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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여고괴담 & 말죽거리 잔혹사

대입 훈련소 투영 … 미국에서 벤치마킹?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대입 훈련소 투영 … 미국에서 벤치마킹?

최근 빚어진 두 가지 일이 학교라는 공간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했다. 먼저 학생 두발 단속 과정에서 빚어진 소동이다. 왜 학교는 학생들의 머리 길이며 모양을 기를 쓰고 통제하려 하고, 또 왜 학생들은 여기에 거세게 반발하는가. 이를 위해선 외모에서 머리카락이 갖는 의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발은 신체에서 가장 자유로운 연출이 가능한 곳이다. 오드리 헵번의 커트머리나 비틀스의 더벅머리 모두 헤어스타일이 불러일으킨 패션 혁명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신세대가 도발적인 자기 목소리를 낼 때도 그 출발점은 역시 두발이었다 .

그렇게 ‘자유의지’의 영역인 만큼 머리카락은 그래서 단순히 외모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삼손의 괴력의 원천이 머리카락이었던 것에서나 결연한 각오를 다질 때 흔히 삭발로 의지를 드러내는 것에서 보듯, 머리카락은 정신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발을 훼손한다는 것은 자존에 상처를 입히는 것과도 같다. 과거 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의 머리를 깎은 것도 이들의 기를 꺾고 닫힌 울타리 안으로 집어넣으려는 통과의식이었다. 그런데 이제 교도소에서도 사라진(물론 완전한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두발 통제가 학교에서는 여전히 남아 ‘단발령’ 투쟁을 낳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최근 교육부가 작성해 일선 학교에 내려보낸 ‘전시 학도호국단 운영계획’ 문건이었다. 학도호군단은 과거 군사독재 시대에 학교를 병영화하고 학생들을 전쟁 연습에 동원하던 준군사조직이었다. 군사독재가 물러나면서 죽은 줄만 알았던 학도호군단인데, 놀랍게도 ‘재기’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두 개의 삽화에서 그려지는 우리의 학교. 그건 아직도 일종의 ‘병영’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 아닐까. 인생이 결판나는 한판 승부를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곳. 그래서 머리에 신경 쓴다든가 하는 ‘사치’는 허용되지 않는, 오로지 목표 지점만을 향해 돌격토록 하는 대입 훈련소. 거기에는 일제강점기 이래로 준병사들을 키워낸 병영학교의 풍경이 겹쳐 있다. 아마도 이 숨 막히는 학교의 모습을 극단으로까지 밀고 나간-아니면 참모습 그대로(?)-영화가‘여고괴담’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학교는 생기발랄한, 아니 생기발랄해야 할 소녀들의 배움터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교사 두 명이 차례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곳. 억울하게 죽은 학생의 원혼이 벌이는 복수나 ‘미친 개’니 ‘늙은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교사는 사제 관계라는 허울 속에 숨은 폭력적 억압의 현실이다. 공포영화의 배경이 학교라는 것.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같은 설정이 전혀 기괴하지 않았다는 것은 당시 이 영화에 보낸 여학생들의 엄청난 호응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학교를 무대로 한 또 다른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영화의 배경이 된 80년대의 억압체제가 학교로 옮겨진 듯한 공간이다. 학교는 선생과 학생 간에, 학생과 학생 간에 폭력이 일상화된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바로 학생회 대신 학도호국단이 있던 시절이었다.



두 영화로부터 각각 20여년, 6~7년 후가 될 지금의 학교는 어떨까. 글머리에 든 두 가지 소동이 시사하는 바가 있을 법하다. 최근 대안학교 진학이 활발한 까닭도 이 같은 학교 현실에 대한 반발 때문일 것이다. 대안학교가 아니라면 아예 외국으로 떠나기도 한다. 상류계층의 위화적인 ‘탈한국’이기도 하지만 이 같은 유학 열풍의 밑바탕에는 ‘창의적인 교육을 하는 교육 선진국을 찾아서’라는 기대도 크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꽉 막힌 주입식 교육의 대안으로 제시돼온 ‘자유로운 교육’의 본고장 미국에서 오히려 퇴행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뉴욕 등에서는 한국과 일본식의 주입형 교육이 성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한국과 일본, 대만처럼 대입 경쟁이 심한 나라에서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주입식 교육 학교에 다니며 엄격한 교육과 기계적 기억을 학습한다”고 비아냥거리던 미국이었다. 90년대에 서구 학자들이 일본 경제의 몰락 원인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주입식 교육의 한계는 빠지지 않는 지적거리였지 않은가.

물론 미국 교육방식이 주입식으로 전면적으로 선회한 건 아니지만 이 같은 주입식 열풍의 원인에 대해 나오는 풀이는 “미국 사회에서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 기회가 좁아지고 있어서”라는 것이다. 즉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대학을 나온 배우자를 만나 자식의 교육에 집중 투자해 그 자녀도 좋은 대학을 다닐 가능성이 높아 계급이 유전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대학 입학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개봉된 영화 ‘카터 코치’에서 주인공인 농구 코치도 “운동을 잘하더라도 대학은 가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 고교생들이 한국의 입시학원으로 유학을 올 날을 꿈(?)꿔도 될지 모르겠다.



주간동아 2005.06.28 491호 (p83~83)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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