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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카슈랑스 갈등, 소비자는 없다”

은행·보험업계 ‘밥그릇 싸움’에 휘둘리는 정부 … 소비자 업계에 이익 되도록 감독해야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방카슈랑스 갈등, 소비자는 없다”

“방카슈랑스 갈등, 소비자는 없다”

2004년 10월12일 방카슈랑스 2단계 확대 시행에 반발해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보험설계사들.

은행과 보험사 간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였던 ‘방카슈랑스(은행에서 보험 상품을 파는 것) 2단계 확대 실시’ 문제가 마무리돼 가고 있다.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는 당초 예정된 개인보장성 보험 가운데 특약이 없는 상해·질병·간병 보험만 4월부터 은행 판매를 허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특약성 질병보험인 CI(치명적 질병)보험과 종신·정기사망·자동차 보험은 2007년 4월의 제3단계 확대 시행까지 2년간 은행 판매가 유예된다. 2003년 9월 시작한 방카슈랑스 1단계는 저축성 보험상품(저축성 개인연금·교육보험 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재경부 방침은 “2단계 시행으로 정부 정책의 일관성은 유지하되, 1단계 부작용의 최소화 차원에서 중요 상품의 판매는 연기한다”는 것이다. 이 절충안에 대해 은행과 보험사는 표면적으로는 모두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메이저사를 중심으로 한 보험업계는 안도하는 빛이 역력하다. 불과 1년7개월 전 국무회의를 통과한 보험업법 시행령을 총공세를 통해 앞뒤로 흔드는 데 성공한 때문이다.

2004년 하반기부터 보험사들은 “방카슈랑스 2단계 실시는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펼쳐왔다. 제2금융권 중심의 상급 노조단체인 전국사무금융노조연맹 또한 보험사들과 발맞춰 단식투쟁을 벌이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지금 상태에서 2단계 실시가 이루어지면 보험사는 고사하고 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관련 당국끼리도 “연기” “실시” 갈등 겪어



은행권도 가만있지 않았다. 보험사보다는 수세적이지만 일간지 신문 광고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반대 논리를 폈다. 금융 당국 또한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는 연기를, 재경부는 “법대로 실시”를 강조하며 갈등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 와중에 정작 중요한 보험 소비자 편익 증대 문제는 실종됐다. 보험소비자연맹이 2004년 최악의 뉴스로 ‘갈팡질팡 방카슈랑스 정책’을 선정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애초 정부와 금융계가 방카슈랑스 도입에 합의한 것은 금융 소비자의 이익과 보험사의 신규 시장 개척, 은행의 수익성 개선에 두루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20여년 가까이 논의를 거친 까닭에 시행 초기에는 지금과 같은 혼란을 예상치 못했다. 그런데 막상 은행권이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방카슈랑스 영업에 돌입하자 보험업계는 “은행이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며 다양한 문제 제기를 하기 시작했다.

“방카슈랑스 갈등, 소비자는 없다”

2003년 9월3일 탤런트 변정수씨가 우리은행 본점에서 1호 방카슈랑스 상품에 가입하고 있다.

보험업계 주장을 종합하면 △은행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보험사로부터 과다한 수수료를 받는 바람에 ‘보험료 인하’라는 애초 취지가 실종됐고 △대출 고객에게 강압적으로 보험 가입을 강요하는 이른바 ‘꺾기’가 성행하고 있으며 △전문인력 부족으로 고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못해 계약 해지가 잇따르고 △보험업계 수익구조 악화로 중소업체의 몰락과 모집인·설계사의 대규모 실직 사태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대한손해보험협회 등은 “방카슈랑스가 계획대로 확대되면 2005년에는 은행이 전체 보장성 보험 판매의 42%를, 3년 뒤에는 52%까지를 잠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은행 측은 △보험료가 내려가지 않는 것은 보험사들이 보험료 인하를 꺼리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실제 일부 상품의 가격이 내려갔고 △방카슈랑스가 사업비(보험사의 마케팅비) 비중이 큰 보장성 보험으로 확대되면 가격인하 폭은 더욱 커질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은행 판매분의 해지율이 높은 것은 보험담당 행원을 점포당 2명까지만 둘 수 있게 한 당국의 지나친 규제가 원인이며 △설계사 규모 축소는 인터넷, 홈쇼핑 등 보험 판매 루트가 다양화하면서 이미 예견돼왔던 일이라고 반박했다. 전국은행연합회 강봉희 상무는 “보험사가 자체 구조조정이나 설계사 전문성 강화, 새 상품 개발, 과당 경쟁 자제 등 근본 해법은 강구하지 않은 채 은행 탓만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비자 처지에서는 이런 주장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선 보험사 측 주장 중 설계사 실직이나 업계 구조조정 문제는 큰 고려 사항이 아니다. 보험사의 몸이 가벼워지고 나아가 적절한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력이 강화되면 오히려 소비자에겐 보험료 인하 등의 혜택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렇다고 보험사가 지금껏 보험설계사의 권익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온 것도 아니다. 실제로 2004년 8월 윤증현 금감위원장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손해·생명보험사 사장단은 “방카슈랑스 2단계 도입을 연기해달라”면서 한편으로는 “보험설계사의 노동 3권을 보장해서는 안 된다”는 건의를 하기도 했다.

보험 해지율이 높은 것 또한 은행 측에 더 나은 서비스를 촉구할 일이기는 하나, 근본 원인은 현행 법이 은행의 ‘보험 영업력 강화’를 지나치게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재경부 관계자도 “지금의 방카슈랑스 관련 법은 다른 부문에서라면 ‘규제가 너무 심하다’며 집단 반발을 불러왔을 만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한 보험사의 상품을 50% 이상 팔지 못하게 한 ‘49% 룰’만 해도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한참 동떨어진 조치”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모 국책연구소 연구위원도 “소비자에게 보험료 인하의 혜택을 주려면 방카슈랑스를 예정대로 시행하는 게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점당 담당 직원도 2명이 아니라 여러 명 둘 수 있게 하고, 그들이 전화나 소비자 방문 등을 통해 적극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발을 꽁꽁 묶어놓아서는 은행의 방대한 지점망과 우수한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업 전문 유명 애널리스트인 A씨는 “방카슈랑스에 대한 보험업계의 ‘과민 반응’은 몇몇 메이저 보험사, 특히 자동차보험 문제가 걸려 있는 손해보험 측에서 주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보험업계는 손해보험의 경우 삼성화재 현대해상화재 LG화재 동부화재 신동아화재 등 5개 업체가, 생명보험은 삼성생명 대한생명 교보생명 등 3개사가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보험업계가 겉으로는 “방카슈랑스 확대로 중소 보험사의 고사가 우려된다”고 하지만 실제 타격을 입게 되는 건 ‘빼앗길 것이 많은’ 메이저 업체들이라는 것이다.

A씨는 “중소 보험사의 경우 방카슈랑스는 위협이기보다는 탈출구다. 메이저사의 방대한 영업조직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던 상황에서 벗어나, 좋은 상품만 개발하면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대로 된 방카슈랑스’ 고객에게 큰 이익

실제로 중소 보험사인 B사 임원은 “솔직히 우리는 방카슈랑스 확대를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 그렇게 문제가 많으면 보험업계가 동의했겠나. 오히려 제도 도입 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실적도 좋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이런 말을 대놓고 하기는 힘들다. 업계는 물론이요, 사내에서도 기존 영업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방카슈랑스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한 금융관련 민간연구소 연구원은 “보험업계 주장대로 은행이 (보험업에) 지나친 영향력을 갖게 되면 중소업체에 실질적 위험이 될 수 있다. 이는 은행 자회사인 보험사에 중소업체가 흡수 합병되는 상황이나 보험사 간 인수합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근로자들에게는 큰 위협이지만 업계 전체나 소비자 처지에서 보면 꼭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란 의견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하지만 은행이 방카슈랑스에 과도한 관심을 쏟으면서 ‘꺾기’가 자행되고 서비스 질이 떨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보험업계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금감위는 2004년 말 은행과 보험사를 상대로 ‘1단계 방카슈랑스 불공정행위 실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지방은행을 중심으로 한 여러 은행이 대출을 미끼로 고객에게 보험 가입을 강요한 증거를 포착했다. 금감위는 조사 결과와 그에 따른 징계 내용을 2005년 1월 중순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금융연구소 이상묵 정책실장은 “일각에서는 감독 당국이 제 구실을 다하면 해결될 일이라고 하지만 ‘꺾기’는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대출자가 온갖 불이익을 각오하고 ‘강압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겠느냐”고 했다. 이 실장은 또 “보장성 상품 설계는 전문 지식이 요구되며 고객에 대한 설명도 중요한데 지금의 은행은 그 같은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은행은 지점에 찾아오는 고객만을 대상 삼아, 그 고객이 먼저 보험 가입을 원할 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심정으로 방카슈랑스 영업에 나서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찾아가는 서비스’는 보험사의 전유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방카슈랑스 2단계 실시가 일부 유예된다면, 은행으로서는 실적에 과도하게 집착해 무리한 영업을 한 데 대한 제재를 확실히 받게 되는 셈이다. 금융산업을 전공한 한 대학교수 는 “제대로 된 방카슈랑스가 소비자와 업계에 두루 이득이 된다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라며 “유예 기간에 은행은 공정한 룰 정착과 서비스 능력 향상에 힘을 기울이고, 보험사는 새 상품 개발과 경쟁력 강화에 사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소비자연맹 조연행 사무국장도 “금감위 등 감독 당국이 적극 나서 은행의 불공정 행위를 제어하고 보험사와 함께 보험료 인하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468호 (p28~29)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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