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9

2005.06.14

화성의 언덕 ‘로웰천문대’ 별을 사랑하는 사람 가득

  •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입력2005-06-09 18: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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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의 언덕 ‘로웰천문대’ 별을 사랑하는 사람 가득
    인터넷에서 ‘로웰(Lowell)’을 검색해보니 생각지 않은 정보가 나온다. 하나는 미국 여배우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도시 이름이다. 하지만 필자가 무려 20여년 동안 주목해온 ‘로웰’은 리처드 기어의 아내인 배우 캐리 로웰도 아니고 인구 10만명의 공업도시 로웰도 아닌, 바로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 1855~1913)이다.

    그는 평생 화성인의 존재를 증명하려 노력한 천문학자였고, 태양계 마지막 행성이라 알려진 명왕성을 찾아 헤맨 하늘의 탐험가였다. 하지만 그의 천문학자로서의 위상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대한제국 말 조선 정부가 고용했던 최초의 서양인이었다. 로웰은 1882년 조선이 미국에 첫 사절단을 파견했을 때 민영익 등을 수행했으며, 조선에 관한 책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Choson: the Land of Morning Calm)’으로 우리 역사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다. 현재 이 책은 한글로 번역되어 쉽게 구할 수 있는데, 그가 ‘조선’이란 나라를 영어로 ‘조용한 아침의 나라(Morning Calm)’로 부른 것이 최초인지 여부는 좀더 연구돼야 할 부분이다.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로웰천문대(Lowell Observatory)’를 찾은 것은 2005년 5월22일 일요일이었다. 미국 애리조나주 북부의 작은 도시 플래그스태프(Flagstaff)의 언덕에 자리 잡은 로웰천문대는 일요일 밤인데도 별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20년 동안 벼르다가 처음 이곳을 찾은 나의 감회는 젖혀두고라도, 깜깜한 시골길을 헤치고 별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을 보고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낮이면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땅이지만, 밤의 날씨는 싸늘한 그런 곳이다. ‘그저 그런 시골 마을이겠거니’ 하고 지레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플래그스태프는 제법 큰 아름다운 도시이자 휴양도시로 발달해 있었다.

    로웰이 해발 2400m 언덕에 처음 천문대를 만들었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한적한 도시였을 테니, 천문대 세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을 것이다. 현재 이 언덕은 ‘화성의 언덕(Mars Hill)’이라 불리고 있고, 공식 주소 역시 그렇게 돼 있었다. 물론 로웰의 천문대 때문이다.

    로웰이 사용했던 24인치 망원경은 지금도 방문자들에게 관측용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1896년에 그가 세운 클라크 굴절망원경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로, 그는 이를 이용해 화성을 연구하고 명왕성을 찾아 하늘을 헤맸다. 하지만 그가 죽은 1916년 이후 이 천문대는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 지금은 주로 대중교육에 공헌하고 있다.



    로웰과 한국의 인연에 대해 좀더 깊이 들어가보자. 로웰이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883년 그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당도하면서부터다.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은 대학 졸업과 함께 일본, 중국 등을 여행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세계무대에 갓 등장한 동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높은 관심 때문이다. 그렇게 일본에 찾아온 미국 과학자들의 대표격이 바로 로웰과, 일본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생물학자 모스(Edward Morse)다. 이 두 사람은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계속 인연을 유지했다는데, 이곳 천문대 기록에 모스가 방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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