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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 영화인|팔방미인 이무영 감독

“영화엔 노동자 의식이 있어야 한다”

“영화엔 노동자 의식이 있어야 한다”

“영화엔 노동자 의식이 있어야 한다”
나는 가끔 이무영이 된다. 시청자들 중에는 나와 이무영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객관적으로 우리 두 사람이 그렇게 닮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손해 보는 사람은 나다. 바로 그 이무영을 만났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경찰청장을 지낸 이무영을,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 현대문학 초창기에 농민문학을 개척한 작가 이무영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이무영은 영화감독이다. 그는 10년 전엔 음악 칼럼니스트였다. 그리고 5년 전엔 시나리오 작가였고 방송 진행자였다. 우리는 가끔 시사회 같은 데서 얼굴이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곤 했다. 둘 다 ‘방송 밥’ 먹고사는 처지고 또 멀티플레이어이기 때문에 서로를 호의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왜, 특별한 이유 없이 괜히 좋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적어도 나에게는 이무영이 그랬다. 그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리는 술을 마셨다. 난 주량에 비해 꽤 많이 마셨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후두둑, 봄날 저녁도 아니고 12월인데, 눈이 아니라 비가 내렸다. 건물 베란다에 유리로 천장을 만들어 실내처럼 아늑하게 꾸민 카페에서 비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기분이 좋아졌다. 칠레산 와인을 3병 마시고 다시 오뎅 바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뉴저지주 케인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부전공으로 선택한 연극을 접하면서 새로운 인생이 열렸다. 뉴욕에 체류하던 연극인 장두이를 도와서 주로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을 기획했다. 그는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그의 결혼 뒷이야기를 수정해주었다.

음악 칼럼니스트·시나리오 작가로도 명성

나는 1993년부터 95년까지 KBS의 아침 정보 프로그램 ‘전국은 지금’에서 영화 소개 코너를 맡아 했다. 영화 코너 앞뒤에 ‘오늘의 날씨’가 있었는데, 날씨 담당 리포터와 나는 자신의 방송 차례를 기다리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리포터는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가 장수영씨다. 그녀의 오빠는 나중에 ‘조폭 마누라’의 백상어 역, ‘야인시대’의 문영철 역으로 인기를 얻은 장세진이다. 내가 SBS 아침 정보 프로그램으로 옮기고 나서, 그녀가 이무영과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국은 지금’을 하는 동안 유럽여행 때문에 2개월 정도를 비운 적이 있는데, 그때 나 대신 영화 코너를 진행한 사람이 박찬욱 감독이었다. 박 감독이 자신의 절친한 친구 이무영을 장수영씨에게 소개해줘서 결국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었다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무영은 그게 아니라고 했다. 그전에 손범수 진양혜 아나운서가 결혼할 때, 각각 남자 쪽과 여자 쪽 친구로 참석해 결혼식에서 처음 만났다는 것이다. 이무영은 정말 추호도 흑심을 품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여자 쪽에서는 언제 연락이 오나 기다렸다는 것이다. 추석 전날, 가족도 없이 혼자 있던 이무영은 후배의 부추김으로 장수영씨에게 전화를 한다. 그녀는 송편 만들다가 뛰어나왔다.

“영화엔 노동자 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무영이 감독한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왼쪽)와 ‘휴머니스트’.

이상이 남자 쪽 진술이다. 올바른 상황 판단을 위해서는 여자 쪽 진술도 들어야 하지만, 가끔 한쪽 말만 듣고도 믿을 필요가 있다. 나는 이무영의 말을 믿는다.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그가 충분히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는 낯선 사람과 마주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말 하면 믿지 않겠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이다. 방송하는 사람들 중엔 의외로 대인관계에서 소극적인 사람이 많다. 그는 가깝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억지웃음 짓는 일을 가장 곤혹스러워한다. 기자 시사회나 VIP 시사회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노출해야 하는 곳에는 가능하면 참석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모든 시스템 옹호자들을 다 저주한다. 그리고 모든 시스템 파괴자들을 다 존경한다. 나는 귀족들을 혐오한다. 기네스 펠트로 아버지는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인데, ‘어린 시절, 저의 여덟 살 생일날 스필버그 아저씨가 인형 들고 와서 즐거웠어요’ 이런 말 들으면 화난다. 나는 완벽한 차별주의자다. 출신 성분이 좋으면 차별한다. 그러고도 미안한 마음이 없으면 경멸한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으면, 그것을 누리고 20~30년 살았으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말하지 않았나. ‘저 아래 있는 자들은 자기가 뭐 하는지 모르고 있다’고.”

그러나 신을 믿는 아나키스트는 없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기도한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다. 그 역시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영화는 노동자 의식이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야 한다. 요즘 영화 시상식 분위기, 정말 싫다. 한국 영화가 갑자기 할리우드 영화가 되고, 대종상이 갑자기 아카데미가 된 것 같다. 그렇게 자존심이 없나? 내가 한다면, 큰 고깃집 빌려서 하겠다. 양복은 대중화돼서 그래도 견딜 만하지만, 화려한 의상 입은 여배우들 보면 정말 불쌍하다.” 그때 이무영의 휴대전화가 깜박거렸다. 문자메시지가 온 것이다. ‘날씨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전화번호 바뀌었습니다’라는 내용이었고, 문자를 보낸 사람은 공효진이었다. 그는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따뜻한 대화가 이어졌다. 공효진은 그의 두 번째 영화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에서 태권소녀 역을 맡았다. 나는 그의 데뷔작 ‘휴머니스트’를 보고 실망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하기도 했지만, 미학적으로 덜 다듬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철.파.태’를 보고 ‘언젠가 한번 큰일 낼 사람’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가 훨씬 가능성 있는 상태로 진화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은 아직도 유효하다.

“첫 번째 영화는 제작사와 안 좋았다. 두 번째 영화는 연말이라는 너무 나쁜 상황에서 개봉했다. 두 번의 저주를 받았으니까 세 번째는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그는 2004년 봄, 류승범을 주인공으로 ‘영원한 남편’을 찍기 위해 준비했다. 캐스팅이 끝나면 제작 준비가 다된 거나 마찬가지인 충무로였지만, 그 영화는 엎어졌다. 그 이후 준비한 ‘겨울 방랑자’도 때를 놓쳤고, 지금은 ‘부전자전’을 준비하고 있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와 규범대로 살아가려는 아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그는 지금 당장 영화화할 수 있는 자작 시나리오를 6편이나 가지고 있다. “나 혼자 낙오되어서 벌판에 혼자 서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내가 존경하는 아나키스트들의 삶은 다 비참했으니까. 그것을 영화 ‘아나키스트’에서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 영화의 감독은 국수주의자였다. 아나키스트는 하나의 패션이 돼버렸다. 만약 지금 이 삶이 모두 허구이고 모순이라면, 자연의 섭리를 주관하는 신이라는 존재가 없어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안 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견디기 힘들 것 같다. 영화에서도 박찬욱이나 김기덕처럼 비주류에 있다가 자기의 파워를 갖는 사람들은 지금, 자기점검을 해야 한다.” 나는 그에게, 소설가 김훈에게서 들은 아나키스트 묘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경기 벽제 어디에 있다는 한국 아나키스트들의 묘지에는 주로 일제시대에 활약했던 사람들이 묻혀 있다. 묘지 앞의 퇴색한 나무 팻말에 ‘권력이 있는 곳에 정의는 없다’라고 쓰여 있다는 것이다. 이무영의 눈이 반짝거렸다.

“영화엔 노동자 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무영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 ‘본 투 킬’ ‘삼인조’ ‘공동경비구역 JSA’ ‘아나키스트’ ‘복수는 나의 것(위부터)’.

‘휴머니스트’ ‘철·파·태’로 내공 쌓고 세 번째 영화 도전 준비



우리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안주로 삼았다. “사극을 한다면, 허균을 제대로 한번 그리고 싶다. 우리나라 역사인물 중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허균이다. 그가 엎으려고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엄청나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적 장치는 광해군과 허균을 베스트 프랜드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충격일 것이다.” 이무영은 지금까지 2편의 영화를 감독했고(‘휴머니스트’ ‘철.파.태’), 감독한 영화의 각본을 포함해서 모두 7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으며(‘본 투 킬’ ‘삼인조’ ‘공동경비구역 JSA’ ‘아나키스트’ ‘복수는 나의 것’), 3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박찬욱과 이무영의 성을 따서 만든 기획사 ‘박리다매’는 박찬욱 감독의 놀라운 성공으로 잠시 휴식 상태에 있다. 94년 ‘펄프 픽션’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한국에서 개봉되었을 때, 감독인 타란티노가 한국을 방문했다. 한 영화 잡지사에서 타란티노 감독의 인터뷰를 기획했고, 박찬욱 감독이 대담자로 결정되었으며, 통역을 맡은 사람이 이무영이었다. 결국 이때의 인연은 10년 후 ‘올드보이’가 칸영화제에 진출하면서 이어진다. 심사위원장인 타란티노 감독은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받는 데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물론 작품이 좋아서 상을 받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큰상을 받는 데는 좋은 인연도 따라야 한다. “타란티노는 소주를 거의 물고기가 물 먹듯 마셨다. 그때는 그가 30대 초반이었으니까 아직 애였다. 얼떨결에 칸에 가서 상 타고 얼마나 황당했겠나. 그는 B급 영화의 거두인 몬티 헬만의 비디오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타란티노가 먼저 비디오를 보내주겠다고 내 주소까지 물어보고 적어갔는데, 아직 안 보내주었다. 그때 소주를 7병이나 마셨으니까 취한 상태의 약속이라고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비가 내렸다. 오뎅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청주 3병을 연거푸 비웠다. 우리는 비틀스와 핑크 플로이드,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킹스와 후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다음 작품에 배우로 써달라고 했다. 나는 분명히 캐스팅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술값을 냈으니까.



주간동아 465호 (p6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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