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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러시아는 성공의 땅”

일본·유럽 업체 따돌리고 휴대전화·가전시장 석권 … 현지인 특성 맞춘 꾸준한 마케팅 ‘결실’

  • 모스크바=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삼성전자 “러시아는 성공의 땅”

삼성전자 “러시아는 성공의 땅”

삼성은 2004년 러시아 6개 주요 도시에서 ‘삼성 모바일 로드쇼’를 개최했다.

모스크바의 4월은 추웠다. 비행기 타고 해를 좇아 5시간 뒤로 훌쩍 물러 닿은 그곳에선, 여전히 눈 내리고 사람들은 코트 깃을 한껏 세워 걷고 있었다.

모스크바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승합차에 올랐다. 얼마 안 가 도로 전면에 ‘블루블랙폰’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삼성전자 휴대전화 ‘D500’의 거대한 광고판이 나타났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는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눈길 닿는 곳마다 삼성 로고, 삼성 휴대전화 광고판이었다. 현지 통역을 맡은 모스크바대학원생 이규영 씨는 “나도 삼성 제품을 갖고 싶지만 언감생심 가난한 유학생 사정으론 꿈도 못 꿀 가격이라 소니 것을 쓰고 있다”고 했다.

삼성 휴대전화는 정말 비싸다. 2004년 11월 출시한 D500 모델만 해도 최근까지 800달러 선에 팔려 나갔다. 꼭 그런 최고급품이 아니더라도 삼성 휴대전화의 평균 가격은 경쟁사들의 그것을 압도한다. 삼성이 128유로인 데 비해 노키아는 110유로, 지멘스는 81유로, 모토롤라는 75유로다. 러시아 중산층의 월 평균임금이 600유로(약 780달러) 수준임을 감안하면 삼성 휴대전화의 선전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은 지난해 러시아에 모두 554만4000여대의 휴대전화를 팔았다(표1 참조). 시장점유율

1위(23.5%). 금액 기준 점유율은 더욱 높아 31%에 달했다. 8억6500만 달러(약 8650억원)로 역시 1위를 차지했다. 쉽게 말해, 가격도 이윤도 높아 2대를 팔고도 남들 3대 판 것과 비슷한 수익을 올렸다는 뜻이다.



코카콜라 이어 최고 브랜드 평가 2위

휴대전화 장사만 잘한 것이 아니다. TV, 홈시어터 시스템, PC 모니터, 전자레인지, 청소기 등도 모두 (금액 기준) 시장점유율 1위다(표2 참조). 이렇게 해서 지난해 삼성전자 러시아법인이 올린 매출은 무려 22억 달러. 우리 돈으로 2조2000여억원에 이른다.

4월20일 러시아 최고 권위의 비즈니스 전문지인 ‘콤파니아’가 6만1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발표한 ‘러시아 최고 브랜드’ 평가에서 삼성은 코카콜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경쟁사인 노키아는 8위, 소니는 19위였다. 지난해에는 삼성의 휴대전화와 노트북 PC가 ‘러시아 국민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컬러 TV는 3회 연속 수상으로 이미 ‘국민 브랜드’ 마크 영구사용권을 획득했다. 고가 전자제품을 중심으로 한 삼성의 ‘프리미엄 전략’이 제대로 맞아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성전자 “러시아는 성공의 땅”


삼성전자 “러시아는 성공의 땅”

모스크바 중심부 니콜스카야 거리에 있는 삼성 모바일 브랜드 숍.

러시아는 2003년 세계적 투자증권사 골드만삭스가 브라질, 인도, 중국과 함께 ‘브릭스 국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주목을 촉구한 4대 신흥 경제대국 중 하나다. 특히 99년 이후 지속돼온 유가 상승세는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러시아에 엄청난 오일 특수를 가져다주었다. 인구 1억5000만명에 소비 수준도 높아, 세계은행이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 환산한 러시아의 국내총생산은 세계 10위에 이른다. 휴대전화만 해도 2004년 말 46%의 보급률을 보였다. 2005년 말에는 62%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야말로 ‘물 오른 황금어장’이다.

이런 러시아에서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그야말로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소니, 노키아 등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지금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삼성전자 러시아법인 은주상 상무는 “89년 무렵 이미 삼성은 아직 일본 업체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러시아에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 만큼 빨리 뛰어들어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당시 러시아 시장은 전력투구하기엔 위험요소가 너무 많은 곳이었다. 때문에 일본이나 유럽 업체들은 위험을 예측하고 피해가는 전략(리스크 매니지먼트)을 택했다. 그러나 삼성은 과감히 그 위험을 무릅쓰기(리스크 테이킹)로 했다. 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지급 유예)을 선언하자 소니는 직원 2명만을 남기고 사실상 철수한 반면, 삼성은 오히려 마케팅 강화에 나섰던 것이 그 좋은 예다.

러시아법인 김성구 부장은 “삼성맨 특유의 남다른 근성도 한몫했다”고 밝혔다. “일본 기업 주재원들은 러시아 근무를 한직이라 생각해 어떻게든 기본만 하고 빨리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삼성맨들은 ‘주어진 목표 그 이상’을 해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삼성은 시장 특성 파악에도 빨랐다. 대부분의 전자제품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만큼 러시아 소비자들은 주문한 뒤 한참 뒤에나 물건을 전달받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복잡한 통관과 관세 규정도 한몫했다. 삼성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93년부터 모스크바와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에 일종의 ‘보세 창고’를 운영했다. 이로써 ‘소량, 단납기, 다품종’이라는 소비자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었다.

삼성전자 “러시아는 성공의 땅”

모스크바 중심가를 뒤덮다시피 한 삼성 휴대전화 광고판들.모스크바 크렘린궁 앞과 레닌도서관 위에 설치한 삼성의 대형 광고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집무실에서도 훤히 보인다.(왼쪽부터)

98년 모라토리엄 때도 공격적 마케팅

2001년부터는 시장점유율보다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 판매로 매출액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 역시 ‘명품’에 집착하는 러시아 소비자들의 특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은 상무는 “빈부 격차가 크고, 이른바 ‘졸부’들이 많아서인지 고가 브랜드에 대한 욕구가 대단하다. ‘배불뚝이 TV’는 평면 TV에 밀려 거의 팔리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고품격 이미지의 문화-스포츠 마케팅에 유난한 정성을 쏟고, 모스크바 중심가에 최첨단 디지털 제품을 구비한 고객체험관 ‘갤러리 삼성’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러시아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완전 경쟁 시장’이라는 것. 도매, 소매 할 것 없이 대규모 판매망을 갖춘 유통업체들의 입김이 거세다. 그 실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휴대전화 시장이다. 러시아 전역에 1150개의 매장을 가진 ‘유로셋’, 460개 매장을 가진 ‘스비아즈노이’ 등 소매체인들이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다.

삼성은 현금 회전율을 중시하는 이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늘 일정 수준 이상의 이윤을 보장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절묘한 재고관리로 기존 출시 제품의 가격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러시아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소비자가 휴대전화를 먼저 고른 뒤 서비스 사업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서비스 사업자가 보조금 등을 통해 휴대전화 선택의 ‘키’를 쥐고 있는 유럽이나 우리나라와는 크게 다른 점이다. 노키아, 지멘스 등 유럽 업체들은 사업자와의 대규모 거래에는 능하나 소비자 한명 한명을 대상으로 한 소매 마케팅에서는 가전시장 경험이 많은 삼성에 한참 뒤진다. 이 역시 ‘삼성 압승’의 한 요인이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품질이다. 모스크바 중심부 니콜스카야 거리에 있는 삼성 모바일 브랜드 숍 매니저 나탈리아는 “멋진 디자인, 다양한 벨소리, 잔고장 없는 튼튼함이 삼성 휴대전화의 진짜 경쟁력”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러시아는 성공의 땅”

고객체험관 ‘갤러리 삼성’에서 청소년들에게 휴대전화의 첨단기능을 시연해 보이고 있는 도우미.모스크바 트베르스카야 거리에서 삼성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비즈니스맨.(왼쪽부터)

러시아법인 휴대전화마케팅 담당 김윤수 과장은 “올해 말이 되면 이동통신 누계 가입자 수가 9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초기 사용자들이 휴대전화를 바꾸는 시기이기도 한 만큼, 올해 650만대 판매를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다”고 했다. 벌써 1분기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67%나 성장해, 시장 성장률 44.8%를 한참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러시아는 성공의 땅”

모스크바 전승기념관 옆 쿠트좁스키 거리의 한 건물에 부착된 가로 9m, 세로 50m의 초대형 삼성 광고판.2004년 11월7일, 러시아에서 매년 선정·발표하는 ‘올해의 브랜드’상 중 ‘기업 명성 신뢰도’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삼성전자 러시아법인 직원들(오른쪽).

러시아에서 거둔 이윤 러시아에 재투자

삼성은 가전제품 시장에서도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좁은 주거공간에 착안, 폭 35cm의 초소형 드럼세탁기를 저렴한 가격에 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타 가전업체들이 소형 세탁기 시장을 ‘무시’해 소량의 제품을 비싼 가격에 내놓았다면, 삼성은 잠재 수요를 키울 목적으로 제품을 대량생산, 적정 가격에 출시한 것이다. 이를 통해 삼성은 유럽 업체에 비해 취약했던 드럼세탁기 시장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다.

삼성은 ‘러시아에서 거둔 이윤은 모두 러시아에 재투자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많은 투자가 높은 매출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더 많은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제를 확고히 하려는 것. 김윤수 과장은 “영하 40℃의 추위, 아직 불안한 치안 상황을 감내하며 러시아 전역을 누비는 것은 이곳에서 삼성이 명실상부한 최고 최대의 브랜드로 자리 잡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주간동아 2005.05.10 484호 (p32~34)

모스크바=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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