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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우리 아이를 살려주세요

동정이나 자선 말고 어린이 병원비 국가가 책임져라

만 15세 이하 입원비 전액 국민건강보험 부담 추진…“저출산 해결 위한 최소한의 복지”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동정이나 자선 말고 어린이 병원비 국가가 책임져라

동정이나 자선 말고  어린이 병원비 국가가 책임져라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을 위한 광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10월 5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소아암, 희귀병 어린이를 돕기 위한 모금운동에 반대합니다. 시민 모금으로 도울 수 있는 어린이 환자 수는 얼마 되지 않아요. 그 대상이 되려고 어린이 환자 가족은 자신의 힘든 사연을 대중 앞에 낱낱이 공개해야 하죠. 그 고통을 우리가 얼마나 더 두고 봐야 합니까.”

이명묵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세밧사) 대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아픈 어린이를 돕지 말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이들의 치료비를 국가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요구다. 그는 “현재 국민건강보험이 매년 엄청난 규모의 흑자를 기록 중이다. 그런데 어린이 병원비조차 시민 후원에 맡겨두는 게 정상적인 국가냐”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출산율을 높이자고 하면서 정작 어린 생명을 보호하는 데는 소홀한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열한 살 은준이, 20일 입원비 1200만 원

동정이나 자선 말고  어린이 병원비 국가가 책임져라
최근 세밧사를 비롯한 65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 국민서명운동본부’를 구성한 것도 같은 생각에서다. 이들은 ‘천사데이’라고 부르는 10월 4일, 한 어린이병원 앞에 모여 “이제는 시민 대신 국가가 아이들의 ‘천사’가 돼달라”고 요구했다. 최소한 의무교육 대상자인 만 15세 이하 어린이·청소년의 병원비만큼은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이들의 의견에 힘이 실리는 건 ‘천사’가 도와주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어리고 약한 생명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많기 때문이다. 충북 청주에 사는 열한 살 은준이도 그중 한 명이다. 몸에 단백질을 저장하지 못하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은준이는 체구가 세 살 아이만큼이나 작다. 수시로 통증과 경련에 시달리고, 종종 배와 양쪽 볼에 물이 차 병원 신세를 진다. 이때 항생제 주사를 맞고 복수를 빼는 등의 처치를 받는데, 상황이 나쁘면 한 달 이상 입원해야 한다. 그때마다 막대한 병원비가 가족 앞으로 청구된다. 한 번은 20일간 입원에 1200만 원을 부담한 일도 있다. 아버지가 운수업에 종사하고, 어머니 또한 신장질환을 앓는 은준이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액수다. 은준이의 사연은 정의당이 주최한 ‘어린이 병원비 당사자 가족 증언대회’에서 공개됐다. 정의당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연간 1000만 원 이상 병원비를 지출하는 19세 이하 어린이·청소년은 현재 1만500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881명은 1년 동안 병원비로 1억 원 이상을 썼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일회성 ‘모금’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복지’라는 게 관계자들 설명이다.



6월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이를 법제화하고자 만 16세 미만 가입자 및 피부양자가 입원해 진료받을 경우 해당 비용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전부 부담하는 내용의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국회에 대표 발의했다. 윤 의원은 이와 관련해 “이미 우리나라에서 중학교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의무교육을 시행하는 만큼 의료비도 중학생 나이까지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갈수록 심화하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어린이 병원비 국가보장은 반드시 실행돼야 할 국민적 요구”라고 밝혔다.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면 우리나라에 환자가 5명밖에 없는 희귀질환 ‘근위약증’을 앓고 있는 열두 살 건우도 돈 걱정 없이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건우는 근육이 줄어들고 뼈가 두꺼워지는 증상 때문에 혼자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상 조건부수급자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기조차 빠듯한 건우네 가족이 그의 치료비를 다 부담하는 건 힘에 부친다. 심지어 건우의 일곱 살배기 동생마저 유전병으로 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다. 건우네 가족은 윤 의원이 발의한 법안 통과에 힘을 보태고자 자신들의 사연을 공개했다. 



“어린이 다 지원해도 건강보험 끄떡없다”

동정이나 자선 말고  어린이 병원비 국가가 책임져라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가운데) 등이 국회에서 열린 ‘어린이 병원비 당사자 가족 증언대회’에서 관련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정의당 홈페이지]

물론 만 15세 이하 어린이·청소년의 병원비를 국가가 전액 부담하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제도가 만들어질 경우 불필요한 진료를 받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것을 우려한다. 그 결과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종명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정책분과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외래진료비의 경우 보장성을 높이면 과거보다 의료 이용량이 많아질 수 있다. 하지만 입원진료는 병상이 제한돼 있어 상대적으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여지가 적다”고 밝혔다.

정의당이 당론으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내며 지원 대상을 입원진료에 한정하고, ‘질환 및 부상의 치료·예방·재활 등 건강회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 즉 신체의 필수 기능 개선이 아닌 미용 목적의 처치·수술인 경우’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분과장은 이 법안이 통과된 후 한동안 병실에 여유가 있는 일부 병원에서 불필요한 입원진료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지만, 이는 당국의 감시와 통제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봤다. 정부가 어린이 입원비 지원 자체를 재검토할 만큼의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입원진료비 보장률은 59.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85.8%)에 크게 못 미친다. 아이슬란드(99.2%), 네덜란드(98.7%), 스웨덴(98.3%) 등과 비교하면 최대 40%p 가까이 차이가 난다. 외래의료비와 약제비 보장률 역시 매우 낮은 수준이다(51쪽 표 참조). 이처럼 낮은 의료비 보장률은 국민의 사보험 부담을 높인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말 현재 우리 국민 중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3265만여 명으로, 5100만여 인구의 약 64%에 해당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공동조사에서는 2012년 현재 우리나라 10세 미만 어린이의 민간의료보험 가입률이 84.9%에 달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10세 미만 어린이는 인당 평균 월 4만8429원, 10~19세는 월 3만9270원을 민간의료보험에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는 어린이 입원진료비부터 시작해 점차적으로 의료비 보장률을 OECD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등 보건의료단체들이 참여한 ‘의료민영화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성명을 통해 궁극적으로 “외래까지 포함하는 명실상부한 어린이 무상의료가 실현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아이가 보호받는 사회

동정이나 자선 말고  어린이 병원비 국가가 책임져라

서울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어린이가 병상에 누워 있다. [동아일보]

이들이 드는 논거 가운데 하나는 현재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이를 감당하기에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올해 8월 말까지 국민건강보험 누적 흑자가 20조1766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꾸준히 누적되고 있는 액수다. 그런데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등이 ‘2013년 건강보험 진료비 실태 조사’ 등에 기초해 조사한 만 15세 이하 입원진료비 본인부담금은 5152억 원에 ‘불과’하다. 현재 국민건강보험 재정 흑자분의 3%만 써도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는 시민 모금이나 국민 추가 부담이 없이도 당장 모든 어린이가 입원진료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부가 5월 발표한 ‘아동권리헌장’ 제5조는 ‘아동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발달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영양, 주거, 의료 등을 지원받을 권리가 있다’고 선언한다.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24조 1항에는 ‘당사국은 도달 가능한 최상의 건강 수준을 향유하고 질병의 치료와 건강의 회복을 위한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한다. 당사국은 건강서비스의 이용에 관한 아동의 권리가 박탈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박진제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 간사는 이를 언급하며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우리나라 아동권리헌장의 최우선 과제는 어린이의 건강과 생명 보호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최소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의 입원비 정도는 부담할 능력이 있지 않나”라고 했다.

현행 아동복지법상 아동의 기준은 18세 미만, 청소년 보호법상 청소년의 기준은
19세 미만이다. 하지만 어린이병원비국가보장추진연대는 의무교육 연령인 15세 이하로 의료비 지원 대상을 한정했다. 이들만이라도 돈 걱정 없이 기본적인 의료 처치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게 많은 이의 요구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근대 권력에 대해 사람을 ‘살게 만들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힘을 갖고 있다고 했다. 과거 군주가 신민을 ‘죽게 만들거나 살게 내버려두던’ 것과 차이가 있다. 철학자 고병권 씨는 월간 ‘사과나무’에 기고한 글에서 이를 인용하며 ‘근대에 죽음은 권력의 바깥, 즉 권력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일어난다’고 썼다. 이명묵 세밧사 대표는 “지금까지는 그런 죽음을 살리는 데 시민이 나섰다. 하지만 모금으로 감당하기에는 환자가 많고 수혜자는 적다”며 “지금 우리가 요구하는 건, 그동안 우리 어른들이 열심히 내온 국민건강보험 재정 흑자액을 아이들 병원비에 써달라는 것이다. 이 당연한 목소리에 정부가 귀 기울일 때까지 서명운동 등 각종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간동아 2016.10.26 1060호 (p50~52)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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