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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에서 동반자로 “부러워”

佛·獨 공동 교과서 내년부터 사용 합의 … 미래 지향적 기적의 산물 뜨거운 환영

  • 안종웅/ 프랑스 국립동양언어문화연구소 연구원 ahnjongw@hanmail.net

원수에서 동반자로 “부러워”

원수에서 동반자로 “부러워”

역사수업을 받고 있는 독일 뮌스터시의 실러 김나지움 5학년 학생들.

한국과 일본 교육부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동북아시아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논의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마침내한 권의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데 합의하고, 내년부터 두 나라 학생들이 이 교과서로 공부한다는 기자회견을 여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독도 영유권 문제로 두 나라가 갈등을 빚고 있는 현실에서 이는 그저 상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유럽의 오랜 ‘앙숙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은 그러한 상상을 현실로 끌어내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프랑스와 독일 교육부 장관은 3월10일 일명 ‘베를린 합의’에 서명했다. 2006년도 학기부터 두 나라가 공동으로 제작한 역사 교과서를 양국 고등학교에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공동 역사 교과서는 지난해 10월부터 집필에 들어갔다. 교과서는 ‘유럽 고대와 중세까지’ ‘르네상스와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형성’ 등 세 권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앞의 두 책은 점차적으로 사용될 예정이지만, 마지막 책은 2006년 9월부터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로 채택된다. 이 공동 교과서는 단순히 프랑스와 독일의 교류사를 다룬 것이 아니라, 유럽사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유럽연합(EU) 25개국이 추진하고 있는 ‘공동 유럽사 역사 교과서’의 원형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유럽史 폭넓게 다뤄 더 눈길

원수에서 동반자로 “부러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군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초등학생들. 1963년 엘리제 협정 서류에 서명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의 정상들(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지난 수세기 동안 전후 복구작업이 끝나기 무섭게 자국에 유리한 국경선을 긋기 위해 여러 차례 전쟁을 일으켰던 프랑스와 독일이 어떻게 공동 역사 교과서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는 몇몇 정치인이 나서서 하루아침에 결정된 일이 아니다.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오랜 진통 끝에 마침내 얻어낸 산물이다. 이 생명의 시작은 엘리제 협정(Traite de l’Elysee)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와 독일은 원수지간이 되었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들은 매국노들 탓에 나치에 점령되는 수모를 겪었다며 나치 협력자들의 집에 쳐들어가 불을 질렀다. 또 처형도 이루어졌는데 여성인 경우 삭발을 시키고 옷을 벗겨 몸에 나치의 상징인 철십자가를 그려넣은 뒤 상젤리제 거리를 걷게 했다.

18년이 지난 63년,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아데나워 독일 총리는 프랑스의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일명 엘리제 협정이라고도 불리는 프랑스-독일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양국 화해의 시대를 열었다. 엘리제 협정은 한일협정(65년)과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다. 전쟁 피해자와 가해자가 화해의 초석을 놓는다는 의미에서 두 협정은 외형적으론 아주 흡사하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다르다.

엘리제 협정은 ‘화해와 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조항을 두어 두 나라 정상과 장관의 정기적 만남을 의무화했다. 또한 이 조항은 외무부, 국방부, 교육부가 추진해야 하는 큰 방향을 명시했다. 미래의 주역인 두 나라 청소년들에게 화해와 협력을 조성해주기 위해 △상대 국가 언어 교육의 극대화 △동등 학력 인정 △공동 과학 연구 추진을 밝혀둔 것.

이를 위해 ‘청소년을 위한 프랑스-독일 공동위원회’가 구성됐다. 양국이 각각 15명의 위원을 임명하는데, 이중 6명이 공무원이고 나머지 9명은 시민단체 대표 및 역사학자로 구성됐다. ‘공동위원회’는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고 위원장도 교육부 장관에 의해 임명되지만, 예산 집행 감사나 사업 방향 등에서 정부의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는, 국제사회에서 보기 힘든 절대적 독립기관으로 유명하다. 공동위원회의 주임무는 양국 청소년의 교류 활성화. 지난 40년간 공동위원회를 통해 상호 방문한 양국 청소년이 무려 720만명에 달한다. 첫 방문 세대가 벌써 50대가 되어 각 나라에서 중추적 구실을 하고 있고, 이들 세대가 주축이 되어 양국 청소년들이 함께 배우는 공동 역사 교과서를 탄생시킨 것이다.

공동 역사 교과서는 10여년 전부터 학계와 정계에서 조심스럽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역사적 난제들, 즉 전쟁에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나 정치적 이유,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쉽게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그러나 엘리제 협정 40주년이 되던 2003년 1월23일, 베를린에서 열린 청소년 의회에서 처음으로 공동 역사 교과서 발행이 의제로 상정됐다. 뜨거운 토론을 거친 끝에 결과는 의제 통과. 양국 청소년들이 스스로 공동 역사 교과서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이는 두 나라 국가 수반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며, 프랑스-독일 장관회의에서 협력 정책으로 공식 채택되면서 빠르게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공동 역사 교과서는 ‘더 많은 역사 자료와 다양한 시각을 배우고 토론하는 기회를 양국 청소년들에게 제공한다’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고 있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부분들, 예를 들어 제1·2차 세계대전 등 전쟁과 관련된 예민한 사안들은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양국의 견해를병행해 기술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양국 교육학자들은 “이 같은 교과서 기술 방식은 상대방의 처지를 인정하는 기회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논지를 충분히 배운 뒤 토론에 참여하도록 하기 때문에 풍부한 의견 제시와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합의를 향해 정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5.04.26 482호 (p60~61)

안종웅/ 프랑스 국립동양언어문화연구소 연구원 ahnjong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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