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4

2005.05.10

反부패 주창 교수 보고서 표절 “뭡니까 이게”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5-05-03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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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反부패 주창 교수 보고서 표절 “뭡니까 이게”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A 교수의 논문(왼쪽)과 부방위의 연구용역보고서.

    최근 부패 척결의 일등 공신인 ‘내부고발자’ 보호 법안 마련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이런 와중에 내부고발 관련 논문에 대한 표절 의혹이 뒤늦게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2년 전, 부패방지위원회(이하 부방위)가 주최한 내부공익신고 활성화 방안 공개토론회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발표자로 나선 A 교수가 부방위 연구용역보고서를 그대로 베낀 논문을 발표한 것. 반(反)부패를 논하는 자리에서 ‘학문에서의 부패’라고 할 수 있는 표절이 벌어졌는데도 누구 하나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간 것이다. A 교수는 당시 부방위 전문위원이었으며, 현재 참여연대에서 반부패와 관련한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

    A 교수는 2003년 4월3일 열린 토론회에서 ‘내부공익신고에 대한 일반이론 및 외국사례’라는 제목으로 총 24쪽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중 10∼24쪽의 내용 대부분이 부방위 연구용역보고서를 그대로 베끼거나 요약한 수준이었다. ‘표절’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이는 부방위 보고서는 ‘각국의 부패행위 신고자 보호보상제도에 관한 비교연구’(2002년 10월). 이 보고서는 모 대학 행정학과 교수 등 3명이 공동 집필한 것이다.

    A 교수의 논문과 부방위 보고서가 유사한 사례는 이렇다. 부방위 보고서는 ‘영국에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걸쳐 발생한 대규모 스캔들과 부패사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법 제정 분위기가 고조되었다’고 기술했는데, A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영국에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걸쳐 발생한 대규모 스캔들과 부패사건들로 부패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법 제정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고 썼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A 교수 논문의 결론 부분. A 교수는 여섯 가지 개선점을 제시했는데, 이는 부방위 보고서가 제시한 18개 정책적 건의사항 중 일부와 똑같다. 예를 들자면 보고서는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에 대한 보호 강화. 불이익을 가하는 측에 대한 처벌 강화. 부패방지법이 보호하는 불이익 형태를 보다 광범위하게 규정함’이라고 썼는데, A 교수는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의 강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불이익을 가하는 주체에 대한 처벌의 강화와 더불어, 부패방지법이 보호하는 불이익의 형태를 보다 구체적이고 광범위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서술했다.



    A 교수는 주간동아의 해명 요청에 “외국 사례에 대해 연구한 적이 없는데도 부방위가 발표를 부탁했다. 이에 관련 자료를 달라고 하니 e메일로 용역보고서를 보내주면서 이를 활용하라고 했고, 그래서 활용했다”고 밝혔다. 또 “내게는 아무런 연구가치가 없는 단순한 발표자료이며 일회용으로 사용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방위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진들은 A 교수의 행위가 표절이 분명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동연구진 중 한 명인 이모 박사는 “토론회장에 참석했다가 A 교수의 발표를 듣고 매우 황당했다. 그러나 서로 잘 아는 사이고 해서 구두로 항의하고 넘어갔다”면서 “A 교수의 행위는 표절을 넘어 전재(轉載)에 가깝다”고 말했다. 공동연구진인 또 다른 이모 박사는 “A 교수는 일회성 발표자료였을 뿐이라고 해명하지만, 개인 홈페이지에서는 이 논문을 자신의 연구실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면서 “일반 교수도 아니고 반부패 전문가이자 시민단체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문제에 더욱 투철한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역시 공동연구진인 모 교수는 “부방위가 보고서를 줬다 하더라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그래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A 교수는 “참고문헌에 부방위 보고서를 참고했음을 밝혔고, 외국 사례 부분에도 각주를 달아 부방위 보고서를 정리했음을 분명히 밝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표절에 관한 일반적 기준에 비추어볼 때 A 교수의 해명은 부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표절에 대한 기준 마련을 위해 외국 사례를 연구하고 있는 한양대 유재원 행정학과 교수(한국행정학회 편집이사)는 “인용할 때마다 출처를 밝히는 것이 원칙”이라며 “참고문헌에만 적시했다면 이는 인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표절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은 연구자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느냐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문장마다 인용했고, 인용한 사실을 밝혀두었다 하더라도 연구자 본인만의 아이디어가 없다면 표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최경수 연구실장 또한 부방위 보고서와 A 교수 논문을 검토한 뒤 “이 정도면 형사상 처벌을 받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판단된다”고 의견을 밝혔다.

    한편 부방위는 A 교수의 보고서 표절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주간동아의 질문에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담당자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A 교수는 주간동아의 취재가 있은 뒤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문제의 논문을 ‘연구실적’ 명단에서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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