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9

2005.06.14

신망받는 리더는 뭔가 다르다

임원을 위한 서바이벌 전략은 … 사내 포지션 파악, 평판 관리 게을리 말아야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5-06-09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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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망받는 리더는 뭔가 다르다
    사내 정치가 이루어지는 영역은 사실상 임원급 이상부터다. 파워 게임에 나설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진 데다가 다수의 임원 중 살아남아 전무나 부사장, 나아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별들의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성실하고, 맡은 일 잘하고, 상사 말 고분고분 잘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슷한 실력과 야심을 가진 쟁쟁한 경쟁자들의 전방위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얽히고설킨 역학관계를 이용해 오히려 입지를 굳혀나가려면 남다른 자세와 결심이 필요하다.

    성공한 기업인들은 대개 “실력 있고 인간성 좋으면 그만”이라 말하지만, 전문가들은 “사내 정치 행위가 인간적 결점이나 장점, 인간성의 문제에서 나온 것은 아니며 ‘정치 행위’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나는 죽어도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타이밍과 분위기를 조절할 줄 모른다는 뜻일 수 있다. “난 성격이 직선적인 것일 뿐”이라는 말 또한 대화의 기술과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한 데 대한 변명일지 모른다. “원칙과 전통이 중요하다”는 고집 역시 그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겁쟁이’임을 증명하는 것일 수 있다.

    사내 정치는 전략이며 몸에 배인 태도다. 또한 나와 조직을 불협화음 없이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발전 지향적인 사내 정치가, 다시 말해 위와 아래로부터 두루 신망받는 뛰어난 리더십의 소유자가 되려면 어떤 자기관리가 필요할까.

    자신의 ‘포지션’을 정확히 파악한다



    1997년 12월, 당시 대우그룹 총괄회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윤영석 현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돌연 대우그룹 미주지역본사 사장으로 ‘좌천’됐다. 낙마 원인은 같은 해 8월 문제가 된 ‘대영전자 국방부 납품 비리 건’. 대영전자 부사장이 그의 동생이었던 데다, 윤 부회장이 대영전자의 실소유주라는 소문이 번지면서 난처한 처지에 빠진 것이다.

    신망받는 리더는 뭔가 다르다
    결정적 ‘한 방’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사건이 표면화되던 날, 마침 해외 출장을 마치고 김포국제공항에 발을 들여놓은 윤 부회장은 일단의 기자들에게 겹겹이 포위되고 말았다. 어쩐 일인지 평소 같으면 그를 빈틈없이 감싸고 보호했을 그룹 홍보팀 직원들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윤 부회장은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윤 부회장이 김우중 회장에게 맞서 공공연히 세를 불리고 있다”는 의심을 한 일군의 오너 라인 인사들이 의도된 도발을 한 것이었다. 증명되지도 않은 의혹 때문에 윤 부회장이 큰 상처를 입었음은 물론이다.

    신망받는 리더는 뭔가 다르다

    임원에게 일상적 자기개발은 필수다. 서울대 경영대가 개설한 ‘단축 MBA’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고 있는 대한항공의 한 임원.

    이렇듯 자신의 입지와 세력에 지나친 확신을 갖고 있다 보면 예기치 않은 곳에서 결정적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동료 혹은 선후배와의 경쟁에서 본인의 우세를 확신한 나머지 과도한 욕심, 그러니까 경쟁자의 ‘완전한 몰락’을 고집하는 것 또한 역풍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제 분수와 ‘포지션’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 사내 정치의 핵심이다.

    ‘줄’이 아닌 ‘멘토’, 파벌이 아닌 지지세력을 잡는다

    모 중앙은행장을 지낸 A 씨. 우연한 기회에 부서 상사로 부임해온 B 씨가 같은 학교 출신임을 알게 됐다. 나이 차가 많았지만, 두 사람은 곧 돈독한 사이가 됐다. 마침 A 씨와 B 씨는 각기 동기들 사이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인재로 인정받는 터였다. 이후 두 사람은 소리 소문 없이 서로를 밀고 끌어주는 사이가 됐다. B 씨가 먼저 행장을 역임했고, 나중에 A 씨가 그 뒤를 이었다.

    A 씨는 “당시 ‘든든한 줄을 잡았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B 씨의 입지가 그렇게 탄탄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사심 없이 날 믿어주고 도와줄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하다. 그런 ‘뒷심’이 없으면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해도 소신 있는 경영을 펼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줄을 선다는 건 특정 인사에게 ‘올인’한다는 것”이라며 “그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서로 잘못을 덮어주다 동반 몰락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를 진심으로 믿고 인정할 수 있는 상사와 부하직원이 자신과 회사의 성공을 함께 일궈가는 풍토는 나쁠 것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결정적 순간, ‘평판’이 좌우한다

    모 대기업 고위 임원인 C 씨는 동료 임원인 D 씨가 눈엣가시였다. D 씨가 자신의 영역을 점점 침범해오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 C 씨는 자신의 모든 역량과 인맥을 동원해 D 씨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거의 날렸다’고 확신할 즈음, 그러나 실제로 날아간 것은 C 씨였다.

    공교롭게도 C 씨에게서 D 씨에 대한 험담을 들은 사람들은 얘기가 끝나자마자 D 씨에게 전화해 그 내용을 전했다. 대신 분개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만큼 D 씨가 평소 주변 사람들한테서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는 증거였다. D 씨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침묵’을 지킴으로써 “역시 입이 무겁다”는 찬사까지 들을 수 있었다.



    회사가 여러 경쟁자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할 때,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은 평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대체로 사실에 가깝다. “평판 관리는 경력 관리의 전부”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낮은 실적, 치명적 실수는 만회 불가능

    국내 굴지 기업의 핵심인사인 E 씨. 같은 고향, 같은 학교 출신이라 ‘E 씨 계보’로 통하는 임원 F 씨가 문제를 일으켰다. 퇴출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스캔들’이 될 만한 내용이었다. 이때부터 E 씨는 단호히 F 씨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구설에 오른 F 씨가 자신의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못내 거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실적이 낮거나 이런저런 문제를 갖고 있는 임원은 설사 확실한 ‘줄’을 잡고 있다 해도 생존을 보장받기 힘들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실적주의가 강하게 뿌리내리기 시작한 요즘에 와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각 계보의 실세들은 ‘문제아’를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내치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그것이 자신과 동료, 후배들을 보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200%의 자신감 없인 오너 앞에 나서지 않는다

    LG그룹 고위 임원인 G 씨는 “완벽한 자신감이 없으면 오너 앞에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한다. 항용 “눈도장이라도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오너만 나타나면 자신의 인상을 각인시키려 애쓰는 행태와는 정반대다. “대그룹 오너에게 계열사 부사장 인사 정도는 큰일이 아니다. 잘 모르면 인사팀에서 올린 자료에 입각해 그저 OK 사인을 내고 말 것을, 괜히 그 앞에서 실수라도 했다가는 ‘그 친구는 안 되겠던데’ 하며 제동을 걸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신망받는 리더는 뭔가 다르다
    누군가 늘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임원이 되면 그는 더 이상 ‘보통 사람’이 아니다. 술을 마시고 화장실에 가고 가족들과 휴가를 즐길 때도 그를 아는 누군가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수 있다. 때문에 평소 몸가짐과 행동거지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업무상 그 임원을 직접 대면할 기회가 없는 타 부서 사람들도 얼굴은 아는 만큼, 오히려 사소한 일에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유난히 지저분하게 식사를 한다든가, 화장실 뒤처리가 깔끔하지 못하다든가, 공공장소에서 크게 떠든다든가 하는 것들은 그의 ‘본질적 업무 능력’과는 큰 상관이 없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감점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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