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9

2005.01.18

“집 나간 교육아 교육아 하루빨리 돌아와라”

이기준 장관 3일 만에 전격 사퇴 ‘총체적 난국’ … ‘교육 대통령’ 선언 헛구호 그칠 가능성 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5-01-13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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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나간 교육아 교육아   하루빨리 돌아와라”

    참여정부 2년 사이에 벌써 세 명의 교육부총리가 불명예 퇴진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기준, 안병영, 윤덕홍 전 부청리(왼쪽부터).

    서툰 뱃사공들 탓에 교육 정책이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다시 물로 돌아올 기회마저 놓치고 말 것이다.”

    참여정부의 교육 정책 입안 과정에 깊숙이 참여했던 한 인사가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인선 파문을 보며 밝힌 소감이다.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넘어서 참담함과 분노를 느낀다”며 “이제 교육 개혁은 다음 정권에 기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털어놓았다.

    1월7일 오후 이 부총리가 취임 3일 만에 전격 사퇴하면서 그를 둘러싼 파문은 일단락됐지만, 참여정부의 교육 정책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을 입었다. 과연 이처럼 만신창이가 된 교육부에 들어와 책임을 맡으려는 이가 있을까 하는 점이 지금 참여정부를 짓누르는 고민거리다.

    2년간 ‘바람 잘 날 없던 나날’의 연속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 속에 출범한 참여정부가 잇따른 정책적 악수(惡手)로 휘청대고 있다. 2003년 3월 임기 5년을 사실상 보장받으며 취임했던 윤덕홍 전 부총리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파문 등으로 9개월 만에 낙마한 뒤, 교육부는 교육 주체 사이의 끝없는 갈등과 사회적 논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의 수능시험 집단 부정 사태를 비롯해, 고교등급제 파문, 대입제도 개편안 갈등 등 교육부의 2년은 ‘바람 잘 날 없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교육 분야 정책 참모였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어쩌면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은 애초 노 대통령의 교육 관련 정책이 분명치 않았다는 점인지도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노 후보 진영에는 이회창 캠프 쪽에 비해 교육 전문가들이 많이 부족했다. 우리는 노 후보의 국정운영 철학이던 분권, 자치, 참여를 교육 현실에서도 구현해야 한다는 정도의 줄기만 잡았을 뿐, 그것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것인가 하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나온 것이 ‘교육부 장관을 잘 임명해 임기 5년을 같이 가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이었는데, 윤 부총리가 일찍 물러나면서 이것도 무산돼버렸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때부터 교육 정책 전반이 꼬이게 된 것 같다.”

    “집 나간 교육아 교육아   하루빨리 돌아와라”

    취임 3일째인 1월7일 오후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기준 부총리.

    특히 윤 부총리가 재임 기간 내내 ‘NEIS’ 등 현안만 쫓아가다 뚜렷한 개혁 방향조차 제시하지 못한 채 물러난 것이 뼈아팠다. 참여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사였던 그의 교육 개혁 철학이 한 번 제대로 펼쳐지지도 못한 채 접히면서, 참여정부는 ‘힘있는 시기’에 자신들의 교육철학을 교육부에 이식할 틈을 놓치고 만 것이다.

    윤 부총리는 퇴임 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입각과 동시에 보수적 교육관료들을 물갈이하라는 요구가 많았지만, 나는 그것이 오히려 파벌만 형성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해 피했다. 1년 정도 같이 일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인사하기 위해, 인사 파일도 학력이나 출신 지역이 아니라 해당 직원이 해온 일 중심으로 기록하도록 했는데…”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윤 부총리는 갑작스레 물러났고, 참여정부의 인맥은 교육부 안에 뿌리내리기도 전에 기존 관료들의 역풍을 맞았다.

    한 교육부 공무원은 “윤 부총리는 NEIS 문제와 판교 학원단지 대응에 진이 빠져 다른 문제는 검토조차 못했고, 후임 안병영 부총리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 마련에 허덕이다 대입제도 개선안 논란, 고교등급제·고교 내신 부풀리기 파문, 집단적 수능 부정 등 갖가지 이슈에 휩쓸려 다니기만 했다. 참여정부 출범 후 2년이 지났지만, 이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 방향에 대해 우리는 제대로 고민해본 적조차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참여정부의 교육 정책이 한계에 부딪힌 또 다른 원인은 의욕적으로 출범한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전혀 제 구실을 하지 못한 데 있다. 교육 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독점하면서 ‘교육부 해체론’이 일 정도로 비대해진 교육부의 권한을 제한할 장치로 혁신위를 구상했던 노 대통령은, 당초 이 기구가 일선 교육 주체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개혁적 정책들을 입안함으로써 교육계에 활력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 카드로 활용된 것이 당시 경남 거창 샛별중학교 교장이던 전성은 혁신위 위원장. 전 위원장은 대안학교 창시자로 꼽히는 거창고 설립자 고(故) 전영창 선생의 아들로 노 당선자와는 80년대부터 인연을 맺으며 ‘교육 개혁’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던 인물이다. 노 대통령은 대학 졸업 후 평생을 대안교육에 투신한 그의 ‘개혁성’과 ‘현장 경험’을 높이 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 위원장은 교육부뿐 아니라 혁신위를 장악하는 것조차 실패함으로써 참여정부가 당초 혁신위에 기대했던 소임을 무위로 만들어버렸다.

    “집 나간 교육아 교육아   하루빨리 돌아와라”

    윤덕홍 부총리가 NEIS 문제 등에 대해 책임지고 퇴진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부모 단체 회원들.

    초기 혁신위 조직 구성에 참여했던 한 인사의 말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껏 한국 교육을 이끌어 온 명문대 교수 출신 인맥을 ‘구악(舊惡)’으로 여긴 면이 있다. 그 대안으로 삼은 것이 시골 학교 교장 전 위원장이었다. 노 대통령은 전 위원장을 혁신위 위원장에 임명한 뒤 ‘알아서 하십시오’ 하는 식으로 전권을 맡겼다. 하지만 교육 정책에 대한 경험이 없는 데다 정치력이나 중앙 인맥도 전무한 전 위원장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겠나. 혁신위원장은 여러 분야,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접촉하며 개혁의 공통분모를 이끌어내야 하는 굉장히 정치적인 자리다. 그런데 전 위원장은 ‘존경받는 교육자’였을 뿐, 행정가가 아니었다. 양자 사이의 간격은 도저히 메울 수 없을 만큼 컸다.”

    교육혁신위 아이디어 정책 결정서 번번이 배제

    전 위원장의 인선에 대해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또 다른 인사 역시 “개혁성과 도덕적 우위만으로 교육부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 너무 안일한 선택이었다’고 지적했다. 수십년간 교육 분야에서만 일해온 ‘노회한’ 교육관료들을 상대하기에 전 위원장은 너무 약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 위원장은 혁신위 조직을 구성하면서 ‘서울 명문대 출신 인사는 배제한다’는 암묵적 원칙 아래 중앙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방의 개혁적 인사들을 주로 뽑았다. 혁신위의 기초를 세웠던 참여정부 초기의 정책 입안자들은 혁신위원 인선에서 배제됐고, 정책 입안과 집행력 면에서 전혀 검증받지 않은 이들로 채워진 혁신위는 교육부와의 기 싸움을 버텨내지 못했다. 혁신위가 의욕적으로 내놓은 교육 개혁안들이 교육부에 의해 ‘실현가능성 없는 구호’로 치부되면서, 혁신위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번번이 배제되는 ‘아이디어 뱅크’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그나마 참여정부와 코드가 맞았던 윤 부총리 시절에는 두 조직 사이의 갈등이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안 부총리가 임명된 뒤부터 교육부는 혁신위를 내놓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혁신위가 교육 정책을 마련하면, 훨씬 우수한 전문가들을 동원해 그것이 왜 부적절한지를 밝혀낼 자료를 만들었고, 결국 노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식이었다.”(한국해양대 김용일 교수)

    두 조직의 충돌과 승패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2004년 여름을 달궜던 ‘교육이력철 논란’. 그해 3월 혁신위가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 마련을 위해 ‘대입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 교육부는 즉각 자체 대입 특위를 꾸려 별도의 입시안 마련에 나섰다. 그리고 혁신위가 입시개혁의 핵심 아이디어로 제안한 ‘수능의 자격시험화와 교육이력철을 통한 학생 선발 방식’을 모두 폐기시켰다.

    ‘교육이력철’이란 교사가 직접 교육과정을 구상하고 평가 기준을 만든 뒤 이에 비추어 학생의 성취 정도를 기록하도록 한 서류. 혁신위 안(案)에 따르면 ‘교육이력철’에는 해당 과목 점수뿐 아니라 학생이 수업 시간에 보인 반응이나 장단점 등도 면밀히 기록된다. 수능은 자격시험으로만 이용하고, 대학은 학생 개인의 능력·특기·인성 등 모든 것이 기록된 이 서류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라는 게 혁신위 대입안의 뼈대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교육부가 “기존 학생부와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으며 공연히 혼선만 일으킨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집 나간 교육아 교육아   하루빨리 돌아와라”

    2003년 국회 교육위원회에 출석한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

    교육에 무관심한 참여정부 분위기도 한몫

    두 조직의 입시안 경쟁은 결국 청와대가 교육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혁신위의 완패로 끝났고, 이에 반발해 ‘교육이력철’ 구상을 주도했던 김민남 혁신위 선임위원이 사표를 제출하면서 혁신위는 교육부에 맞설 힘마저 잃어버렸다.

    김 선임위원의 후임으로 임명된 박도순 선임위원은 고려대 교수로, 지방대 교수 일색인 혁신위원 가운데 유일한 서울 소재 대학 교수. 비서울, 개혁세력 중심으로 교육부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다던 혁신위의 포부는 이 사건 이후 사실상 무산되고 말았다.

    교육부가 기획과 집행·감사·평가까지 도맡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교육부의 업무 가운데 평가 영역을 분리해 독립적 기구에 맡기고 초·중등 관리 업무는 시·도교육청이나 일선 학교에 넘기는 쪽으로 개편하겠다던 혁신위의 아이디어도 교육부의 강력 반발에 밀려 끝내 좌초됐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교육 혁신안들이 실제 정책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상황을 보며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혁신위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자문 기구인 혁신위는 법적 집행력이나 교육부를 통제할 힘이 전혀 없는, 말 그대로 ‘자문 기구’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지 않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나. 혁신위가 교육 개혁의 중심에 설 것이라고 여겨졌던 참여정부 초기에는 교육부 담당자들이 직접 찾아와 정책을 보고하는 등 우리를 ‘대우’했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교류가 뚝 끊겼다. 혁신위 쪽에서 자료를 요구해도 차일피일 미루는 등 협조도 없었다. 결국 인력과 재정이 전혀 없는 우리는 일을 추진할 힘을 잃었다”고 털어놓았다.

    상황이 이 지경으로 치닫는 데는 교육에 관해 ‘무관심한’ 참여정부의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대선 과정에서 노 후보의 교육 정책 개발에 참여했던 이종태 전 교육개발원 연구원은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에 교육 문제를 전담하는 수석 비서관이 있었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조직 구성 과정에서 이 인원이 빠졌다. 교육계에서는 다양한 정책을 조율하고 청와대의 철학을 전달하려면 관련 비서관이 꼭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교육 관련 이슈는 정책 순위에서 자꾸 처졌고, 재야의 의견이 청와대에 올라갈 통로도 사라진 게 아닌가 싶다. 정책 난맥상이 반복되면서 뒤늦게 사회정책수석 밑에 교육문화비서관직이 신설됐지만, 교육부 관료 출신이 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의견 수렴이라는 당초 목적은 오히려 난망해졌다”고 지적했다.

    교육철학 재정립 … 흔들림 없는 추진이 관건

    참여정부는 ‘교육 개혁’에 대한 의지만 강했을 뿐, 이를 뒷받침할 만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의 교육 현실은 교육 개혁의 각론을 마련하지 않은 집권 세력의 2년 실험이 남긴 참담한 실패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래서 교육계 주변에서는 지금이라도 참여정부가 시스템을 갖추고 교육철학을 바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만중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이기준 부총리 사퇴 후 참여정부의 교육 현실은 개별 사안을 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총체적인 난국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노 대통령이 초심으로 돌아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범교육계의 지지를 받는 인물을 교육부총리로 인선하고, 그에게 강력한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한 번 흔들리면 우리 교육은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 말했다.

    엄기형 한국교원대 교수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 정부가 남은 3년을 이끌어갈 교육철학이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에 정치적인 고려가 개입되고, 개별 이슈에 따라 정부의 대응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현장에서의 갈등과 충돌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는 새 부총리를 임명하면서 교육 정책의 아웃 라인을 분명히 해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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