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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교수의 ‘과학 속 세상史’

동아시아 위협하는 지진 조선시대엔 임금 잘못한 탓

  •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동아시아 위협하는 지진 조선시대엔 임금 잘못한 탓

동아시아 위협하는 지진 조선시대엔 임금 잘못한 탓
이웃 나라 일본에서 지진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일본의 지진’이라면 필자는 먼저 1923년의 ‘관동(關東) 대지진’이 떠오른다. 그해 9월1일 오전 11시58분 도쿄와 요코하마 일대를 강타한 지진은 약 10만명의 엄청난 희생자와 막대한 재산 피해를 불러왔다.

근대 일본 최대의 위기를 맞은 일본인들은 ‘불령선인(不逞鮮人·불온한 조선사람)’들이 우물에 독약을 넣고, 방화 강도 강간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파출소 앞에 ‘조선인폭동’이라는 벽보가 내걸리고, 경찰은 제정신이 아닌 민중을 향해 메가폰을 들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돌아다녔다. 그 결과 최소 2500명에서 최대 6000명의 조선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끔찍한 역사의 기억이다.

그런데 또다시 지진이 동아시아에 매우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90년대에 20회에서 최근 30회 이상으로 발생 횟수가 증가했고 한국 등 인근 나라들의 지진 가능성 역시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발생했다 하면 심하게는 수십만명의 희생자까지 낼 수 있는 지진이지만, 한국 역사에 아직 그 같은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학자들은 서울에서 2010년 안에 규모 6이 넘는 강진이 발생할 확률이 57% 이상이라 경고하고 나섰다.

현대과학은 지구의 구성 요소를 파악해 지구 표면이 여러 개의 판(板) 모양으로 이뤄졌고, 특히 그 판들의 경계 부분에서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국 땅은 그 판의 경계부에 있지 않지만, 나름의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옛사람들은 지진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지진을 다른 자연의 이상현상과 마찬가지로 주로 정치의 잘잘못이 불러일으킨 현상이라 파악했다. 이른바 ‘재이론(災異論)’이다. 그래서 지진이 일어나면 임금은 자신의 정치에 무슨 잘못이 있었던가 반성하고, 신하들의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연산군 같은 임금은 이런 재이론에 반발했다. 예를 들면 1503년(연산 9) 8월 전국 여러 곳에서 지진 보고가 들어오자 승정원(承政院)은 구언(求言)의 교서를 내리라고 진언했고, 대간(臺諫)은 계획되어 있던 잔치와 사냥을 취소하며 근신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임금은 지진이란 음(陰)이 성하고 양(陽)이 미약해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음(陰)인 신하들이 너무 세져 양(陽)인 임금을 너무 무력하게 만들어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자연현상의 변태적 모습이 모두 정치의 잘못으로 일어난다는 재이론은 지금 생각하면 비과학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산군은 재이론을 거부한 ‘과학적’ 태도를 보인 임금이었다. 실제로 필자는 연산군이 조선시대 27명의 임금 가운데 가장 똑똑한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똑똑하면 뭐 하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중뿔나게 다른 의견을 갖는다는 것은 지도자로서 위험한 일일 뿐인데. 연산군은 결국 재이론을 거부해 신하들에게 배척당하고 쫓겨난 것이다. 신하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주는 재이사상을 거부함으로써 신하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셈이다. 지금으로 치면 언론자유를 박탈당한 꼴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연산군은 결국 ‘중종반정’이라는 쿠데타로 쫓겨났는데…. 지진과 정치의 오묘한 관계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만든다.



주간동아 460호 (p69~69)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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