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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 병 주고 ‘규제’ 약 주고

정부 사행산업 사회병리 뒤늦은 치유 … 세수 확보 비상 단속 효과 의문 제기도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한탕’ 병 주고 ‘규제’ 약 주고

‘한탕’ 병 주고 ‘규제’ 약 주고

과천 경마장 전경

정부가 사행산업의 병폐를 뿌리뽑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3월 한 달 동안 경마, 경정, 경륜, 복권, 카지노 등 사행산업 실태 조사에 나섰던 국무총리실 및 문화관광부 측은 더 이상 사행산업의 사회병리적 현상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사실상 사행산업을 묵인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법과 제도를 통해 지나치게 비대해진 사행산업의 외형을 묶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

총리실은 5월과 6월 두 달 동안 사행산업 관련 업소의 탈·불법 행위를 계도한 뒤 7월부터 집중 단속에 나설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규제 및 단속 계획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부가 사행산업을 허가해줬는데, 이제 와서 다시 규제한다면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라는 비판도 쏟아진다.

정부가 사행산업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민주당 손봉숙 의원의 대정부질문이 계기였다. 2월17일 손 의원은 “누가 도박이라는 한탕주의의 선봉에 섰는가”라며 사행산업을 부추긴 정부의 책임과 무대책을 질타했다. 손 의원은 “정부가 소액 복권들을 통합, 판돈을 키워놓고 ‘돈 놓고 돈 먹기’식의 한탕주의를 조장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목적이 좋으면 수단은 정당화된다는 논리에 따라 국민들에게 병을 주었다”는 게 손 의원 주장. 그 직후 이해찬 총리는 “사행산업의 문제점을 파악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

법과 제도 통해 본격 압박 정책

‘한탕’ 병 주고 ‘규제’ 약 주고

로또 광고물.

한국의 사행산업은 경제 규모에 비해 비교적 덩치가 큰 편이다. 2004년 경마, 경륜, 경정, 카지노 등 합법화된 사행산업장을 찾은 이용객은 2437만명. 전체 레저산업 이용객의 약 53%에 해당한다. 사행산업에 뿌려진 돈은 더욱 엄청나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경마 등 5대 도박산업의 2003년 국내 시장 규모(총 매출액)는 15조8817억원. 2000년에 비해 2.4배나 성장했다.



그러나 외형에 비해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의 정책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3월23일 이해찬 총리는 총리실을 방문한 손봉숙 의원에게 “국회에서 문제가 제기되기 전까지 사행산업의 문제점 등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고 고백, 사실상 정부의 정책 부재를 시인했다.

국무조정실이 작성한 ‘사행산업 건전화 방안’도 정부의 이런 정책 부재를 첫 번째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국무조정실은 사행산업 건전화 방안 자료에서 “(그동안) 사행산업 전반에 대한 실태 및 부작용 파악이 미흡했고, 전문적 연구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파이’를 키우는 데만 혈안이 됐을 뿐 정작 이를 관리·감독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음을 정부가 인정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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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에서 만든 사행산업 건전화 방안 문건.

국무조정실은 사행산업 관리 부처가 흩어져 있어 정책적 혼선을 더욱 부채질했다고 지적했다. 국무조정실 자료에 따르면 경마는 농림부가, 카지노·경륜·경정은 문화관광부가 관리한다. 최근 시장이 더욱 커진 복권은 국무조정실이 직접 관장한다. 사행산업을 규제하는 관련 법규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러다 보니 국가적 차원의 총괄적 정책 관리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사행산업의 문제점은 비단 정책 및 제도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운영상 문제점도 심각하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내국인 출입 문제를 비롯, 매출액 누락 및 탈세, 낮은 환급률, 불법 사설경마 및 승률조작 등 탈·불법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이 실태 파악을 끝낸 국무조정실의 분석이다. 소싸움, 투견, 투계 등 같은 사행산업은 아예 소관 기관이 불분명해 관리·감독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조사됐다.

국무조정실은 앞으로 사행산업 등과 관련한 도박중독자가 갈수록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2004년 12월 한국마사회 연구용역보고서(2002년12월) ‘도박중독 척도 및 발병률 조사’에 따르면 경마게임 이용자 34%, 내국인 카지노 39.5%, 경륜게임 이용자 49.1%가 문제성 또는 병적 도박자로 나타났다.

이런 도박중독 현상은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가정 파괴, 자살 등 극단적인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 그럼에도 도박중독을 치료할 정부 대책은 전무한 형편이다. 몇몇 사행산업장이 클리닉 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총리실 실사 결과 이는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총리실은 이런 병리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정부가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도박천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 총리실이 만든 대안은 크게 세 가지로 대별된다.

먼저 정부는 사행산업 조사 연구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해찬 총리 지적처럼 2005년 2월 말 현재 정부는 사행산업에 대한 구체적 자료나 통계가 없는 형편이다. 이와 관련 손 의원은 “더욱 효과적인 조사를 위해 한시적으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총리실에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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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및 경륜, 경정 감독위원회를 사행산업감독위원회로 확대 설치하는 것도 국무조정실이 구상하고 있는 대책. 이 경우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사행산업을 효과적으로 규제, 사행산업 전반을 제도 아래에 둘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무조정실은 도박중독자들의 재활을 돕기 위한 클리닉 센터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또 사행산업 전반을 규제할 기준이 마련될 때까지 사행산업을 억제하는 압박 정책을 쓸 계획이다. 경찰청에 전담 팀을 설치, 불법 사행 행위 등을 지속적으로 단속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

그러나 정부의 이런 정책에 쓴소리도 이어진다. 대책이 너무 안일하다는 것이 비판의 주내용이다. 국회 문광위 관계자는 “그동안 사행산업을 필요악으로 치부했던 정부가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릴 것이 뻔한 사행산업 규제에 제대로 나설 수 있겠느냐”고 비아냥거린다. 실상 사행산업이 가져다주는 재정수입은 무시하기 힘들 정도다.

한국조세연구원에 따르면, 로또가 시작되기 전인 2002년 도박산업에서 올린 재정수입(조세+기금 등)은 2조8027억원. 종목별로 다르지만 대체로 도박장 매출액의 20% 정도가 지방세·국세·기금 등 각종 재정수입으로 잡힌다.

효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이용객들은 목숨을 걸고 도박에 나서는데 기구 하나 만들어 그들의 도박심리를 제압할 수 있겠느냐”는 것. 손봉숙 의원은 “지금까지 ‘병’만 주던 정부가 ‘약’을 주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평가할 만하지만 먼저 실태 조사 등을 통해 더욱 강력한 제재조치 등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국무조정실 한 관계자는 “사행산업의 경우 긍정적·부정적인 양면이 공존한다”고 지적하고 “이 가운데 최근 사행성의 심각성이 문제점으로 대두돼 대책 강구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총리실의 이번 활동이 사행산업에 대한 정책적 접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주간동아 2005.04.26 482호 (p46~47)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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