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9

2005.06.14

뽀얀 담배 연기 저항의 상징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입력2005-06-09 19:0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담뱃값이 또 오를 모양이다. 아직도 국제 수준에 비해 담뱃값이 낮은 편이라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 일이지만, 이번의 인상 소식은 그간 매번 불러일으켜온 해묵은 논란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무엇보다 값을 올려 흡연을 막겠다는 발상이 현실적으로 실효가 있느냐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흡연을 억제하긴 하지만 반짝 효과에 그칠 뿐”이라는 볼멘소리다. 담배에 과중한 간접세를 매기는 것이 합당하냐는 ‘조세 정의’ 측면의 공방도 벌어진다. 이보다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기호에 대한 국가 간섭을 둘러싼 관점의 문제가 놓여 있다. 담배를 국가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단순한 기호품으로 봐야 하느냐, 사회 전체의 건강을 해치는 ‘공공의 적’으로 대해야 하느냐라는, 말하자면 담배의 정체성에 대한 대립이다.

    어찌됐든 간에 칼자루를 쥔 보건 당국은 담배를 추방 대상으로 설정하고 단호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흡연자들의 강한 불만에도 싸움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점점 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상황이 돼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마약으로 분류돼온 대마초보다 오히려 담배가 더 중독성이 강하고 해롭다고 주장한다.

    냉전시대 ‘죽음의 상인’이 군수업체들이었다면, 이제는 담배회사가 그 자리를 이어받고 있다. 소비자들에 의한 손해배상 소송도 그 규모에 관한 한 담배회사들이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담배회사의 음모를 다룬 영화 ‘인사이더’는 이 같은 담배(회사)에 대한 점증하는 공세가 타당하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영화는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사상 최대의 소송사건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담배회사인 ‘브라운&윌리엄슨’ 중역이었던 위건드 박사(러셀 크로우)는 어느 날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해고 통고를 받는다. 회사가 담배의 중독성을 높이기 위해 유해물질을 첨가하는 것을 알고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담배회사는 소비자의 건강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악덕 기업이다. 사실을 폭로하려는 주인공을 협박하고, CBS의 간판 보도프로그램인 60분에 보도되는 것을 막으려고 방송사에 회유와 압력을 가한다.



    영화를 진지하게 본 애연가라면 담배에 가던 손이 절로 머뭇거려질 법도 하다. 그러나 담배가 ‘인사이더’에서와 같이 스크린에서 가혹한 대접을 받는 것만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영화는 아직 어느 곳보다도 담배의 해방구(?)로 남아 있다. 금연 빌딩 지정 등 담배는 현실 사회에서 급격히 쫓겨나고 있지만, 스크린에서는 아직도 담배 연기가 피워 오르고 있는 것이다. 가령 흡연자들에게는 지옥이 돼가고 있는 미국이지만, 영화와 TV 드라마에서는 담배 연기가 걷히지 않는다. ‘섹스&시티’등 도시 직장여성들을 다루는 드라마에서는 마치 흡연이 전문직 여성의 필수조건이라도 되는 것 같다.

    물론 영화라고 금연운동의 태풍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 영화에서 도피처를 찾으려는 담배와 몰아내려는 금연운동. 둘 사이에 일진일퇴 공방이 치열하다.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들이지만, 작년엔가 영국에서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놓고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영국 영화위원회는 흡연 장면을 금지해달라는 요청을 기각하고 이를 계속 허용키로 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로 흡연 장면이 없는 영화는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은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스크린에서 담배가 완강히 버티는 비결, 거기엔 광고할 공간을 찾지 못하고 영화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담배회사들의 로비도 분명히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이유가 있다. 바로 담배 자체가 갖고 있는 매력적인 소품으로서의 효용 가치다. 가령 고전 ‘카사블랑카’ 주인공(험프리 보거트)의 카페에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깔리지 않은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영화의 배경인 카사블랑카를 감싸고 있는 안개처럼 담배 연기는 주인공의 성격이나 영화 줄거리에 맞는 인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담배가 스크린, 넓게는 대중문화 속에서 질긴 생명력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담배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닌 ‘문화’를 형성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건 담배의 역사를 살펴봐도 그렇다. 애초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담배는 종교적이며 공동체의 일체감을 이어주는 수단이었다. 담배산업의 이면을 파헤친 책 ‘담배, 돈을 피워라’에서도 “사실 흡연은 하나의 친교 의식이며, 흡연자들은 이 습관을 공유하기를 좋아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담배가 영화에서 얻은 가장 보편적인 이미지의 하나는 저항의 상징일 것이다. 영화에서 10대와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기성세대, 권위주의적 문화에의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담배는 성인, 또 남성의 것이라는 게 ‘공식적인’ 통념이기 때문이다.

    금연운동이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홍보와 가격인상 등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에 있다.



    영화의 창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