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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 살릴 응급시스템이 필요해

‘힘들고 수익 낮아’ 소아외과 기피, 컨트롤타워 없는 응급의료체계…정부는 ‘처벌’만 강조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골든타임’ 살릴 응급시스템이 필요해

‘골든타임’ 살릴   응급시스템이 필요해

[shutterstock]

주부 김모(33) 씨는 최근 두 살 된 딸을 데리고 급히 응급실을 찾았다. 침대에서 뛰어놀던 아이가 넘어지면서 책상 모서리에 눈 주변을 부딪혔기 때문. 아이의 눈 밑에 깊은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자 시력에 문제가 생길까 봐 겁이 났다. 김씨는 아이를 안고 저녁 8시 무렵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아이는 그다음 날 오전 10시가 돼서야 치료받을 수 있었다. 대기 환자가 워낙 많았을 뿐 아니라 소아응급실에서는 내과질환 소아 환자만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소아응급실 운영 병원을 일부러 찾아갔는데 외과질환 소아 환자는 이용할 수 없어서 성인 환자와 함께 일반응급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병원 측에 따지니 ‘소아 환자 수에 비해 소아응급실 규모가 작고 소아외과 의사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면 다친 아이에게 소아응급실이 무슨 소용 있나.”



신입 소아외과 전문의 연 3~4명

‘골든타임’ 살릴   응급시스템이 필요해

한 대학병원 소아응급센터에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의사들은 “소아 환자의 인체구조는 성인보다 연약하고 섬세하다. 따라서 전문 의료인력의 신속하고 완벽한 응급처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현실은 이를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9월 30일 교통사고로 골반과 발에 중증 외상을 입어 전북대병원으로 이송된 두 살 A군은 응급치료를 받아야 할 ‘골든타임’을 놓쳐 숨졌다. 전북대병원은 “아이의 수술을 맡을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13개 병원에 연락했지만 그중 12개 병원이 수술 인력과 수술실 부족 문제로 아이의 병원 변경을 거절했고 1개 병원은 전화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마지막에 경기 아주대병원으로 이송이 결정됐지만 이번에는 헬기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A군은 사고가 발생한 지 7시간이 지나 수술실에 누웠지만 결국 살아나오지 못했다.



의료계에서는 A군의 사망을 두고 “현 응급체계에서 충분히 발생 가능한 사고”라고 지적한다. 먼저 턱없이 모자란 소아외과 인력 때문이다. 0~18세 아동·청소년 관련 질환은 내과 또는 외과 질환에 따라 각각 소아청소년과, 소아외과로 진료 분과가 나뉜다. 그런데 소아를 전문적으로 수술하는 소아외과 전문의는 대형병원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드물다.

대한소아외과학회 측에 따르면 국내 총 9개 권역외상센터(아주대병원(경기 남부), 가천대길병원(수도권), 단국대병원(충남), 을지대병원(대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강원), 전남대병원(광주), 목포한국병원(전남), 울산대병원(울산), 부산대병원(부산)) 외상팀에 소아외과 전문의는 포함돼 있지 않고 정해진 의무 배치율도 없다. 소아외과 전문의는 서울 및 지방의 일부 대형병원에 1~3명 배치돼 있으며 충북지역이나 세종, 울산에는 아예 없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되려면 일반외과 전문의 자격을 딴 후 세부 분과로 소아외과를 택해 2년 이상 공부 및 수련을 거쳐야 하는데 매년 전국에서 배출되는 소아외과 전문의는 3~4명 남짓이다. 소아 수술 500건, 신생아 수술 50건 이상 경력을 충족하는 대한소아외과학회 정회원은 30여 명에 불과하고 40대 미만은 1명도 없다.

그럼에도 소아외과 전문의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홍정 대한소아외과학회 회장(아주대병원 소아외과 교수)은 “소아는 신체가 작고 약하기 때문에 이를 치료하는 의사는 고도의 지식과 경험으로 완벽한 수술을 이끌어야 한다. 특히 신생아 중환자실은 기형질환에 대한 응급처치와 수술이 항시 필요하므로 소아외과 전문의가 꼭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 홍 회장은 “일반외과 지원자 자체가 줄어들고 있을뿐더러 젊은 의사는 소아외과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바라본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소아외과는 응급환자가 많은 반면 의료수가가 상대적으로 낮다. 또한 소아외과 전문의가 적다 보니 일반외과 의사가 소아 수술을 많이 하는데, 의료수가는 소아외과 전문의나 일반외과 전문의나 똑같이 적용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굳이 일반외과에서 수련을 더 거쳐 소아외과 전문의가 되려 하겠나. 소아를 대하는 건 고도의 특수성과 사명감을 요하는 일인 데다 힘들고 수익성도 낮아 의사들이 진출을 꺼린다. ‘업무량은 많은데 저평가된 분야’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달빛어린이병원

‘골든타임’ 살릴   응급시스템이 필요해

한 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진료실 앞.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아동의 야간 응급진료를 위한 달빛어린이병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뉴스1]

소아 환자의 응급진료체계 자체가 부실하다는 주장도 있다. 응급실에 도착하면 소아청소년과 또는 소아외과 전문의를 필두로 여러 의료진이 협업해야 하는데 인력도 매뉴얼도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권역응급센터가 환자에 신속 대응하는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배가 아픈 아이가 내원했는데 장중첩증(장의 한 부분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간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질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단검사의학과, 영상의학과, 소아외과 전문의, 간호인력 등이 팀을 이뤄 각종 검사와 수술을 실시해야 한다. 이 경우 숙련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없으면 장중첩증 초기 증상을 ‘장염’이라 오진할 수 있고, 그러면 2~3일 후 아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나이가 어릴수록 성인보다 더 정교하게 진단, 수술해야 한다. 그런데 일선 현장은 이를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컨트롤타워가 부재해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다.”

2010년에는 장중첩증으로 경북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던 여아(당시 4세)가 신속하게 초기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응급실 전문의 당직제’라는 법을 제정해 2012년 8월부터 시행했다. 이 법의 골자는 응급의료기관에 진료과목별 전문의를 1명 이상씩 배치하고 전문의가 직접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다. 하지만 임현택 회장은 “응급실 환자는 넘쳐나고 전문의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 제도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의사 수를 늘리고 골든타임에 대응할 체계를 갖추는 게 현실적인 방안인데 이는 2010년 이후 개선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소아의 응급진료를 맡는 ‘달빛어린이병원’ 사업도 불안정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달빛어린이병원은 휴일이나 야간에 경증 질환이 있는 소아가 진료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정한 의료기관이다. 하지만 전국에 11곳만 운영 중이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2014년 총 16개 의료기관이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됐지만 그중 5개 기관이 구인난과 운영난 등으로 갈등을 겪다 지정 취소를 신청했다. 의료계 종사자들은 “달빛어린이병원은 중요하지만 병원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사업”이라고 말한다. 현직 간호사 김모(35·여) 씨는 “야간이나 휴일에 일하겠다는 의료진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간호조무사들도 평일 주간 대비 2배 이상 수당을 요구하는데 병원은 그럴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달빛어린이병원 신청 의료기관에 1인 진료 의원을 포함하는 등 참여 요건을 완화하고, 야간·휴일 소아 환자 진료수가를 평균 9610원 가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얼마나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해당 의료기관만 처벌하면 끝?

의료계 현장에서는 최근 A군의 사망사고를 두고 “전체적으로 부실한 응급시스템이 소아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조석주 부산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의료시스템이 세부적, 전문적으로 작동해야 하는데 정부 정책은 이를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전에는 긴급전화 1339(응급의료정보센터)를 통해 응급의료 상황에 전문적,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3년 6월부터 1339가 폐지, 119로 통합되면서 응급의료 서비스가 질적으로 퇴행했다. 의료와 비의료 응급상황을 119가 모두 떠안으면서 업무가 가중됐고 그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7월 25일 소아 환자가 연중무휴로 응급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소아전문 응급센터 9곳, 소아응급실 운영 병원 3곳을 선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소아를 위한 별도 응급실과 연령별 의료장비를 갖추고, 소아청소년과 및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전공의(3년 차 이상)가 상주하는 요건에 따라서다. 그동안 소아청소년과 전담 의사나 장비 없이 운영돼온 일부 소아응급실과 차별화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전국 12곳이라는 수는 턱없이 적으며 충북, 강원, 전라, 제주에는 1곳도 없다.

또한 보건복지부 측은 A군 사망과 관련해 10월 20일 “A군의 최초 내원 의료기관인 전북대병원, 병원 변경 의뢰를 받은 의료기관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논의한 후 전북대병원, 전남대병원의 권역응급의료센터·권역외상센터 지정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의 결정에 따라 전북대병원이 이 지위를 상실하면 전북지역에는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아예 없게 된다. 전주에 거주하는 주부 김모(33) 씨는 “전북지역에 권역외상센터,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없으면 밤중에 아이가 다쳤을 때 어디로 데려가야 하나. 아이 키우기가 겁난다”고 성토했다.

‘주간동아’는 보건복지부에 해당 의료기관의 권역외상센터 지정 취소와 향후 계획에 대해 수차례 문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조석주 교수는 “사고가 난 의료기관의 처벌보다 전체적인 응급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정부는 현장 목소리를 듣고 어린이를 위한 응급진료부터 응급실 과밀화 해소까지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6.10.26 1060호 (p53~55)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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