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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교수의 ‘과학 속 세상史’

측우기를 중국에서 발명? 터무니없는 역사 왜곡

측우기를 중국에서 발명? 터무니없는 역사 왜곡

측우기를 중국에서 발명? 터무니없는 역사 왜곡
세종 때인 1441년 발명된 측우기와 관련해 한국 중국 일본 세 명의 기상학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잘 알려진 대로 측우기는 세계 최초의 우량계(雨量計)다. 그런데 누가 이런 주장을 했을까.

일본인 기상학자 와다 유지(和田雄治, 1859~1918)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10년 프랑스어로 쓴 논문에서 한국의 측우기가 이탈리아의 카스텔리가 1639년 발명한 우량계보다 무려 2세기나 앞선다고 처음으로 주장했다.

당시 51세로 인천측후소 소장이던 와다 유지는 이 논문을 프랑스에 보낸다. ‘영국기상학회지’는 그 내용을 영어로 옮겨 실었고, 그것이 이듬해인 1911년 세계적 과학잡지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이런 경로를 통해 우리 측우기가 세계 최초란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런데 1910년 미국에 유학 간 한 중국인 청년 과학도가 이 논문을 읽으면서 마(魔)가 끼기 시작했다. 주커전(竺可楨, 1890~1974)이란 이 중국인은 1910년 미국에 건너가 일리노이 대학에서 농학을 공부했고 하버드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8년 박사 학위를 받자마자 고국에 돌아온 그는 중국 현대 기상학의 아버지가 됐다. 또한 저장(浙江)대학 총장으로 취임한 뒤 근대 지리학 광물학 등을 도입해 ‘중국과학사’로 유명한 영국인 학자 조셉 니덤에게서 “저장대학은 동방의 케임브리지 대학”이라는 격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1949년 마오쩌둥이 중국을 통일하자 중앙과학원 부원장이자 자연과학사 위원회 주임으로 활약하며 중국 과학계의 대표적 인물이 된 거물이다.

바로 이 중국인 과학자가 하버드 대학 시절인 1916년, 미국에서 발행되는 중국 과학지 ‘과학’에 ‘조선 고대의 측우기’란 문제적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1926년에는 ‘동방잡지’라는 학술지에 측우기에 관한 또 다른 논문을 발표했다. 문제는 와다 유지 논문에 실린 측우기 사진에서 ‘건륭경인오월조(乾隆庚寅五月造)’란 글자를 보고 “‘건륭’(乾隆)이 중국 청나라 때의 연호이니 측우기가 중국 것이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그러자 중국 학자들은 주커전의 권위를 등에 업고 측우기를 중국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근래 모든 과학사 교과서가 이를 받아들여 그렇게 기술했던 것이다.



이런 잘못을 처음 안 사람은 기상학자 김성삼(1923~97) 박사다. 1950년 연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공군 기상장교를 거쳐 서울대 기상학 교수를 하다 88년 정년퇴임했다. 그는 정년 3년 전인 85년 필자를 일부러 찾아와 중국인들이 측우기를 자기 나라 발명품이라 주장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88년 7월 ‘한국기상학회지’에 그런 그의 노력으로 ‘측우기 발명의 이설에 대한 고찰’이란 논문이 실렸다.

필자는 김 교수에게 미안하게도 이 문제에 그다지 주목하지 못하다가, 90년대 들어서야 철이 들었는지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96년 ‘국제과학사회의’에서 이 같은 왜곡 사실을 발표했고, 98년에는 논문을 한 편 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같은 잘못이 시정될 줄 모른다.

요즘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차지하겠다고 나서면서 측우기도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동북아 세 명의 학자를 비교해놓으니 근대 아시아의 역학 관계가 드러나 흥미롭지만 실상 씁쓸하기 그지없다.



주간동아 2004.12.23 465호 (p69~69)

  •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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