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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ㅣ기술유출인가, 마녀사냥인가

“해도 너무한 푸대접 보따리 싸놓고 있다”

한국 과학기술자들 상대적 박탈감 심화 … 보상과 걸맞은 대우 해외 기업 손짓 참기 힘든 유혹

“해도 너무한 푸대접 보따리 싸놓고 있다”

“해도 너무한 푸대접   보따리 싸놓고 있다”

구미공단의 한 반도체 생산업체에서 연구원이 생산 공정을 점검하고 있다.

사립 명문 K대 공대를 졸업한 P씨(28)는 요즘 서울 강남의 한 입시학원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P씨가 다니는 의과대학원 준비반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서울대 등 명문대에 다니고 있거나 졸업한 이학도 공학도가 적지 않다. 진로를 바꿔 부(富)가 보장되는 의사의 길을 걷겠다는 이공계 출신 학생들이 즐비한 것이다.

“기업에서 공대 출신은 둘로 나뉩니다. 핵심인재와 노가다. 박사학위가 있거나 외국에서 공부한 핵심인재는 이공계 차별을 못 느낍니다. 반면 노가다는 고생만 하고 보상은 거의 없지요. 한국 기업엔 여전히 사농공상(士農工商) 의식이 남아 있습니다.”

재료공학을 전공한 P씨는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했으나 학부 졸업 학력만으로는 미래가 뻔하다고 여겼다. 처음엔 전공을 바꾸지 않고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석·박사와 박사후(post doctor) 과정을 마치면 30대 중반. 이왕 고생하는 거 의학대학원처럼 더욱 확실한 곳에 투자하는 게 났다고 결론지었다.

우수한 인재들이 법대나 의대로 몰리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 이공계 출신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푸대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LG전자의 한 간부급 엔지니어는 우수한 인재들은 이공계에 미래가 없다고 여긴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하는 환경 열악, 보상과 인센티브 홀대

“중국 천재들은 로켓을 쏘고, 한국 천재들은 메스를 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수 인력의 이탈은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요. 외국의 경우에도 이공계 기피 현상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유가 보상이 적어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아웃풋(결과)을 내놓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국은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지위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이공계를 마다하는 겁니다.”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일하는 K씨(38)도 “이공계 출신들이 돈을 적게 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투자한 시간을 고려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사 학위를 받고 박사후 과정을 마치면 군대를 다녀온 남성의 경우 30대 중반.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자리잡으면 초봉은 3500만원가량이다. 금융권을 비롯한 인문계 출신 대기업 취업자의 초봉과 엇비슷하다. 얇은 월급봉투는 박탈감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대학 동기들을 보면 기업들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외환위기 때 가장 먼저 정리해고 대상으로 꼽힌 게 연구자들입니다. 지방 근무가 많고 일하는 환경은 열악한 반면, 보상과 인센티브에선 오히려 홀대를 당하죠.”(K씨)

연구소나 기업의 정규직을 얻었다면 그나마 보상을 괜찮게 받는 경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정부출연연구기관과 7개 이공계 대학 연구 인력의 각각 47.63%, 51.27%가 비정규직이다. 이들의 초임은 연간 1500만~2000만원으로 4인 가족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한다.

박기영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도 “우리나라 남성 연구원들이 군대를 다녀온 후 박사 학위를 따면 대략 33∼34세가 되는데 이후 연구기관에서 비정규직으로 6∼7년씩 근무하면 40세 무렵에야 정규직으로 임용되는 게 현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수 인력 이탈 가속도 국가 경쟁력 약화

대만에서 만난 한국인 엔지니어 또 다른 K씨(37)는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 했다. 대만 전자업체에서 솔루션을 만들고 있는 그는 애국심 운운하지만 대접받는 곳에서 일하고 싶은 게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 아니냐고 되묻는다.

“한국의 중저가 기술은 벌써부터 연구원을 통해 대만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한 한국인 반도체 전문가가 수백명에 이릅니다. 이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한국 기업이 언제 제대로 대접을 해줬나요. 좋은 기술을 개발하면 뭐합니까. 회사 주가는 오르죠. 보상이오? ‘수고했다’는 칭찬을 보상이라고 할 수 있나요.”

푸대접 탓에 K씨처럼 나라를 등지는 과학기술 인력이 느는 것도 문제. 미국의 유수 기업에서도 조국에 등돌린 한국인 수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의 불안한 미래와 상대적 박탈감이 우수한 인재를 외국으로 내모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경직적인 호봉제 위주의 보상 시스템과 비이공계 인력에 의한 조직 내 의사결정권 독점이 개선돼야 연구 인력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열악한 인센티브 제도는 두뇌 유출을 통한 해외 기술 유출로 이어진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 박상욱 운영위원은 연구진들이 외국 기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한국 기업들은 인센티브를 주는 데 지나치게 인색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 A사는 연구진들의 노력으로 컴퓨터에 장착하는 DVD 드라이브에서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쟁업체를 크게 앞질렀습니다. 세계 시장 점유율도 높아졌고요. 연구진들이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연말에 보너스로 200만원을 받았습니다. 어떤 대기업은 연구진이 특허를 출원하면 겨우 3만원의 특허수당을 줍니다. 이래서 되겠습니까.”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고 대기업 계열 SI(시스템통합)업체에 다니는 또 다른 K씨(36) 역시 “인센티브가 없다 보니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급급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신기술을 개발한다고 해서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과외시간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

“회사는 핵심기술은 외국에서 들여오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운용할 인력은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아도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들로 언제든 채울 수 있으니까요. 공대 출신 임원이 늘고 있다고 하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포스트는 대부분 ‘볼펜들’ 차지죠.”

외국 기업 혹은 산업스파이는 기술을 가지고 전직하면 주택 승용차 승진 스톡옵션을 주겠다면서 연구원들을 꼬드긴다. 한국 기업들의 이공계 푸대접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셈.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졌고, 연구원들에 대한 대우가 열악해 회사의 핵심기술을 배경으로 전직을 노리거나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연구원들이 늘고 있습니다. 개중엔 체포 뒤에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내가 개발한 기술을 내가 가지고 가는데 문제 될 게 뭐가 있느냐고 반박하죠.”(국정원 산업비밀보호센터 관계자)



주간동아 2004.12.23 465호 (p24~25)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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