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7

2005.05.31

미국 이방인 일본서 ‘귀신 소동’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05-27 13:4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미국 이방인 일본서 ‘귀신 소동’
    ‘링’과 ‘주온’, ‘엽기적인 그녀’ 등 할리우드의 아시아 영화 리메이크 붐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계 에이전트인 ‘로이 리’. 이 에이전트가 아시아 영화 히트작들의 리메이크 판권을 할리우드에 팔면서 한 가지 문제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야기만 따서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원작에 충실할 것인가.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한다면 그곳은 도대체 어디인가?

    ‘시월애’ 같은 정통 멜로드라마는 비교적 쉽다. 이야기의 아이디어야 지구 어디에 갖다놓아도 통할 테니까, 그들이 잘하는 할리우드식 접근법을 취한다면 원래의 개성이 조금 떨어진다고 해도 외려 더 잘 만들어진 영화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호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호러의 기반은 로맨스 영화처럼 단단하지 않다. 여러분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좋아한다면 그 영화는 언제 보아도 즐거울 것이다. 하지만 호러는 훨씬 민감하다. 이 장르는 시대와 문화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그날 기분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루지’는 어떨까? 다들 알다시피 이 영화는 일본 호러 영화 시리즈인 ‘주온’의 할리우드 버전이다. 하지만 무대를 미국으로 옮긴 ‘링’이나 ‘다크 워터’와 달리 이 영화의 무대는 일본이다. 그냥 일본인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귀신 소동이 벌어졌던 바로 그 집이다. 전편에 나왔던 가야코와 도시오 모자(母子)도 같은 배우가 캐스팅되어 나온다. 단지 이들이 공포에 빠뜨리는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아니라 사라 미셸 겔러나 빌 풀먼, 클리아 듀발이 연기하는 미국인 이방인들이다.

    이런 선택은 나름대로 이치에 맞는다. ‘주온’ 시리즈의 매력은 줄거리나 설정에 있는 게 아니라, 설정을 통해 선사하는 공포 효과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줄거리와 설정만 따가지고 미국으로 무대를 옮긴다면 아무래도 어색해진다. 금발머리의 백인 배우가 가야코 흉내를 내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뭔가 심하게 잘못된 것 같지 않은가?



    미국 이방인 일본서 ‘귀신 소동’
    그러나 ‘그루지’는 ‘주온’과는 달리 어색한 영화가 됐다. 일단 사라 미셸 겔러나 빌 풀먼이 ‘주온’ 영화임이 분명한 작품에서 전에 우리가 봤던 게 분명한 집에 들어와 전형적인 미국인들처럼 행세하는 건 아무리 봐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너무나 자상하게 동기와 결말을 설명하는 할리우드식 스토리 텔링 때문에 이야기는 더 어색해진다.

    더욱 괴상한 것은, ‘주온’을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이 영화의 공포 효과들은 이미 오리지널 ‘주온’에서 같은 감독이 같은 배우들을 통해 거의 완벽하게 구현했던 것들이다. 그걸 할리우드의 돈을 받아 조금 비싼 특수효과를 동원해 미국인 배우들을 앞에 세워놓고 다시 찍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시마즈 다카시의 재능이 탐났다면 그냥 그에게 돈을 주고 다른 영화를 찍으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영화평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