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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터키를 어찌할고…” EU의 딜레마

올 10월부터 EU 가입 협상 개시 예정 … 유럽 각국과 이해 얽혀 ‘한 식구 되기’ 머나먼 길

  • 케임브리지=안병억 통신원 anpye@hanmail.net

“터키를 어찌할고…” EU의 딜레마

2005년 10월3일부터 가입 협상을 다시 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아직도 가입까지는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

2004년 12월1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에르도간 터키 총리는 자국과 EU 간 가입 협상 개시 합의를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1963년 유럽공동체(EC) 가입을 목표로 준회원국 협상을 체결, 41년 동안 유럽에 구애를 해온 터키의 꿈이 일부나마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터키 총리가 밝혔듯 터키의 EU 가입에는 여전히 많은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다. 앞으로도 터키가 EU에 가입하기까지는 최소 10년에서 길어지면 20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의 정체성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회원국 사이의 힘의 역학관계, 키프로스 문제 등이 장애물이다.

지도력 손상 우려한 프랑스 적극 반대

터키의 EU 가입에 대해 가장 반대 여론이 높은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터키가 ‘유럽’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EU의 기존 15개 회원국은 물론 2004년 5월 신규 가입한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중동부 유럽 10개 회원국 모두가 그리스 로마 역사와 문화, 기독교를 공유한다. 그러나 터키는 다르다. 오히려 터키의 선조 오스만제국은 유럽을 침략하는 등 유럽과 많은 전쟁을 벌여왔다. 또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가장 세속화하긴 했지만 국민의 99%가 이슬람 신자인 나라다. 이 때문에 터키가 EU에 가입할 경우 EU의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현재 프랑스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 당원의 72%가 터키 EU 가입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는 표면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친미 성향의 터키가 가입할 경우, EU의 지도자 구실을 자청해온 프랑스가 지도력을 손상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한 터키는 냉전 시대 미국의 맹방이었다. 또 아시아와 유럽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리아, 이란, 이라크와도 국경을 맞대고 있다. 즉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는 전통적인 드골주의 외교정책 노선에 따라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을 견제하는 정책을 시행해오고 있다. 미국 견제를 위해 프랑스는 경제대국 독일과 적극 협력, 유럽 통합을 이끌어왔다. 그런데 인구 7000여만명에 친미 성향을 띠는 터키가 EU에 가입한다면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과 긴밀히 협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럽의 경제통합에는 찬성하지만, 긴밀한 정치협력에는 반대해온 영국이 터키 가입을 적극 환영해왔다. 영국은 터키가 차지하고 있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또 터키 가입으로 유럽통합을 주도해온 프랑스와 독일을 다소나마 견제할 수 있는 회원국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다. 또 회원국이 확대되면 이들이 EU에 적응하는 데 최소 몇 년이 더 걸리기 때문에 정치통합이 더뎌질 수 있다는 점도 영국을 기쁘게 하는 요소다.

터키 가입에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독일은 각 정당마다 태도를 달리하고 있다.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는 찬성하지만, 야당인 기독교민주당과 기독교사회당은 반대를 선언했다. 독일은 유럽통합을 주도해왔기 때문에 터키 가입을 반대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 여당 내부에서조차 이 문제는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2006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독일은 특히 터키 가입으로 많은 터키 노동자가 국내로 유입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독일은 6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터키로부터 많은 노동자를 받아왔다. 현재 8200여만명의 독일 인구 가운데 터키인은 200여만명으로 거주 외국인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키프로스 문제도 커다란 장애물

EU는 상품과 서비스, 자본은 물론 노동력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시장이다. 다만 신규 회원국 국민의 경우 보통 최대 7년 동안 기존 회원국으로의 자유 이동이 금지된다. 복지 수준이 낮은 회원국 국민이 선진 회원국으로 대량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번 EU 정상회담에서 독일 등 일부 기존 회원국은 터키가 회원국이 된다 하더라도 노동력의 자유 이동을 7년보다 더 오랜 기간 금지하고, 공동농업 정책에 따라 농민에게 지원하는 보조금도 더 많은 유예기간을 두자는 안을 밀어붙였다. 이에 터키는 이런 조항이 다른 신규 회원국에 적용하지 않는 조치라며 강력 반발했다. 2005년 10월3일부터 구체적인 가입 협상이 진행됨에 따라 이 문제가 또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터키의 인구는 현재 7000여만명 수준. 독일과 프랑스 등 서구 유럽의 출생률이 1명을 조금 넘는 데 반해 터키의 출생률은 2명 정도다. 이 때문에 터키가 10년 뒤 가입한다면 현재 8200만여명의 독일 인구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EU의 핵심기구인 회원국 장관들이 모여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각료이사회에서 터키는 가장 많은 표결권을 가진 나라가 된다. 현재는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4개 회원국이 인구에 비례해 가장 많은 표결권을 가지고 있다. 즉, 기존 회원국 간 힘의 역학관계가 터키 가입으로 인해 달라지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유럽의회에도 터키가 가장 많은 의원을 보내게 된다.

이밖에도 터키 EU 가입의 장애물은 또 있다. 키프로스가 그것.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는 그리스인 약 77%, 터키인 약 18%로 구성된 나라다. 74년 그리스와의 합병을 주장하는 남부 지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자 터키는 터키계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군사 개입을 단행했다. 이어 83년 ‘터키계 북키프로스 공화국’이 선포됐지만 국제 사회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2003년 5월1일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은 그리스계 키프로스가 이끄는 정부가 EU에 회원 가입했다.

이에 EU 가입 협상 개시를 앞두고 EU는 터키에 키프로스 정부를 승인할 것을 요구했지만 터키는 거부했다. 다만 터키는 기존 회원국과 준회원국 협정을 체결한 뒤 다시 가입 협상을 시작한다고만 합의했다. 즉, 키프로스 정부를 정식 승인하지 않고 가입 전 단계인 준회원국 협정만 서명한 것이다.

이 같은 합의 내용이 알려진 뒤, 독일과 프랑스의 몇몇 언론들은 EU가 터키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고 비판했다. 군사적으로 키프로스 북부를 무단 점령했고, 유엔의 철군을 무시하고 있는 터키에 압력을 행사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앞으로 10개월 뒤 터키의 가입 협상이 재개된다. 그러나 EU는 터키의 정치·경제 개혁이 더딜 경우 가입 협상을 중단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10년 뒤 터키가 가입하더라도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회부하겠다고 밝혔다. 이래저래 이슬람 터키의 EU 가입은 평탄하지 않다.



주간동아 468호 (p52~53)

케임브리지=안병억 통신원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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