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6

2005.05.24

일상 내려놓고 자기를 만났는가

사찰과 수도원 등 종교 공간 찾아가기 열풍 … 종교계도 대중 적극 끌어안기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5-05-20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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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내려놓고 자기를 만났는가
    진한 밤색의 행자복 차림과 귓불을 커다랗게 뚫은 화려한 피어싱 때문에 어디서든 눈에 띄는 대학생 장은빛 씨를 만난 곳은 서울 종로의 조계사였다. 장 씨는 외국인 5명, 우리나라 대학생 4명과 함께 조계사 템플 스테이(사찰에 머물면서 스님들과 더불어 수행을 경험하는 것) 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한 수행자다. 장 씨는 “천주교 신자지만, 예불에도 참여하고 오체투지의 절도 배운다. 템플 스테이는 신앙이 아니라 종교적 체험이기 때문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다.

    “요즘 유럽과 미국에선 불교가 트렌드잖아요. 함께 참여하는 외국인 친구들도 대개 서구에서 책을 통해 불교에 대해 알게 된 뒤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 템플 스테이를 하고 있어요.”

    5월8일 주한 대사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열린 경남 합천 해인사의 템플 스테이에서는 다리가 불편한 주한 오스트리아 빌 헤름돈코 대사가 새벽 예불로 시작하는 강행군에 열심히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 불교와 절집의 아름다움, 참선의 철학에 깊이 빠져버렸다는 그는 “개인적으로 템플 스테이를 다시 경험하고 싶다”고 밝혔다.

    “천주교 신자이지만 템플 스테이 거부감 없어”

    최근 템플 스테이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면서 종교, 나이와 상관없이 절집(사찰)이나 예배당, 수도원 등 종교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사찰이나 수도원들도 템플 스테이를 강화하고 색다른 이벤트와 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해 차별화에 나서는 추세다.



    종교가 대중 속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은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불교의 포교나 기독교의 선교 활동은 사찰이나 예배당의 가장 원래적인 소임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종교 공간에 대한 관심은 종교계의 선교 활동이나 사회 참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신적 체험을 원하는 비신자들이 개인적이고 능동적으로 종교 공간을 찾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신앙보다는 일종의 ‘문화 레저’의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다.

    ‘템플 스테이’라는 말 자체가 불자가 종교적 목적으로 머문다는 뜻이 아니라, 예불·참선·다도·산행·발우공양(식사 수행) 등 사찰 의식을 체계적으로 프로그램화하여 (대부분 유료로) 경험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종교 공간의 새로운 활용을 주도하는 것은 템플 스테이를 시행하는 사찰들이다. 사찰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산 속에 위치한 탓에 템플 스테이가 다른 종교의 공간 활용보다 두드러져 보이기도 하지만, 통계 숫자는 템플 스테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원래 월드컵을 앞두고 외국 관광객들의 숙소 보완 차원에서 2002년 처음 시작한 템플 스테이는 첫해 외국인만 3300명이 참가했는데 2004년에 외국인 3000명, 내국인 2만4000명이 참여했고, 올해는 모두 5만명이 절집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4월 초 나온 ‘마음으로 떠나는 산사체험’과 지난해 나온 ‘템플 스테이’ 등 템플 스테이를 위한 정보, 답사 서적이 속속 출판되는가 하면, 템플 스테이를 포함한 여행상품을 취급하는 여행사도 늘어났고, 역에서 사찰로 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지방자치단체들도 나오고 있다. 한 스님의 말처럼 ‘웰빙’을 찾던 현대인들이 문득 눈을 떠 옆을 보니 그곳에 ‘완벽한 웰빙’인 절집이 있었던 것이다.

    일상 내려놓고 자기를 만났는가


    일상 내려놓고 자기를 만났는가

    청량사의 ‘산사음악회’(왼쪽)와 길상사에 위치한 선원. 산사음악회는 템플 스테이 못지않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많이 알려진 절집의 문화 프로그램이다.

    “사찰이 자연 속에 있다는 점, 사찰음식이 ‘슬로푸드’인 점, 스님의 지도를 통해 참선, 즉 명상을 배운다는 점, TV·인터넷·휴대전화 등 문명의 이기와 분리된 휴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템플 스테이가 현대인들에게 큰 매력이 되고 있지요. 주5일 근무 시대에 가족들이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여가 문화라는 점도 작용하고요.”(윤영희 과장·대한불교조계종 템플스테이사업단)

    현재 43개 사찰에서 템플 스테이를 운영하는데, 어느 곳이든 하루 세 번의 예불과 참선, 발우공양과 울력(청소) 등 기본 프로그램은 동일하다. 여기에 사찰의 특성을 살린 선체조, 암자 순례, 연등이나 불화 제작, 선무도, 자비명상 등의 프로그램이 추가된다.

    현대인 ‘웰빙’ 욕구 부합 …가족과 함께하는 여가 문화

    단기출가학교(한 달 동안 삭발하고 행자 생활을 하는 수행)로 유명한 평창 오대산 월정사의 템플 스테이에서는 전나무 숲에서 삼보일배 체험을 하고, 공주 태화산 마곡사에서는 맨발 산행과 자비명상이 더해진다. 보성 천봉산 대원사 템플 스테이는 유언장 쓰기 등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불교를 체험하는 도량이다. 한국의 소림사로 꼽히는 경주 골굴사 템플 스테이에서는 선무도를 가르친다.

    한편 조계종에서는 템플 스테이가 인기를 모으자 현재 건설 중인 전통문화산업지원센터에서 사찰의 특정 프로그램을 모아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가톨릭에서도 신자들의 ‘피정’에 비신자인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종의 ‘채플 스테이’ 프로그램 시행을 시도하고 있으나, 템플 스테이만큼 활성화되진 않았다(표 참조). 전국에 있는 140여개 수도원에서 비신자들도 미사와 노동을 체험하게 하자는 제안이 나오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일부 피정센터를 가진 수도원에서 소규모로 개인 피정이 가능한 정도다. ‘종교문화공간의 사회적 활용 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펴낸 한국 종교문화연구소의 박상언 연구위원은 “아직까지 종교 공간 개방을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는 진보, 보수와는 거의 관계가 없어 보인다”라고 말한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피정 프로그램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제주도의 성 이시돌 피정의 집(064-796-4181)이다. 아일랜드인인 인피제 신부가 일군 이시돌 목장에 자리한 피정의 집 체험 프로그램은 묵주 기도와 강의, 성체강복 미사 외에 마라도와 한라산 관광으로 이뤄진다. 관광회사와 연결되지 않아 말 그대로 자연 풍광을 감상하면서 자기 발견의 수련과 휴식을 겸할 수 있다.

    각종 수련회와 선방 운영, 당일 체험 프로그램과 문화 이벤트로 명성을 높인 종교 공간도 늘었다. 사방이 산으로 싸인 천혜의 콘서트 공간에 위치해 2000년 최초의 산사음악회를 연 경북 봉화의 청량사와 도심의 시민 선방과 문화 강좌로 인기 있는 서울 길상사가 대표적이다. 매년 10월이면 산사음악회에 전국에서 6000~7000명이 모일 정도로 인기를 끄는 청량사의 경우 올해는 청량산 바위에 흩어진 글씨의 탁본을 전시할 예정이어서 지역 문화공간으로 훌륭한 몫을 해내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길상사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참선 수행을 하는 ‘템플 라이프’와 크고 작은 산사음악회를 열면서 5월엔 최완수 간송미술관학예연구실장이 불교 미술에 대한 연속 강의를 해 미술학자와 일반인들의 발길을 끌어모았다.

    일상 내려놓고 자기를 만났는가

    직지사 템플 스테이 참가자들의 새벽 울력 모습. 조계사 템플 스테이 캠프에 참여한 젊은이들의 발랄한 모습. 스님들의 공양에 쓰는 발우(왼쪽부터).

    종교 공간의 일반 개방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개방에 반대하는 종교인들의 주장은 논외로 하더라도, 일반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시설을 짓거나 전면 보수하는 데도 찬반 양론이 엇갈린다. 해인사처럼 ‘재정만 허락하면’ 화장실이나 샤워실을 짓겠다는 곳도 있지만, 템플 스테이를 준비하는 청량사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 청량사의 지현 스님은 “템플 스테이의 목적은 한국 불교와 수행을 경험하는 것이다. 더운물 콸콸 나오고 수세식 화장실 갖춰진 곳을 어디 절집이라 하겠는가. 있는 그대로 보여주되, 청결하게만 유지하면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템플 스테이를 시행하는 일본 사찰의 경우 수행보다 숙소 개념이 강해, 우리 절집의 템플 스테이는 세계에서 유일한 형식의 종교 관광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또 1박2일의 터럭 같은 시간 동안 이미 복잡한 세속의 끈을 가진 사부대중에게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회의적인 질문도 할 수 있다. ‘마음으로 떠나는 산사체험’의 저자 유철상 씨는 “절집에서 하루 머문다는 것도 불교에서 보면 대단한 ‘인연’이다. 많은 템플 스테이 경험자들을 만나보면 절집을 찾는 이는 스스로 정신과 몸을 새롭게 하려는 필요와 준비조건을 가진 이들이다. 적어도 자신을 다스리고 비우는 계기는 충분히 되는 듯하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스님들에게 절제와 청규, 죽비를 더 ‘세게’ 요구하는 건 오히려 신자들이라고 한다. 템플 스테이 찬양론자이기도 한 사업가 송경희 씨는 여름 휴가 때는 꼭 템플 스테이나 수련법회에 참석한다.

    “모든 것을 끊고 사찰에 들어가요. 묵언수행하면서 다른 사람의 발우를 닦은 물을 마시고 수십명이 한 방에서 잠을 자다 보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며 살고 있는지 절로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상상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어요. 수련회 후엔 얼굴빛이 달라지죠. 말 그대로 체험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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