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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워터프론트’ & ‘호파’

노조의 비리, 그리고 몰락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노조의 비리, 그리고 몰락

노조가 비리의 온상으로 지탄받고 있다. 기아차노조의 ‘채용 장사’에다 항만노조의 비리 의혹까지. 두 건의 사태가 시사하는 것들 중 하나는 노조가 이제 하나의 ‘권력’이 돼 있다는 점이다.

권력의 비리 사건이야 너무나 흔한 일이지만, 노조의 비리가 특히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권력화된 노조’라는 말이 갖는 아이러니 탓일 것이다. 노조는 권력의 편이 아니라 권력과 맞서는 약자들의 결사다. 그러므로 반(反)권력이 돼야 할 노조가 권력의 한편이 됐다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존재 근거를 부인하는 중대한 ‘배신행위’가 되는 셈이다. 노조의 부정이 영화에서 곧잘 소재로 활용되는 가장 큰 이유도 아마 그 역설에 있을 것이다.

노조의 비리를 다룬 영화 중에서 가장 알려진 작품이라면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제목인 ‘워터프론트’는 부두, 더 구체적으로는 뉴욕의 부두를 의미한다. 이 부두의 최고 권력자는 바로 항만노조다. 권력의 원천은 노조가 노동자들에게 하역 작업을 할당할 수 있는 전권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이 막강한 권력은 예정된 법칙대로 부패하도록 돼 있다. 노동자들을 등쳐먹고 갖은 행패를 부리는 노조의 행태는 차라리 조직폭력배에 가깝다.

그런데 이 부패권력에 저항하는 한 젊은이가 있다. 말론 브란도가 분한, 권투선수 출신의 테리라는 젊은이는 이 절대권력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 경찰에 노조의 비리를 고발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는 테리는 노조로부터 살해 위협까지 받는다. 노동자들은 겁에 질린 채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 양처럼 온순하던 노동자들은 단결해 부패한 노조를 무너뜨린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파괴할 때 질곡에서 ‘해방’된다는 역설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감독이 엘리아 카잔이고, 영화 제작연도가 1954년이라는 것이 또 한 가지를 시사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카잔은 매카시 광풍이 휘몰아칠 때 의회에 출석해 공산당에서 함께 활동했던 영화 연극계 동료들의 이름을 고발한 과거가 있다. 공교롭게도 워터프론트는 카잔 자신의 얘기를 다룬 듯 내부고발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 ‘카잔이 자기 변호용으로 만들었다’는 뒷공론이 따르기도 했다).



카잔의 개인적인 배경과는 별개로 영화에서 묘사된 노조는 당시의 선악, 냉전 체제의 이분법적 구도를 반영하고 있다. 노조는 악의 세력이고, 전체주의 일당을 상징하는 것으로 비친다. 미소 냉전이 격화되던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테리와 노조가 각각 어느 편과 겹치는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워터프론트’보다는 수십 년 뒤에 만들어졌지만 시간적 배경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또 다른 영화는 트럭노조 얘기를 다룬다. 트럭노조를 이끌던 제임스 호파라는 실존 인물에 대한 영화 ‘호파’다. 이 영화에서도 노조는 힘없는 트럭 노동자들의 단체라기보다는 음험한 집단쯤으로 묘사된다. 호파는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으로 노조를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지만 결국 암흑계와 결탁하고 수백만 달러의 노조 자금을 도박장에 투자하다가 파멸에 이르게 된다. 노조를 부패로 얼룩진 집단으로 그리고 있는 이 두 영화는 노조 또는 노동운동에 대한 환멸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영화가 또 있다. 사회파 감독 마틴 리트의 ‘노마 레이’는 위의 두 영화와는 상반된 지점에 있는 영화다. 여기서 노조는 그 본래의 존재 의의에 충실하다. 한 개인의 권리의식을 눈뜨게 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70년대 후반 미국 남부의 한 보수적인 마을의 평범한 여성 노마 레이의 얘기를 다룬 이 영화는 노동운동을 통해 한 개인이 어떻게 각성되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나는지를 담담하게 따라간다.

전 주민이 대대로 방직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가난한 마을의 미혼모인 노마 레이는 온 가족이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노동자 가정의 딸이다. 자기가 사는 마을이 세상의 전부인 줄로 알고 있던 노마 레이의 삶은 어느 날 이 마을에 섬유노조 소속 노동운동가 루벤이 찾아오면서 결정적으로 바뀐다. 그를 통해 자기 주변의 열악한 노동현실에 눈을 뜨게 된 노마 레이는 공장에 노조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동료들을 규합하고 나선다. 공장주의 감시의 눈을 피해 노동자들의 모임을 가지면서 주변 동료들을 변화시킨 노마 레이는 마침내 공장 파업을 주도하고 노조 설립을 인정받는다.

노조를 바라보는 이 엇갈리는 시각 중 어느 쪽이 더 진실일까라는 것은 우문(愚問)이다. 어느 한쪽이기도 하고, 양쪽 다이기도 하다는 편이 답일 것이다.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노조는 그 같은 의사를 결집해 하나의 권력을 형성한다. 문제는 그렇게 출발한 권력이 누구를 위해 쓰여지느냐다. 한국의 대규모 노조들이 가야 할 길이 어디에 있는지, 이 점만 놓고 본다면 간단한 일일 텐데.



주간동아 481호 (p85~85)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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