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0

..

“난 할인점이 너무너무 싫다”

충동구매 유발, 비닐봉지 양산, 위생 불량 카트 등 불만 … ‘안티할인점’ 남성들 상당수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5-06-16 14:4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난 할인점이 너무너무 싫다”

    할인점을 찾는 남성들 중 많은 수가 할인점을 싫어하는 ‘침묵의 다수’다.

    대형할인점의 부도덕한 기업윤리와의 총성 없는 전쟁을 선포한다. 대한민국 금수강산 방방곡곡에서 오천만 겨레의 신음과 한숨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다….”

    한 안티 할인점 사이트가 대형할인점의 중소 지역 진출에 반대하며 내건 ‘선전포고문’이다. 하지만 이런 조직적 반발이 아니더라도 대형할인점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유년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재래시장을 누볐던 중·장년층에겐 대형할인점의 출현과 폭발적 성장은 그야말로 당황스러운 ‘시추에이션’이 아닐 수 없다.

    평일 저녁이나 휴일 오전 “할인점에 가지 않으면 애들이 공부를 안 하려 한다”는 아내의 엄포는 ‘당황’을 넘어 ‘황당한’ 상황을 연출한다. 아이들과 함께 할인점에 가지 않는 ‘나쁜 아버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피곤을 무릅쓰고 아이들과 할인점에 감으로써 ‘생명을 단축시킬 것인가’. 하지만 선택의 순간은 잠깐일 뿐이다. 아이들의 간절한, 또는 아내의 치켜뜬 시선을 버텨낼 ‘강심장 남자’는 거의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에서 삶의 역동성과 생활의 지혜를 배운 중년 남성에게 대형할인점은 일상의 평화를 유린하고 피로를 가중시키는 ‘괴물’ 같은 존재다.

    다양한 미끼 상품의 유혹 … ‘알뜰’ 빙자한 무차별 구매

    대형할인점에 들어서는 순간, 아내의 눈은 언제 가사노동에 찌들었냐는 듯 빛나기 시작한다. 생동감이 넘치는 아내의 얼굴, 복잡한 공간을 제집처럼 누비고 다니는 아이들. 나의 머릿속에는 ‘그래, 오길 잘했어. 저렇게들 좋아하는데’ 하는 뿌듯함이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자기 만족의 순간도 잠깐. 카트를 가득 채우는 물건들을 보다 보면 차곡차곡 쌓이던 짜증은 분노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집에 고기 많은데 왜 또 사? 이렇게 꾸역꾸역 사 넣으니 결국 더 큰 냉장고 타령을 하는 것 아냐? 이렇게 쓰지도 않는 물건이 쌓여가니 대궐 같은 집도 당신한테는 좁을 수밖에 없는 거야.”

    “한 근이나 더 준다는데 이럴 때 사야죠. 당신은 알뜰하게 살려는 내 마음은 몰라주고.”

    한마디로 ‘쇠귀에 경 읽기’다. 아내에겐 남편의 분노가 사소한 잔소리쯤으로도 들리지 않는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눈치만 보는 아이들. 갑자기 난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싫어진다.

    한 시간을 넘게 할인점을 헤매다 보면 반드시 벌어지는 일이 있다. 다리가 아픈지 아이들이 서로 카트에 타겠다며 다투기 시작하는 것. 늘 작은아이가 자기가 몸이 작다는 것을 무기로 ‘카트 쟁탈전’에서 승리하지만, 이것 때문에 나는 아이들과 또 한 번 전쟁을 치러야 한다. 또 온갖 사람이 만지고, 음식물을 흘리는 카트. 과연 얼마나 위생적일까. 가끔 신문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할인점 카트, 유해세균 덩어리’라는 제목의 기사는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카트를 만지지도 말라”는 부모의 명령이 여섯 살짜리 철부지 아이에게 먹혀들 리 없다. 그야말로 속수무책 그 자체다.

    평소 의학과 건강에 관한 기사를 주로 쓰는 기자의 처지에서 엄청난 인파가 모여드는 할인점의 닫힌 공간은 거대한 ‘바이러스 양성소’로 비친다. 때문에 독감이 창궐하는 환절기만 되면 아내에게 이런 부탁을 하곤 한다. “봄, 가을에는 할인점에 안 가면 안 될까. 만약 정 힘들면 아이들은 두고 당신 혼자만 갔다 오든지.”

    돌아오는 아내의 대답이 걸작이다. “집에 들어오면 당신 손발이나 제대로 닦아요. 뭐, 바깥 공기는 얼마나 깨끗한 줄 알아요?” 이쯤 되면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다.

    환경주의자를 자처하는 기자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썩지 않을 할인점 비닐봉지가 집에 쌓여가는 것도 못마땅하다. 결국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들어가 우리의 산하를 더럽힐 비닐봉지들. 아내는 할인점 계산대에서 비닐봉투 사용을 완강히 거부하는 나의 ‘암묵적 지시’를 가볍게 무시한다. “그러면 당신이 모두 들고 와요. 작은 장바구니에 이 많은 것을 어떻게 다 넣어요.”

    할인점에서 나오는 길, 도로를 꽉 메운 차량 숲에 갇혀 내가 꼭 내뱉는 말이 있다.

    “도대체 이런 곳에 어떻게 할인점이 들어선 거야? 어떤 작자가 교통영향평가를 했는지, 참.”

    “할인점이 들어서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먹고사는데, 철부지같이….” 할인점 마니아인 아내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나는 할인점이 ‘너무너무’ 싫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