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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럽 헌법에 딴죽 걸기?

찬반 국민투표 앞두고 반대 여론 비등 … 지나친 자유주의 경제체제·정체성 위협 등 이유 들어

프랑스, 유럽 헌법에 딴죽 걸기?

프랑스, 유럽 헌법에 딴죽 걸기?

5월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시위에서 유럽 헌법 국민투표에 대한 반대 구호가 등장했다.

4월25일 유럽연합(EU) 외무장관 회의가 열린 룩셈부르크.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두 나라 정상은 이 회의에 참석, EU 가입 조약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장 안팎은 새 회원국을 맞이하게 된 들뜬 기운이 느껴지기보다는 대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2003년 4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10개 나라의 EU 가입 조약 서명식에서 느껴졌던 환영 일색의 축제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신규 가입 회원국의 수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런 기류가 최근의 EU 분위기라고 현지 언론들은 입을 모은다.

그 흐름의 중심에 프랑스가 있다. 5월29일로 예정된 유럽 헌법 제정 조약(이하 유럽 헌법) 찬반 국민투표를 일주일 앞둔 상황에서 반대 여론이 심상치 않게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기관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연이어 발표하자, 프랑스 정치권은 물론 전 유럽이 프랑스 여론의 향방에 관심을 쏟게 됐다. 당초 순탄할 것으로 예상됐던 헌법 비준에 거대한 장애물이 돌출하면서 회원국들은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이런 분위기가 최근 EU 내 일련의 행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3월 여론조사에서 찬반 지지율 역전

지난해 6월 유럽 정상들은 유럽 헌법의 초안에 합의했다. 이어 10월에는 이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서명했다. 물론 2001년 12월 헌법 제정에 관한 최초의 논의 이래 합의가 이뤄지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확대된 EU의 새로운 위상에 걸맞은 제도적 장치를 갖추기 위해 구상된 유럽 헌법은 그간 EU 구성의 토대가 돼온 각종 조약을 초월하는 안정적인 법 체제의 필요성에 대한 부응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둘러싼 회원국 간의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라크 전쟁 찬반논쟁으로 유럽이 양 진영으로 대립하게 되면서 유럽 헌법 도입 합의는 한동안 요원한 일로만 여겨졌다.



그러던 중 지난해 5월 EU 확대가 세계의 관심을 모으게 되면서 회원국들은 다시 머리를 맞대고 EU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에 가장 중대한 현안인 유럽 헌법 제정 추진도 탄력을 받아 회원국 정상 간의 합의가 곧 이루어졌으며 각 회원국의 비준이라는 최종 절차만 남겨진 상태였다.

프랑스, 유럽 헌법에 딴죽 걸기?

유럽 헌법 국민투표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손 팻말을 들고 있는 프랑스 시민(오른쪽)과 4월25일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EU가입을 승인한 유럽의회 본회의.

지난 2월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에서는 유럽 헌법 비준이 무난하게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 일반적이었다. 각종 여론조사는 줄곧 60% 이상의 찬성률을 나타냈다.

그러나 3월 들어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한 여론조사에서 51대 49의 근소한 차로 찬반 여론이 역전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할 때만 하더라도 일시적인 이상 현상으로 보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그러나 매주 이어지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55% 전후의 반대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관찰되자 나라 안팎에서는 프랑스 여론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심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비준 반대를 주장해온 유권자들은 주로 극우파나 공산당 지지자 등 EU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성향의 소수 유권자였다. 한편 시라크 대통령, 사르코지 여당 총재뿐만 아니라 올랑드 등 야당 지도부의 주요 인사를 포함한 대다수의 주류 정치인들이 한목소리로 비준 찬성에 동조해온 상황이라는 점은 반대 여론의 득세에 대한 이해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대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르 피가로’의 4월 말 여론조사에 따르면, 비준에 반대하는 응답자들이 꼽은 가장 큰 이유는 ‘더욱 개선된 헌법을 채택할 수 있으므로’라는 대답과 ‘헌법이 지나치게 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치우쳐 있으므로’라는 의견으로, 각각 27%를 차지했다. 2위는 ‘헌법이 프랑스의 정체성을 위협한다’는 내용. 그리고 ‘터키의 EU 가입에 반대하는 뜻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의견이 그 뒤를 이었다. 3월 여론조사 때만 하더라도 이 의견은 반대의 첫 번째 요인으로 꼽혔다.

찬성자들 “반대 땐 EU 내 영향력 약화”

반면, 같은 조사에 의하면 헌법 비준에 찬성하는 응답자들이 가장 먼저 꼽은 이유는 ‘비준에 반대할 경우 프랑스의 EU 내 영향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29%)하기 때문이라는 ‘소극적인’ 내용이었다. 이는 ‘유럽의 정치통합을 향한 역사적인 단계이므로’(23%)라는 ‘본질적인’ 이유를 앞서는 수치로, 찬성하는 측에서조차 찬성의 확고한 의지를 찾아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다른 한편, 이러한 구체적인 이유보다도 현 정부의 실정을 질책하는 여론층이 그 수단으로 이번 국민투표를 이용하려 한다는 분석 역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업률이 10%를 넘어섰다는 내용과 소비자의 구매력이 하락했다는 발표가 잇따랐고 최근의 게마르 장관 스캔들이나 교육 개혁에 대한 거센 항의도 이러한 여론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볼케슈타인 강령’이라 명명된 EU 내 서비스 시장 개방 문제가 가시화되면서 자유주의 시장경제 도입에 대한 우려가 더욱 뚜렷해졌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들린다.

아무튼 EU가 헌법 비준 부결이라는 거대한 암초에 부딪혀 표류하게 될지 아니면 위기를 극복하고 순항하게 될지는 현재로선 프랑스 국민들이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투표를 준비하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어깨는 어느 때보다 무거워 보인다.





주간동아 2005.05.24 486호 (p48~49)

  • 파리=지동혁 통신원 jea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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