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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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60승 … 최다승 기록 ‘시간문제’

  • 문승진/ 골프전문기자 sjmoon@hot.co.kr

    입력2005-05-27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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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35·스웨덴)의 질주에는 쉼표가 없다.

    소렌스탐은 5월16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스톡브리지의 이글스랜딩골프장(파72·7394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칙필A채리티챔피언십(총상금 160만 달러) 최종 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를 쳐 4라운드 합계 23언더파 265타로 2위 캔디 쿵(미국)을 10타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소렌스탐은 프로 데뷔 11년 만에 통산 60승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뤘다. 통산 승수에서 소렌스탐은 캐시 위트워스(88승), 미키 라이트(82승)에 이어 패트 버그와 함께 공동 3위로 올라섰다.

    올 시즌 5개 대회에 출전해 4승(우승 확률 80%)을 챙긴 소렌스탐은 위트워스가 24년 동안 달성한, LPGA 투어 최다승 기록인 통산 88승 기록도 넘볼 수 있게 됐다.

    위트워스가 1년에 평균 3.6회의 우승을 달성한 데 비해, 소렌스탐은 1년에 평균 5.4회의 우승을 차지해 지금의 추세라면 신기록 달성은 시간문제다. 특히 통산 50승을 이룬 지 겨우 1년여 만에 60승 고지를 돌파하고, 서른이 넘으면서 노련미까지 더해져 우승컵 사냥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소렌스탐은 칙필A채리티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미켈롭울트라오픈에서 LPGA 최다 연승기록인 6연승 달성 실패의 아쉬움을 씻어냈고, 시즌 상금 1위와 다승 1위를 기록하며 달리고 있다. 소렌스탐 이름 앞에는 ‘철의 여인’ ‘기록의 여인’ ‘컴퓨터 스윙’ ‘골프 여제’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단어로는 그를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그는 스웨덴 출신이면서도 일찌감치 LPGA 투어를 대표하는 간판으로 자리 잡았다. 1994년 프로 무대에 데뷔, 그해에 ‘올해의 신인상’을 받으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는 95년 첫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을 제패하며 본격적인 우승 사냥에 나서 ‘올해의 선수’ 7회, 최소 타수상 5회의 기록을 세웠다. 캐리 웹(호주)과 박세리의 돌풍에 몇 차례 흔들리기는 했지만, 최고라는 아성이 무너지진 않았다. 지난해 말, 97년 결혼한 남편과 이혼하며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지만 그는 특유의 승부 근성과 놀라운 집중력으로 변함없는 실력을 발휘했다.

    과연 무엇이 그를 이렇듯 강하게 만들었을까? 첫 번째는 철저한 자기관리다. 모든 사람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는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미국 선수들이 보통 대여섯 살 때부터 골프 클럽을 잡았던 것과 달리, 그는 열두 살 때 골프를 시작했다. 테니스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던 소녀는 현재 LPGA 투어에서 함께 뛰고 있는 세 살 터울의 여동생 샬로타 소렌스탐과 함께 골프를 시작했다.

    그는 IBM에 근무하던 아버지 톰의 조언에 따라 스웨덴 투어에 나섰던 87년부터 자신의 모든 기록을 컴퓨터에 꼼꼼히 기록해놓았다. 스코어·거리·퍼트 수 등의 데이터는 물론이고, 자신이 실수했던 상황까지 빼놓지 않고 정리했다. 세계 전역을 돌아다녀야 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그는 항상 골프용품과 함께 노트북을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장점보다는 약점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그의 발전 상황은 자신의 컴퓨터에 그대로 나타난다. 87년 평균 77.57타의 기록이 11년 뒤인 98년엔 69.99타로 미 LPGA 투어 사상 처음으로 평균 70타의 ‘벽’을 깼고, 2004년에는 68.70타까지 줄어들었다.

    소렌스탐의 또 다른 특징은 일관성이다. 그는 캘러웨이사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클럽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잘못이 있을 때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툭하면 클럽 탓을 하는 국내 주말 골퍼들은 한번쯤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그의 일관된 스윙을 말해주는 사례가 있다. 프로골퍼들은 수시로 자신의 클럽을 체크한다. 자신의 스윙궤도와 클럽 무게가 조금만 맞지 않아도 스윙감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클럽을 맞추기 위한 스윙스피드에서 10차례 모두 똑같은 스피드를 기록해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 비밀은 엄청난 훈련에 있다. 그의 플레이를 보면 때로는 성의 없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항상 일정한 스윙을 구사한다.

    그는 자신의 스윙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코치 헨리 라이스에게 모든 걸 맡기고, 프로 선수들에게 생명과도 같은 체력훈련은 전담 피지컬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해결한다. 하지만 아무리 스승에게서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굳어가는 관절의 유연성을 살리기 위해 요가도 빠뜨리지 않는다.

    훈련량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그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윗몸일으키기 150회 이상과 상체를 반만 일으키는 ‘크런치(crunch)’, 그리고 ‘메디신 볼(권투선수들이 복근 단련을 위해 배를 두드릴 때 쓰는 공처럼 생긴 장비)’을 포함해 하루에 800회 정도 ‘복근 단련’을 하는 셈이다. 그가 “‘윗몸일으키기’라면 타이거 우즈한테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168cm의 그리 크지 않은 체격이지만 장타 순위 1~2위를 다투는 비결이다. 그의 팔뚝은 보통 남자들보다 훨씬 굵다. 수십년간 계속된 체력훈련이 그의 시대를 열게 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그는 2003년 여자 골퍼로는 58년 만에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비록 예선 통과에 실패했지만 남자 골퍼들도 그의 골프 실력은 인정했다.

    항상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강한 정신력도 그의 장점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혼이라는 개인적인 아픔을 겪고도 최고의 경기력을 유지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일을 할 때 항상 즐기면서 한다. 이제 모든 에너지를 골프에만 쏟을 수 있게 됐다”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는 골프장에선 오직 골프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골프장을 나오는 순간 골프는 철저하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줄리 잉스터도 “소렌스탐은 경기장에선 무서울 정도로 플레이에 집중한다. 하지만 골프장 밖으로 나가는 순간 또 다른 세계를 철저하게 즐긴다”며 “이것이 바로 그의 가장 큰 장점이자, 독주할 수 있는 비결이다”고 말했다.

    그는 비시즌(11~2월)에는 가능하면 골프를 잊는다. 대신 스키·스노보드·테니스 등을 즐기고, 요리를 하면서 정신적인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막상 연습을 시작하면 누구보다도 무섭게 몰입한다. 그는 “경기의 중압감조차 즐긴다”고 했다. 그의 성공 신화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하지만 멘탈(mental) 게임인 골프에서 평상심을 잃지 않는 컨트롤 능력이 그의 가장 큰 무기다. 통산 88승을 깨기 위한 그의 행진이 단순히 ‘시간문제’로 여겨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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