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2

2004.12.02

열린 사이버 공간의 적 ‘귀차니스트’

  • 디지털 경제칼럼니스트 woody01@lycos.co.kr

    입력2004-11-26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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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인터넷’과 관련된 한 범죄 뉴스가 화제가 됐다. 전직 운전기사가 모시던 중소기업 회장 일가를 납치해 몸값 5억원을 뜯어낸 사건이다.

    주목할 점은 공범을 모으는 데 인터넷을 통한 ‘공개모집’을 했다는 것. 함께 죽을 사람을 찾는 자살사이트 이후 인터넷의 역기능에 대한 논란이 일어날 법도 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범죄를 공모하고 실행할 팀원(?)을 사이버 공간에서 찾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고 오히려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보듯 프로페셔널 범법자들은 이미 ‘네트워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범죄가 사이버 공간에서 모의되고 파트너를 찾는다면, 사이버 범죄수사대는 오프라인 수사보다 훨씬 더 능률적으로 범인을 포착하고 추적, 체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에서 역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일탈과 범죄에 전자네트워크 망이 이용된다는 점은 사실 새로울 게 없다. 단지 적절한 시스템에 의해서 잘 감시되고 대응해야 할 일일 뿐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한 달간 오로지 패스트푸드만 먹었을 때 몸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자신의 몸을 던져 보여준 영화 ‘슈퍼 사이즈 미’라는 재미있는 다큐멘터리가 등장했다.



    혹자는 패스트푸드의 악영향과 IT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질문할 수 있겠다. 패스트푸드는 바쁜 도시인에게 편리한 식사 메뉴와 방식을 제공했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에 중독되자 도시의 남녀노소가 비만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빨리 더 빨리’를 위해 고안된 생활 방식이 게으르고 둔한 인간을 만드는 역현상을 불러온 것.

    정보통신이 그렇다.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여 더 넓은 세계를 엮어냄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빠르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정보를 교환, 공유하도록 설계된 세상 속에서 네트워크형 인간들은 점점 더 타성에 젖고 나태해져간다.

    적당한 여유나 느림의 미학은 좋지만, 문제는 따뜻하지도 냉철하지도 않은 멀뚱하고 냉소적인 ‘귀차니스트’들이 늘어가는 데 있다. 이는 해결책이 없는 대단히 위험한 현상이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난무한 지금의 세계에,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가장 나쁜 이데올로기가 ‘귀차니즘’이다.

    어떤 면에서는 세상을 급격하게 바꾸려는 열정이 ‘오버’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나키스트’나 ‘테러리스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귀차니즘’에 빠지는 순간 당신은 정보통신 기술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진지하게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어느새 세상은 ‘열정’과 ‘냉소’의 중간지대를 없애버린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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