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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명 감원 태풍 외환은행이 떤다

회사 발표 10여일 만에 대상자 통보 … 희망 퇴직 미신청자는 급조된 새부서로 일괄 발령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1000명 감원 태풍 외환은행이 떤다

1000명 감원 태풍 외환은행이 떤다

서울 방배동에 급조한 외환은행 특수영업팀 사무실.

11월4일, 서울 방배동 전 외환카드 사옥. 올 2월 외환은행이 외환카드를 흡수 합병한 후 활기를 잃은 빌딩에 최근 200여명에 달하는 새 출근자가 생겼다. 이름 하여 외환은행 ‘특수영업팀’ 사람들. 그러나 빌딩은 오히려 더 조용해진 듯했다. 검은 정장을 빼입고 입구에 서서 경계 업무를 보고 있는 건장한 사내들의 모습이 긴장감마저 자아냈다.

4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250여명 중 약 100명이 ‘수용’될 사무실이 거기 있었다. 강당처럼 널찍한 공간에는 긴 회의용 탁자가 늘어서 있고, 의자 하나당 한 대씩으로 보이는 구내전화가 역시 제멋대로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모양이 제각각인 PC 모니터들이 죽 놓여 있었는데, 아직 하드 부분을 설치하지 않아 사용 가능한 것은 한 대도 없었다.

빌딩에는 같은 상태의 크고 작은 방이 3개 더 있었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방과 방 사이 작은 회의실 한 귀퉁이에서 어렵사리 서너 명의 특수영업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집을 나서긴 했는데 갈 곳도 없고, 무슨 새 소식이라도 들을까 싶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봤다고 했다.

”사무실도 안 갖추고 발령... 나가라는 말과 마찬가지”

“회사가 급하긴 급했나 봐. 면피용 세팅조차 안 해놓고 발령부터 냈으니.”



“아, 아예 ‘집에서 쉬고 있으라’잖아. 지방에서 발령받은 사람들한테는 ‘돈 드니 굳이 올라올 것 없다’ 그러고. 벌써 직원 취급을 않는 거야…. 참, 하루아침에… 이게 웬 꼴인가….”

건물을 나서다 화단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를 한 명 더 만났다. 40대 후반이라는 그는 “막상 사무실을 보니 기가 막힌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참느라 혼났다. 어제 보니 마누라가 작은 방에 문 걸고 들어앉아 밤새 울더라. 마음 같아선 그 무릎에 기대 내가 더 울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쓴웃음 짓는 일조차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20~50대, 행원부터 부장급까지가 망라된 특수영업직 발령자들은 사실상 회사로부터 ‘내침’을 당한 이들이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해 통보한 ‘희망퇴직’ 대상자 중 끝내 퇴직 신청을 하지 않은 직원 일부를, 최근 급조된 특수영업팀이라는 새 부서로 일괄 발령 낸 것이다. 회사 측이 “1000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나선 것이 10월5일경. 직원들은 “희망퇴직자 500여명에 특수영업직 200여명…, 아직 목표에 한참 미달이니 이것으로 끝일 리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외환은행에 감원 칼바람이 불고 있다. 5000여명의 직원 중 1000여명을 떨궈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올 1~9월 누적 순익이 3895억원에 이를 만큼 경영 상태가 좋은 상황에서, 직원들은 회사 측이 내세운 ‘왜곡된 인력구조 개선’이라는 ‘절체절명의 사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노조와의 합의 없이 시작된 1차 희망퇴직,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 사퇴 압력, 갑작스러운 특수영업직 발령, 2차 희망퇴직 시행 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정리해고 위협 등 회사가 취한 일련의 조처들로 인해 큰 혼란에 빠져 있다.

1000명 감원 태풍 외환은행이 떤다

11월 4일 오전 8시 30분. 장화식 전 외환카드 노조 대책위원장이 서울 을지로1가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 직원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외환은행 본점에 근무하는 한 차장급 직원은 “최근 한 달간 받은 스트레스는 말로 다 못한다. 업무량은 많은데 일에 집중할 수가 없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 문 이가 한둘이 아니다. ‘찍힌’ 사람이나 요행 피해간 사람이나 속이 다 까맣게 타 들어갔다”고 했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위원장 김지성)을 비롯한 노동계, 학계와 금융계에서는 대주주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되팔기 위한 첫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은행 전문 애널리스트의 설명이다.

대주주의 매각 노린 몸집 줄이기 시각 많아

“‘인력 구조조정->자산 매각->주주 배당->매각’이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가 밟는 대체적 수순이다. 처음부터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장기적, 안정적으로 경영할 것이라 예상한 이는 없었다. 보유 기간이 3년이냐 5년이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론스타는 씨티그룹 등과 달리 은행업을 하는 집단이 아니다. ‘모국’인 미국에서는 그 성격상 은행업 진출이 아예 법적으로 불가능한 자본이다.”

또 다른 은행 전문 애널리스트는 “강제적 인력 구조조정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또 외환은행처럼 실적이 크게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는 강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강행하는 건 직원 한 사람을 털어내는 게 그만큼의 매출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은행 비즈니스에는 단기간 실적을 확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사람을 줄이는 건 1~2년 후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를 통해 주가를 끌어올리고 매각 협상에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사는 쪽에서야 몸 가벼운 회사가 단연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론스타의 인력 구조조정은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올 초 론스타는 외환카드를 외환은행에 합병하며 전체 직원 662명 중 219명(33%)을 줄였다. 당시 사측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각 개인의 ‘성적표’를 보내고 희망퇴직을 독려해 큰 반발을 샀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8명을 정리해고 했다. 당시 외환카드 노조 투쟁위원장이던 장화식 현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은 “원래 정리해고 대상자 수는 더 많았다. 새벽 3시에 갑작스레 정리해고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기습적인 직장폐쇄에 잠마저 못 자게 하는 식이라 분노가 더 커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구조조정 문제는 외환은행만의 현안이 아니다. 국민은행만 해도 강정원 신임 행장의 취임식 일성은 “구조조정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한국씨티은행 또한 신임 하영구 행장의 “구조조정은 없다”는 발언에도 불구하고 아직 불씨가 남아 있는 상태. 증권업계는 물론이요 은행권도 급격히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로 들어서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외환은행의 구조조정은 ‘뱅크 워’의 결과물인 셈이다. 전쟁의 와중에 살아남기 위해 자기 살을 도려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외환은행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이례적일 정도로 ‘과격한’ 방식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외환은행의 구조조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그 가운데 직원들이 처한 상황은 어떠한가.

“시작이 뭐였냐 하면, 10월18일 저녁 8시경이었는데 사내 인트라넷의 자기 월급 명세확인란에 갑자기 ‘가산 퇴직금’ 액수가 표시돼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월급 18~24개월어치를 더 받을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런 통보를 받은 사람들을 회사는 ‘우대 대상’이라고 불렀어요. 또 지점장급은 따로 통보를 안 받았더라도 다 ‘우대 가능 대상’이니 주저 말고 희망퇴직을 신청하라고 했죠. 우대는 무슨 얼어죽을….”

감원 목표량에 미달 … 후속 조치 있을까 ‘뒤숭숭’

이전부터 회사와 노조 간에 희망퇴직을 둘러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현실에 대한 인식 차이가 너무 커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노조 측은 “사측은 잉여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을 한다지만 사실은 영업점을 폐쇄해 일부러 잉여 인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직 대주주인 론스타의 이익만을 위해 경영주가 배임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인력 구조조정은 론스타와 전혀 관계가 없고, 론스타는 관여하지도 않는다”며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회사 측은 “외환은행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인력 구조조정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인사 적체가 심각하다. 이참에 점포 재배치 등 시스템 개선도 병행하겠다는 것이 경영진의 생각이다. 이번 구조조정은 은행의 중·장기적 발전 계획의 일환”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취재 중 접촉한 직원들은 모두 “이번 일은 론스타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 떠 있는 글도 마찬가지였다. 게시판에는 ‘퇴직 종용’을 받은 직원들의 아픈 심경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우대자 통보사항을 확인한 저녁, 사랑스러운 팀원들에게 착잡하고 불편한 마음이 드러나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지키지 못할 것 같아, 조용히 퇴근하며 차 안에서 눈물과 함께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외환은행 배지를 떼어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우대’ 대상인 직원들은 본부장급들에게서 다양한 형태의 사퇴 종용을 받았다.

“전화도 자주 오고 면담도 몇 차례 하고. 회사로부터 무슨 지침이라도 받았는지 처음에는 꼭 집어 ‘사표 내라’는 말은 안 하더라고요. 그랬다간 나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중에는 ‘(회사에서) 나가라는데 치사하게 계속 다닐 거냐’, 2차 희망퇴직 신청 기간에는 한술 더 떠 ‘버티면 너만 손해다. 다른 곳으로 발령 내 월급도 100만원밖에 안 줄 거다. 그래도 안 나가면 정리해고할 거다. 퇴직금도 못 받게 된다’고 협박했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분노와 자괴감,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요.”

지방 근무자인 한 40대 차장의 말이다.

본사 근무 중 특수영업직으로 발령받은 모 차장은 “무엇보다 ‘왜 나인가’ 하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흘러나오는 얘기에 따르면 고과, 부양가족 수, 상벌 등을 기준 삼았다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내가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본사 핵심 부서에서 이렇게 오래 일할 수 있나. 나는 부모님도 모시고 있고 아이도 둘”이라며 가슴을 쳤다.

노조 측에서도 “기준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막말로 강북 구석 지점보다 강남 쪽이 훨씬 실적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않나. 절대평가인 만큼 부서장 ‘맘대로’ 점수를 주기 때문에 어떤 부서는 평균 90점이고 어떤 부서는 95점이고 그랬다. 때문에 특정 지점, 특정 부서가 집중적으로 당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제 외환은행 노사는 또 다른 갈림길에 섰다. ‘정리’된 직원의 수가 아직 경영진이 목표한 1000여명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10월29일 노사는 ‘은행은 이번(2차) 특별퇴직의 결과에 따른다’는 문구가 든 ‘합의서’를 교환했다. 노조와 직원들은 이를 “더 이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며 정리해고 전단계로 활용하기 위해 신설한 특수영업팀 해체를 포함, 고용안정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2차 희망퇴직 결과에 따라 사측이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하겠다는 것”이라며 “인력구조 개선에 대한 의지는 달라진 것이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로 인해 11월5일 김지성 위원장, 김명환·이해원 부위원장 등 3명의 노조집행부가 삭발을 단행하는 등 외환은행 사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은 한 20대 대졸 행원은 “경영진에게 과연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이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 “회사 분위기는 지금 파장 직전입니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요. 진정 회사를 제대로 키울 생각이 있다면 이렇게 조직을 갈갈이 찢어놓고 직원들 사기를 땅에 떨어뜨릴 수 있습니까. 모두 내 몸 하나 살 길 찾느라 정신이 없는데 어떻게 회사를 위해 몸 바쳐 일할 수 있겠어요. 정말 묻고 싶습니다.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입니까.”





주간동아 460호 (p26~28)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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