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6

2005.03.15

‘꼴통’ 10% 털고 지지도 30% 넘자?

한나라당 ‘행정수도특별법’ 통과 후 내분 격화 … ‘덩치 줄여 힘 비축’ 박근혜 대표 결단은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03-09 1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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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꼴통’ 10% 털고 지지도 30% 넘자?

    3월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대결전을 앞둔 2월 말, 한나라당 부설 외곽조직에 근무하는 K씨는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이하 특별법) 본회의 통과를 전제로 두 가지 시나리오를 들고 도상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그 첫 번째는 반대론자들에 대한 대책이었다. 적대적 인식에서 출발한 대책의 뼈대는 ‘뺄셈 정치’를 기본으로 하는 당의 슬림화 작업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제 갈 길로 가자”는 것. K씨는 당 슬림화와 관련, 각종 자료를 토대로 상세한 분석 작업을 마쳤다. 그의 메모에는 ‘쭛쭛쭛 의원, 극렬한 반대 예상. MB(이명박 서울시장 이니셜) 계보’ 등과 같은 소속 의원들의 성향과 성분까지 기록됐다.

    총선 후 당내 인사들의 각종 발언을 분석,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은 인사들의 목록도 작성했다. K씨가 작성한 목록은 묘한 공간에 문제 인사들의 교집합이 형성됐다. 이념적 스펙트럼의 끝점에 위치한 당내 10% 전후의 인사들이 바로 주인공들. 이들을 중심으로 몇몇 인사들이 항상 박 대표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K씨가 입안한 당 슬림화의 단기 방정식은 이들 10% 전후의 세력에 대한 ‘정리’로 압축된다.

    “이번 일 계기로 제 갈 길 가자”

    “박 대표는 그동안 리더십 발휘에 실패했다. 야당다운 어젠다 창출도 못했다. 왜 그런가.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은 세력 분포가 항상 걸림돌로 작용했다. 지도부가 선도적인 어젠다를 내놓으려 하면 당내 양극단의 세력이 이리저리 문제를 제기한다. 양극단을 차지하는 10%가 항상 문제다.”

    K씨는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하여 반대를 하는 인사 대부분이 이 그룹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10%라는 교집합 범위에 해당하는 당내 인사는 10~15명 선. 여기에 소영웅주의적 진보 색채를 띠는 인사, 정치적으로 다른 길을 걷거나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 등과 연대한 일부 인사들까지 합하면 슬림화 대상은 20명 이상으로 확대된다. K씨가 슬림화 후 한나라당의 목표의석을 80~90석으로 잡는 배경이다. 이 수치는 2004년 1월 최병렬 당시 대표가 추진하다 실패했던 당 슬림화 작업과 유사하다. K씨는 3월2일 취재진이 “슬림화 내용을 박 대표에게 보고했는가”라고 묻자 “개인적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며 발을 뺐다.



    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로 내홍에 휩싸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당의 슬림화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전달되고 있다. 극소수 측근 그룹이 입안해놓고, 쉬쉬 하는 경우도 있고 소속 의원들이 박 대표와 독대, 의견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특별법이 통과된 3월3일, 3선의 임인배 의원이 박 대표와 독대를 했다. 이 자리에서 그가 박 대표에게 건넨 조언도 이른바 당의 슬림화 작업이 핵심 요지였다.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한 사람들의 사표는 다 받아라. 세 자릿수 야당은 부담스럽다. 두 자리로 줄일 각오를 하라. 90명 선이 적당하다.”

    K씨의 도상연습 내용과 임 의원의 슬림화 목표치는 언뜻 유사해 보인다. 배경은 더욱 닮았다.

    ‘꼴통’ 10% 털고 지지도 30% 넘자?

    3월2일 한나라당 한 의원이 의장 명패를 김덕규 부의장에게 던지고 있다.

    1년 전부터 ‘슬림화’ 시나리오

    “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 때를 보면 알 수 있듯 덩치 큰 야당은 효율적으로 싸우지 못한다. 당 지도부가 덩치 큰 야당을 운영하는 것도 부담이다. 소수정예가 훨씬 안정적이다.”

    임 의원은 3년 남은 대선까지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는 주장 외에 슬림화가 중원(충청) 관리의 수단임도 부정하지 않았다.

    “솔직히 충청 표심을 무시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특별법에 반대하면 ‘충청’을 포기해야 한다. 그곳을 포기하고 대선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특별법에 합의하면 5대 5는 아니더라도 6대 4, 최소한 7대 3의 비율로 충청권에 한나라당의 교두보는 확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앞서의 K씨도 슬림화로 이념적 편향성과 영남 고립 구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의 주장이다.

    “이념적 스펙트럼의 끝점에 있는 10%를 정리하면, 우선 전국에 산재한 중도성향의 유권자 가운데 10~15%를 한나라당의 관심권으로 유도할 수 있다. 또 30% 전후의 중원 패권을 거머쥐는 보너스도 얻을 수 있다.”

    임 의원은 “슬림화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한다. 임 의원의 체중조절론은 당내 몇몇 의원들과 조율한 결과다. 임 의원은 “당의 체질 개선을 요청하자 박 대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더라”고 말했다.

    3월3일, 수도권의 또 다른 중진도 박 대표를 찾아가 “침묵하는 다수가 소수의 목소리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결단’을 촉구했다. 박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감정 대립이 심한 상태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참에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의원들의 태도는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무성 사무총장과 전여옥 대변인 등은 “특별법에 반대, 사표를 쓴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라”며 반대파와 비주류들을 압박했다. 박 대표는 말을 아꼈지만 그들이 박 대표의 복심이라는 점에서 속내를 읽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박 대표 주변에서 “비주류 및 이른바 ‘꼴통’ 인사들과 결별해야 한다”는 시나리오가 등장한 것은 1년 전이다. 이를 입에 올린 사람은 박세일 당시 비례대표 당선자였다. 그는 2004년 4월 총선 직후 한나라당의 장기 로드맵과 관련 ‘당 해체 후 재창당’을 모델로 제시했다. 박 당선자는 법률적·정치적 단절 등을 통해 한나라당과의 철저한 결별을 주장했다. 박 당선자는 당시 수구 꼴통 및 부패 이미지가 강한 인사들에 대한 인적 청산을 방법의 하나로 제시했다.

    ‘꼴통’ 10% 털고 지지도 30% 넘자?

    2월17일 수도이전 반대 농성을 하고 있는 한나라당 정두언, 박계동, 김문수, 심재철, 이재오, 배일도 의원(뒷 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재산 등록 문제 등과 관련 정계 입문을 극구 거부했던 박 당선자를 여의도로 초빙한 사람은 박 대표. 결국 박 당선자가 주장한 당 해체 후 재창당 시나리오는 박 대표의 시나리오로 평가됐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3월2일 “당시 언론이 눈치를 채지 못했을 뿐, 주류 탈당론이라는 거사가 진행될 뻔했다”고 말했다.

    지고도 이긴 총선을 진두지휘한 박 대표의 위상과 카리스마를 앞세워 당시 결단을 내렸다면 지금 한나라당은 훨씬 젊고 건강한 당이 됐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시기와 방법, 총선 직후의 반짝 경기(?)에 안착했던 당 지도부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4대 입법 문제 등과 관련 당 내분이 깊어지고 집권 회의론이 강타하던 2005년 1월 초 다시 재창당에 준하는 ‘헤쳐 모여’론이 힘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인적 청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특히 영남 고립화에 대한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언급됐고, 경보음을 먼저 울린 곳은 여의도연구소였다. 연구소 관계자는 “한나라당은 지역과 이념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고 커밍아웃했다. 최근 두 번의 대선에서 호남·충청 지역 연합에 계속 패한 것에 대한 대책이 없을 경우 한나라당은 과거 호남 고립 구도에 갇혀 항상 소수로 머물렀던 민주당과 같은 처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당시 박 대표의 이미지도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박 대표 취임 초 여의도연구소가 극비리에 한 표적집단면접(FGI)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극에 달했지만 그 부정적 이미지가 박 대표에게 투영되지 않아 총선 등에서 선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4년 말 조사에서는 박 대표의 상품성이 상당 부분 훼손된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4대 입법과 관련한 리더십 부재, 보수 일변도의 인적 배치 및 당 정체성 등이 요인으로 떠올랐다.

    3월4일 김덕룡 원내대표 사퇴

    2월3일과 4일, 제천에서 열린 연찬회에서 여의도연구소 측은 이 문제를 놓고 의원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여의도연구소 관계자는 “영남 고립 구도와 30%대를 넘지 못하는 지지도, 이념적 문제 등을 넘을 수 있는 각종 방안이 거론됐다”고 말했다. “영남고립 구도의 탈피, 지지도 30%대를 넘기 위한 전략, 이념적 한계 등을 넘기 위한 수단으로 97년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활용했던 DJP 연대론도 연구 분석했다”고 밝혔다.

    호남 및 색깔론에 고립돼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던 DJ가 97년 대선에서 이긴 것은 김종필 자민련 총재, 박태준 전 총리 등과 같은 보수세력들과 연대한 이른바 DJP 연합이 결정적이었다는 것. 그 벽을 넘기 위해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은 최근 민주당·자민련과의 연대를 구상했다. 한나라당 이정현 상근부대변인은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민주당·적극적인 연대 또는 연합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남 민심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실망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한나라당이 호남 민심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다. 향후 권력 분점을 통해 ‘연합’을 모색할 수도 있지 않겠나.”

    여권이 지방선거 전후 민주당과 전격 통합, ‘호남+충청’ 연합을 통한 영남 포위전략을 또다시 구사할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한나라당의 선공은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논리에 따라 박계동 의원과 또 다른 밀사가 민주당, 자민련 인사와 접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안에 대해 두 당은 손익계산을 끝내지 못해 아직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3월4일 김덕룡 원내대표가 사퇴했다. 이를 전후해 당 지도부와 특별법 반대론자들은 2회전에 돌입했다. 형세는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 주류 그룹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표면적으로 당 지도부는 당직을 사퇴한 인사들을 다시 포용한다는 태도다. 박 대표는 당 일각에서 건의한 10%의 꼴통과 반대파 등에 대한 결별 절차는 밟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반대파 및 비주류에 대한) 결단은 오래전부터 요청받았지만 정치란 찬성과 반대가 공존해야 한다”며 결별을 비정치적 행위로 치부했다. 그러나 반대파들의 공세가 거셀수록 결별 시나리오는 매우 강한 휘발성을 띠며 한나라당 내부를 관통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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