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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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제2, 제3의 ‘훙샹’ 中, 자발적·적극적 조사 안 해

훙샹그룹 조사는 확실한 물증 때문에 억지로 한 것…中 현지 전문가, 대북사업가 “이게 끝”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6-10-04 17: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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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5차 핵실험 열흘 후인 9월 19일 한국과 미국의 주요 연구기관이 미국에서 대북제재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 안보 분야 연구기관인 국방문제연구센터(C4ADS)가 함께 펴낸 ‘중국의 그늘에서’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북한과 중국의 중견기업이 합법적 무역의 형식으로 대북제재를 피해 불법거래를 하고 있다”면서 “이를 단속하면 대북제재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랴오닝성, 북 근로자 신청 보류 지시

    불법거래를 하는 곳으로 지목된 기업은 랴오닝훙샹(遼寧鴻祥)그룹. 보고서는 이 그룹의 여러 자회사가 북한과 의심스러운 거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문제가 된 자회사는 ‘단둥(丹東)훙샹실업발전유한공사’(단둥훙샹). 이 회사는 2011년부터 5년간 북한에 물품 1억7100만 달러(약 1880억 원)어치를 수출했다. 그런데 수출 물품에는 민간용뿐 아니라 군사용으로도 쓸 수 있는 이중 용도 물품 4종류가 포함돼 있었다. “이 물품 모두가 미사일은 물론,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같은 대량살상무기 제조과정에서 중요하게 사용될 수 있는 원자재”라는 게 이들 기관의 주장이다. 또 다른 자회사는 제재 대상인 북한 국영보험사 ‘조선민족보험총회사’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섬유류와 문구, 전자제품 등을 거래했다. 중국 선양(瀋陽)에 있는 ‘칠보산 호텔’도 자회사인데, 이곳은 북한 사이버공격 조직의 활동 거점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9월 20일자 기사에서 “미 법무부 소속 검사들이 8월 베이징을 두 차례 방문해 ‘단둥훙샹’이 북한과 관련된 범죄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 당국에 알렸다. 이에 중국 당국은 즉각 조사에 착수해 이 회사는 물론, 회사를 창립한 45세 여성 대표 마샤오훙(馬曉紅)의 자산을 일부 동결했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의 조치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전에 내려진 것으로, 미국과 중국 당국이 공조해 대북제재를 시행한, 매우 이례적인 일로 주목받았다.

    두 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발표되자 미국 정부는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9월 26일(현지시각) “단둥훙샹, 그리고 마샤오훙 대표 등 이 회사의 수뇌부 중국인 4명을 제재 리스트에 공식 등재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단둥훙샹과 중국인 4명이 미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동결된다. 미 재무부는 또 단둥훙샹 등이 중국 시중은행 계좌 25개에 예치해놓은 자금에 대해 압류를 신청했다. 미 재무부가 북한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프로그램과 관련해 중국 기업을 직접 제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미국 정부가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관이나 개인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을 사실상 적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재무부는 이들을 제재한 이유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대상인 북한 조선광선은행을 대리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주체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한 책임”이라고 설명했다. 조선광선은행은 3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에서 북한 핵개발과 관련된 기관으로 제재 대상에 올랐다. 앞서 2009년에도 미 재무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연관됐다는 이유로 금융거래 금지 조치 대상에 올렸지만, 조선광선은행은 중국에서 중국인 명의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차명계좌를 여는 방식으로 영업을 계속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 법무부도 이날 재무부와 함께 낸 별도 성명을 통해 “단둥훙샹과 제재 대상 중국인 4명을 국가비상경제권법(IEEPA) 위반과 미국 상대 사기, 그리고 금융기관들을 활용한 돈세탁 모의 혐의로 8월 초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미 법무부는 또한 “연방수사국(FBI)도 이번 제재 준비 과정에 참여했고 앞으로 수사 과정에도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 이후 중국 랴오닝성 당국은 대북사업가들에게 “당분간 북한 근로자를 추가로 신청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랴오닝성에서 대북사업을 하는 중국인 사업가는 “9월 초 랴오닝성 성도(省都)인 선양의 관계자가 단둥 일대에서 활동하는 북한 근로자 고용 회사의 중국인 대표들에게 그와 같은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훙샹 같은 기업 이끄는 조선족 P씨

    마샤오훙 대표는 8월 초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에게 체포된 후 베이징으로 압송돼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양국 연구기관이 대북사업을 하는 중견기업의 비리 증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에 대해 중앙정부 차원의 조사가 진행되자 랴오닝성 당국이 대북사업에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대북사업가가 밀집해 있는 또 다른 지역인 지린성의 상황은 어떨까. 지린성 현지 소식통은 “지린성에서는 아직 그런 지시가 구체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린성의 한 대북사업가는 “중국 당국에 북한 근로자를 신청해도 되는지 묻자 ‘조금 있다 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훙샹그룹 사건 이후 북·중 접경지역 당국이 몸을 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복수의 중국 기업인은 “훙샹그룹 같은 기업이 중국 도처에 널렸다”고 입을 모은다. 지린성에서 대북사업을 크게 하는 조선족 여성 P씨도 마샤오훙 대표처럼 대북사업으로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50세 정도인 P씨는 독일 아우디 계열 승용차 5대를 굴리며 재력을 과시하고 있다. 플라스틱 제조공장 반장으로 일하던 P씨는 공장이 망하자 12년 전쯤 대북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아 대북사업을 하면서 북측에 6000만 위안(약 100억 원)을 뜯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중국 정부의 지원금 덕에 바로 회생할 수 있었다. 특정 분야에서 대북사업을 하는 중국 기업은 당국으로부터 풍부한 지원금을 받고 있다고. 정부 지원금으로 손실을 만회하는 방식으로 대북사업을 계속한 결과 현재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정부 지원금을 빼돌리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고 한다. 중국의 한 대북사업가는 이렇게 예를 들었다.

    “어느 중국인이 석탄 찌꺼기를 활용해 벽돌 만드는 기술을 확보했다고 치자. 중국 정부는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경우 지원금을 준다. 중국인 3명이 모여 각각 100만 위안(약 1억6000만 원)씩 투자해 공장 개설을 준비한다. 공장 인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돈으로 매수하면 공장은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이렇게 공장을 만들어 정부 지원금을 충분히 타낸 다음 공장 문을 닫는다.”

    중국에는 이처럼 공장을 세운 뒤 정부 돈을 받아내고 문을 닫는 기업이 적잖다고 한다. P씨 역시 대북사업에서 정부 지원금을 잘 활용했고, 이것이 급성장의 주요 배경이었다는 것.

    일각에서는 중국 당국의 이번 훙샹그룹 조사에 대해 “중국이 본격적이고 실질적인 대북제재에 나서는 한편, 북한과 비밀거래를 하는 중국 기업을 뿌리 뽑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그 근거는 중국 정부가 이례적으로 미국과 손잡고 훙샹그룹 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전망에 대해 중국 현지 전문가와 대북사업가는 대부분 회의적이다. 중국 당국이 훙샹그룹을 철저히 조사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물증이 확실하기’ 때문이라는 것. 즉 “외부세력이 확실한 물증을 들이대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훙샹그룹 같은 기업을 적극적으로 조사하는 경우는 절대 없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중국 현지 전문가와 대북사업가들이 입을 모아 이렇듯 회의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은 근본적으로 북한이 치명타를 입고 휘청거리는 상황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북한이 좋아서가 아니다. 북한이 치명타를 입으면 그 부작용이 어떤 형식으로든 자신들에게도 미친다고 믿어서다. ‘대국’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 체제의 안전판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중국은 이 간단한 논리 때문에 대북제재에서 일정한 선을 긋고 그 한계 안에서만 활동해왔다. 



    中, 대북사업에 美 직접 제재 용납 못 해

    중국의 이런 태도는 9월 27일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도 확인된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훙샹그룹과 그 관계자들을 제재한 것과 관련해 “중국 역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면서 “중국은 어떤 기업과 개인이 위법행위를 하면 조사해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나라라도 자국 법을 중국 기업이나 개인에게 확대 적용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최근 미국과 소통 과정에서도 이미 그런 의사를 밝혔다”고 강조했다.

    겅 대변인의 발언은 대북제재와 관련한 중국 측 태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를 이행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 측 간섭은 거부한다는 것이다. 즉 훙샹그룹에 대한 조사와 처분은 중국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지 미국이 나설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또한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추진 움직임에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훙샹그룹에 대한 제재를 시작으로 대북 교역과 관련된 중국 기업들에게까지 제재를 확대하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경고인 셈이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는 한미일 3국과 서방국가가 주도하는 대북제재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9월 27일(현지시각) “한미일 3국은 석탄 수출, 그리고 북한 근로자가 해외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포함해 북한 정권의 불법적인 핵·탄도미사일 개발을 위한 수입원 차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란을 상대로 취했던 것처럼 북한을 국제 금융거래망에서 배제하고자 여러 파트너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모든 압박이 실효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북한의 후견국인 중국 측 협조가 필수적이다.

    비록 한계가 있긴 하지만 훙샹그룹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외부에서 뚜렷한 증거를 들이밀면 중국도 어쩔 수 없이 조치를 취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누군가 훙샹그룹처럼 북한과 불법거래를 하는 기업을 추적해 고발해야 상황이다. 물론 중국 내부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거래의 진실을 포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대북제재의 효력을 생각한다면 이는 느리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제2, 제3의 훙샹그룹을 찾아내 증거를 들이댄다면 결국 중국은 움직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9월 28일(현지시각) 대니얼 프리드 미국 국무부 제재담당 조정관이 의회 청문회에서 훙샹그룹 외 다른 중국 기업과 북한 고려항공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음을 내비쳐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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