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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ㅣ‘신석기 블루스’

불황 한파 ‘시장통 변호사’ 현실 되나

불황 한파 ‘시장통 변호사’ 현실 되나

불황 한파  ‘시장통 변호사’  현실 되나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이 제작되는 영화 장르 가운데 하나가 법정 드라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 같은 고전을 비롯해서 ‘어퓨 굿맨’ 등에 이르기까지 법정은 영화의 단골 소재다. 인기 TV 드라마인 ‘앨리 맥빌’도 로펌 소속 인물들이 주인공인 것은 물론 법정 장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이렇게 법정물 인기가 높은 이유는 뭘까. 영화 속 미국의 재판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해답이 짐작된다.

미국의 재판 과정은 우리와 다른 점이 많다. 무엇보다 법정 공방이 게임이나 운동 경기처럼 전개된다. 영미식 공판의 특징인 배심원제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법정에서 증거 조사 등이 활발히 이뤄지는 공판 중심주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사과정이 사법 절차의 ‘본 게임’으로 인식되는 한국과 달리 법정에서 메인 게임이 벌어지는 미국에서는 얼마나 설득력 있는 논변을 펴느냐가 중요해 법정 공방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재판에 이기려면 배심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배심원들이 법률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다 보니 법률적 지식뿐만 아니라 법정에서 ‘쇼’를 연출할 필요도 있고, 감성에 호소하려다 보면 탤런트적인 기질도 필요하다. 감동적인-혹은 연출된 감동에 의해-승부를 일거에 뒤집는 역전극도 많고, 의외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할리우드가 법정물을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흥미롭고, 그래서 할리우드 법정물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다윗과 골리앗’식 싸움이다.

미국은 변호사 천국이라고 할 만큼 변호사가 많다.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하려면 변호사 자격증이 거의 필수라고 할 정도다. 역대 대통령의 60%, 연방 상·하원 의원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변호사 출신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였던 에드워즈 상원의원도 변호사다. 그의 아내도 변호사다. 그러나 모든 변호사들이 이렇게 상류층으로 진입하는 건 아니다. ‘변호사’라는 말이 고소득 전문직과 동의어처럼 여겨지는 우리와 달리 미국 변호사들의 소득 수준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같은 직업이지만 그 안에 계층 차 정도가 아닌 ‘계급 차’가 존재한다.

최정상급 변호사들은 연간 수천만 달러의 고소득을 올리지만 병원 구급차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의료사고 분쟁을 부추겨 푼돈이나 뜯어내는 변호사들, 즉 ‘앰뷸런스 체이서(ambulance chaser)’로 불리는 변호사들도 있다. 다윗과 골리앗이라 함은 이 피라미드 구조의 맨 하단과 꼭대기, 즉 3류 대 정상급 변호사 간의 대결 구도를 이르는 것이다. 변변찮은 변호사가 거물 변호사를 꺾고 승소하는 줄거리라면 프로야구의 9회말 역전극보다 못할 게 없다.

존 그리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레인메이커(The Rainmaker·사진)’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지방대 법대를 갓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도 간신히 합격한 신참 변호사 루디. 그 역시 앰뷸런스를 쫓아다니기에 바쁜 앰뷸런스 체이서다. 루디는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의뢰를 받는다. 상대는 막강파워의 대형 보험회사. 루디의 상대방은 당연히 대기업에 걸맞은 최고의 변호사들이다. 결국 루디, 그리고 정의는 승리하는데 영화에 루디의 ‘그 후’가 나오지는 않지만 현실에서라면 그의 몸값은 일약 수백만 달러로 치솟았을 것이다.



최근 개봉된 영화 ‘신석기 블루스’는 한국의 변호사가 주인공이다. 한국에서도 변호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적잖게 등장하는 직업군의 하나여서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 별다른 것은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새로운 변호사 상이다. 신석기는 종전의 ‘변호사님’과 달리 시장통에서 상인들을 상대하며 먹고살기도 벅찬, 정말 ‘별 볼일 없는’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의 전복이다.

그러나 ‘신석기 블루스’의 ‘파격’은 실은 파격으로만 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리얼한 현실(의 예고)을 담고 있다. 즉 최근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변호사 인력 시장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 해 1000명씩 배출되는 데다 불황의 한파라는 이중고. 앞으로도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로스쿨 도입에 법률시장 개방으로 변호사의 ‘공급’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시원찮은 변호사’라는 ‘신석기 블루스’의 역발상은 그만큼 아직은 시장통 변호사가 낯설어 보인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그리 머지않아-혹은 이미-‘신석기형(形)’ 변호사들을 영화가 아닌 주변에서 보게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05.01.11 468호 (p81~81)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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