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9

2005.04.05

대학가 인문학 죽지 않았다

6년째 계속 ‘중앙 게르마니아’ 학계 화제 … 세상 본질에 천착, 관심 가진 모두에게 개방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5-04-01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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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가 인문학 죽지 않았다

    나이와 전공을 초월한 자유 토론이 벌어지는 '중앙 게르마니아' 콜로키엄 현장.

    대학 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거론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학부제가 시행되면서 인문학 과목들은 학생들의 외면 속에 하나 둘 폐강되기 시작했고, 외국어 컴퓨터 등 실용 ‘학문’이 이를 급속히 대체했다. 이제 학생들은 함께 모여 철학과 역사를 토론하는 대신, 영어와 상식을 ‘스터디’한다. 오늘날 대학에서 인문학은 쓸모없는 ‘잉여 학문’이 되어버린 것일까.

    참석자 동등한 자격으로 ‘끝장 토론’

    하지만 이런 현실을 거부하는 인문학자들의 움직임이 작지만 꾸준히 진행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학문의 본질로 돌아감으로써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내걸고 6년째 계속되고 있는 중앙대 독문과의 인문학 콜로키엄 ‘중앙 게르마니아’가 그것이다.

    3월25일 중앙대 아트센터 한 강의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주제로 한 제64차 ‘중앙 게르마니아’ 콜로키엄이 한창이었다. 학부생부터 대학원생, 직장인, 교수들까지 참석한 이날의 주제 발표자는 서울대 김세균 교수. 1시간여의 주제 발표가 끝난 뒤에는 참석자들의 자유 토론이 이어졌다.

    ‘중앙 게르마니아’는 학계의 화제이자 부러움의 대상. 2000년 8월 ‘독일 문제작 탐구’를 주제로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인문학의 종말’이라 불리는 대학가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며 꾸준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콜로키엄(Colloquium)’이란 라틴어로 ‘함께’를 뜻하는 ‘com’과 ‘말하다’를 뜻하는 ‘loqui’가 합성된 말. 주제 발표 뒤 한두 번의 질의응답으로 끝나는 통상적 학술회의와 달리 공동 토론을 핵심으로 한다. ‘중앙 게르마니아’ 콜로키엄도 늘 2∼3시간 이상씩 이어지는 격렬한 토론으로 유명하다. ‘끝장 토론’이라 불리는 이 토론은 지정 토론자 없이 참석자 모두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 특징. “토론의 완성도보다는 대학 안에 생산적인 담론의 장을 만들어내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중앙대 독문과 김누리 교수)이다.



    대학가 인문학 죽지 않았다
    ‘중앙 게르마니아’의 특별한 점은 여기에 있다. 인문학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문을 열어둔다는 점. ‘중앙’ ‘게르마니아’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이 둘의 한계에 구속되지도 않는다.

    그동안 다뤄온 주제들은 ‘독일 문학 이론과 미학 이론’ ‘문화 비평의 주요 개념’ ‘문화 이론의 거장들’ 등 주로 문학과 문화 이론. 올해는 ‘세계를 뒤흔든 14권의 책’을 주제로 삼아 헤겔의 ‘정신현상학’, 마르크스의 ‘자본론’,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 이론’ 등 현대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고전을 다루는 것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서울대 백승영 교수, 서강대 노명우 교수, 성공회대 조정환 교수, 중앙대 진중권 교수, 청주교대 선우현 교수 등 다양한 학교와 전공의 전문가들이 기꺼이 주제 발표자로 나선다. 중앙대 독문과는 자리를 만들고, 매년 초 연간 일정과 주제·발표자를 공고함으로써 누구나 자연스레 이 ‘인문학의 향연’에 끼어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실을 할 뿐이다.

    대학가 인문학 죽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해 주제 발표한 서울대 김세균 교수.

    중앙대 독문과 김누리 교수는 ‘중앙 게르마니아’에 대해 “인문학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학문의 본령과 대결하는 정통 콜로키엄”이라며 “학생들에게 주제에 깊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적 자극을 주고, 그를 바탕으로 대학의 학문적 풍토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데 목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다른 대학 다른 학과에 파급 효과

    첫해부터 ‘중앙 게르마니아’ 콜로키엄에 참여하고 있는 문강형준(31·서울대 영문과 대학원 석사과정) 씨는 “컴퓨터와 토익 점수, 취직이 생존의 법칙이 되어버린 한국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우매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한곳으로 흘러갈 때 방향을 거스르며 세상의 본질에 천착하는 것, 그래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 것이야말로 인문학이 이 사회에서 담당해야 할 몫이며, ‘중앙 게르마니아’의 의의는 거기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앙 게르마니아’의 성공은 다른 대학, 다른 학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앙대 안에서는 영문과·사회학과 등에 학부생이 참여하는 정기 콜로키엄이 생겼고, 서울대 독일어문화권 연구소도 올 초부터 ‘현대를 다시 읽는다’는 주제로 하이데거·아도르노·짐멜 등을 다루는 ‘관악 블록세미나’를 시작했다.

    미학자이자 시사평론가인 중앙대 진중권 겸임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인문학은 세계를 해석하는 틀이며, 동시에 풍부한 상상력과 창조력의 기초이기 때문에 사회가 아무리 변한다 해도 그 중요성과 필요성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 진 교수는 “학생들이 대학 안에서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하고, 현실 속의 학문을 고민할 수 있도록 관련 프로그램이 폭넓게 확대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가 인문학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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