼쪽부터).

스타가 출연하지 않는 영화는 투자 단계에서부터 해외판매까지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한다. 얼마 전 스타 없이 개봉한 한 영화의 경우, 인터뷰를 약속한 TV 영화프로조차 ‘시청률 떨어진다’며 촬영을 취소했다.

요즘 촬영현장의 배우는 연기자인 동시에 ‘공동제작자’인 경우가 많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에서 문제 삼은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제작자가 스타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현재 극장과 한국 영화 제작자는 관객 입장 수익을 반으로 나누고, 그 반의 6~7할을 투자배급사가 가져간다. 나머지 3~4할이 제작사 몫인데, 일부 스타들은 이 수익의 절반을 요구하기도 하고 해외판매액의 30%를 달라고도 한다. 감독, 시나리오 작가, 프로듀서 등도 인센티브를 가져가므로 외국 영화의 경우는 영화사가 60%, 극장이 40%를 가져간다. 한국 영화도 6대 4 비율을 요구할 만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로 힘있는 투자배급사들 앞에서는 제작자들도 매니저들도 입을 다문다.

사실 영화사에서 네댓 번 영화 기획이 엎어지는 경험을 하다 보면 영화사 사장(제작자)은 ‘미칠 듯한 심경이 되어’ 스타가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해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타군단을 소유한 매니지먼트 회사는 영화 제작이 쉬워 보이고, 캐스팅이 안 돼 고민하는 제작자는 매니지먼트 사업을 해서 ‘안정적으로’ 스타를 공급받고 싶어한다. 실제로 매니지먼트사가 영화제작사를 차려놓고 영화를 만들고 있기도 하고, 일부 영화제작자는 ‘편법’으로 매니지먼트 사업을 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돈줄’로 알려진 모 대기업은 이에 대해 “현재 일단 ‘No다’”라고 알 듯 모를 듯한 답을 했다.

‘안전제일주의’ 기획 가능성 커

매니지먼트사가 영화를 제작하면 배우들의 개런티는 이론상 매니지먼트사가 주고 싶은 대로다. 개런티 때문에 제작비는 올라가지만, 스타가 있으니 투자자들은 이 돈을 지불한다. 배우가 받는 개런티의 상당 부분은 다시 매니저에게 돌아가므로 매니지먼트 회사로 보면 제작과 매니지먼트 양쪽에서 수입을 챙기는 셈이 된다.

우려되는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판에 박힌 스타의 이미지만 반복 재생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 스타와 매니지먼트의 파워가 눈에 띄게 확장된 2002년 이후 스타들의 개런티가 매년 20%(남자배우)에서 50%(여자배우)까지 상승한 것과 올해 한국 영화 관객 수가 급감한 것 사이에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영화전문지에 따르면 한국 영화 관객 수가 줄어든 데 대해 영화제작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대답은 ‘한국 영화가 관객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할리우드의 자본에 맞설 수 있었던 새로움과 다양성의 ‘힘’을 한국 영화가 상실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 너 잘하고 있니”
그나마 스타 의존도가 낮은 경우는 감독이 스타거나 제작사가 투자자의 전적인 신뢰를 얻고 있을 때다. 감독이 스타가 되면 대개 자기 제작사를 설립하는데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 ‘여고괴담’의 박기형 감독, ‘빈집’의 김기덕 감독 등이 여기 포함된다. 한국 영화 수익 구조는 나빠지는데, 투자자 돈 벌어주기 위해 스타들에게 휘둘리기 싫기 때문이다.

결국 싸이더스픽처스나 MK픽처스 등 극히 소수의 제작사들만이 투자자로부터 ‘어떤 배우로도 일정 수준의 영화를 뽑아낸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스타 없이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싸이더스는 최근 박해일, 강혜정이라는 ‘비’스타급 배우를 캐스팅해 ‘연애의 목적’을 ‘모범적으로’ 흥행시키는 데 성공했다. 순수제작비 28억원, 후반작업(프린트·마케팅 등) 12억원을 합쳐 40억원이라는 한국 영화 평균제작비 정도를 쓴 이 영화의 수익분기점 관객 수는 130만이었는데 7월3일까지 이미 170만을 동원했다. 영화가 수익을 남긴 것은 주·조연 모든 배우들의 개런티가 6억으로 다른 영화에 비해 낮았고(최근 톱스타가 출연한 한 영화는 주연배우가 순제작비의 3분의 1을 가져갔다), 덕분에 제작사는 흥행의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연애의 목적’을 기획한 싸이더스의 최선중 PD는 “투자사에서 비슷한 멜로의 예를 들어 순제작비를 24억에 맞추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관객들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장면들이 있었고, 이를 촬영하려면 촬영 수가 늘어 28억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했다. 40억~50억원의 돈을 쓰면서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무시한다면 너무 무책임한 짓이다. 투자자들에게 처음엔 이 영화를 흔한 ‘멜로’로 ‘속이’긴 했는데, 나중에 완성된 영화를 보고 오히려 좋아했다”고 말한다.

요즘 촬영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해외시장 수출 담당자다. 일찌감치 우리나라 영화의 해외 수출 가능성에 눈을 뜬 미로비전 채희승 대표는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일본에서 현장 견학을 희망한 상태다. 칸에서 포스터 한 장만으로 구매 제의를 받았으니 상당히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해외시장은 이제 한국 영화 산업의 진정한 일부가 되었다. 순제작비가 42억원이 들어간 박찬욱 감독의 신작 ‘친절한 금자씨’는 일본 300만 달러 등 5개국에 팔려나가 개봉 전에 제작비를 뽑았다. 국내 관객 200만을 동원한 것 이상이다. 메이저 영화사들도 해외사업부를 설치하고 중국 등 아시아에 극장을 세우는 등 해외 진출을 구체화하는 단계다. 채희승 대표는 “한류가 곧 꺼질 것이라는 예측들이 나오고 있지만,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영화가 한국 극장을 넘어선 시장에서 팔린다면 배우의 개런티를 문제 삼는 이도 없을 것이다.

전체 영화 수익의 75%를 극장 수익에서 끌어오는 지금의 구조라면 스크린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고, 스타에게 매달려야 한다. 멀티플렉스가 아무리 많아도 스타가 나오지 않는 영화는 하루, 심지어 1회 개봉으로 막을 내리기에 ‘볼 영화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면 촬영현장에서 감독과 제작자는 어디에 있을까. 그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90년대 이후 기획자의 영역이 커지면서 감독의 그림자는 눈에 띄게 작아졌고, 2000년대 이후 대기업과 벤처 자금이 들어오면서 제작자들의 몫도 줄었다. 한 영화감독은 “전에는 영화감독이 영화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감독이 가장 어리고 경험도 가장 적은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톱스타를 캐스팅해 영화를 찍은 적이 있는데 스케줄부터 인간관계까지, 그에게 맞추느라 모든 것이 악몽이었다”고 말한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작자들은 자기 집에 예사롭게 근저당을 잡혀가며 영화를 기획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한다. ‘움직이는’ 기획사만 200여곳이고 회사당 5~10개 이상 ‘뭔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지만 실제 투자가 되어 제작에 이르는 영화는 기껏해야 한 해 80편이다.

그리고 아직 플래시 세례를 받지 못하는 조연 배우들과 1년에 1000만원을 받지 못하는 영화 스태프들이 있다. 영화에 대한 열정 외에 얻는 것이 별로 없는 이들은 제작자와 스타의 대립을 실감하지 못한다.

감독들과 제작자들은 ‘한국 영화의 위기’가 결국 ‘대박’ 영화로 돌파될 것임을 안다. 수동적인 대중을 움직이게 할 만큼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가진 영화가 그동안 한국 영화를 구원해온 것이다. 모든 감독과 제작자들은 그것이 ‘내’ 영화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돈다발을 들고 군침을 흘리다 ‘한국 영화 위기’에 벌써 주춤대고 있는 이동통신사들이 관객을 감동시키진 못하는 것이다. 때로 현실감이 없어서 순수한 영화인들의 열정을, 너무 늦게 알아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05.07.19 494호 (p100~102)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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