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2

2004.12.02

영혼의 리듬 … 당신과 나 … 하나의 가슴과 스텝

  • ‘all of dance PAC’ 대표 choumkun@yahoo.co.kr

    입력2004-11-26 1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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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의 리듬 … 당신과 나 … 하나의 가슴과 스텝
    필자는 영화 중에서도 춤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본다. 미하일 바르시니코프와 얼마 전 타계한 그레고리 하인츠가 주연한 ‘백야’에서부터 ‘더티 댄싱’, 비욕 주연의 ‘어둠 속의 댄서’, 뤽 베송의 ‘댄서’, 어린 발레리노의 성장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이르기까지 많은 춤 영화들은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관객들로 하여금 근육이 긴장하고 가슴이 뛰게 한다.

    그 가운데서도 버지니아 울프 원작의 ‘올란도’를 감독한 샐리 포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탱고 레슨’(사진)이 단연 으뜸이다. 1997년에 개봉된 영화로 한 중년 여자 영화인이 탱고를 배우는 과정에서 사랑의 열병을 앓고 그 속에서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가는 내용이다. 영화 속에서 실제 댄서인 파블로 베론이 보여주는 춤은 진짜 춤꾼의 모습 그 자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의 춤을 위한 것인 양, 장소가 어디이든 손에 든 것이 무엇이든 리듬을 만들어낸다. 샐리 포터가 파블로 베론에게 왜 탱고를 선택했냐고 질문하자 그가 “탱고가 나를 선택했다”고 하는 장면은 탱고와 자신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말하고 있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거리를 걷다가 들려오는 탱고 음악 소리에 이끌려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여자 주인공. 무대에는 아무 장식도 없고, 단정한 차림의 남녀가 탱고를 추고 있다. 남, 여 무용수의 현란한 발 동작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여자 주인공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는다. 공연이 끝나고 “천사의 동작 같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라고 여자 주인공이 남자 무용수이자 주인공에게 말을 건다.

    영화는 첫 번째 레슨부터 본격적이다. 첫 번째 레슨은 걷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아직은 어색하기만 하다. 흑백의 영상과 강렬한 원색의 컬러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기억에 남는 대사와 장면이 있다면, 둘의 첫 공연 후 한참을 싸우고 난 뒤, 파리의 성 슐피드 성당의 벽화인 들라크루아의 작품 ‘야곱과 천사의 싸움’ 앞에서 그것을 흉내내면서 화해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센 강변에서 춤추는 장면. 머릿속에 정확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연상될 때마다 진한 쓰라림이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탱고는 남자가 리드하고 여자는 거기에 몸을 맡기면 된다. 남녀는 각각 리드(lead)와 팔로우(follow)가 되어 정확히 자신의 역할을 한다. 걷는 것부터 서서히 시작한다.

    잘 걷는 것, 걸으면서 리듬을 타는 것, 발을 앞으로 뒤로 혹은 옆으로 해서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한다. 또 뛰어오르기도 하고 돌기도 한다.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잃으면 다리가 꼬이면서 서로의 발을 밟게 되고 힘의 균형은 깨지고 만다. 이는 삶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의 밸런스를 지켜야 하는 것과 같다. 그해 마지막 날 둘은 만나서 새해를 함께 맞이하기로 약속했으나 남자 주인공이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참 뒤 이렇게 말한다. “거리를 두는 것이 좋겠다”고. 탱고도 마찬가지다. 아주 밀착해서 춤을 추지만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각자가 움직이는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두 사람을 끈끈하게 이어준다. 탱고는 모든 움직임이 거의 허리 아래서 이루어지는 욕망의 춤이기도 하다.

    탱고는 우리네 일상과 닮아 있다. 숨가쁘게 달리기도 하고 넘어질 듯 넘어질 듯하면서도 간신히 버티며, 숨을 고르면서 쉬어가기도 하고, 사람 인‘人’자처럼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걸어간다. 일정한, 혹은 주어진 스텝으로 춤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느낌대로 발을 옮겨가는 것이다. 그래서 탱고는 상대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느껴야 한다. “당신이 나, 내가 당신, 하나는 하나, 하나는 둘…”이라고 노래하는 여자 주인공의 노랫말처럼.



    사랑과 이별, 죽음과 밤, 그리고 인생을 담은 애절한 탱고는 열렬한 사랑보다는 애잔한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외로운 그리고 갈망하는 마음을 담은, 슬픈 영혼의 리듬을 안고 있는, 둘의 가슴이 아닌 하나의 가슴 네 개의 발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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