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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정한진의 맛있어요 | 서울 창전동 ‘섬’

기차 소리 정겨운 ‘맛의 보고’

  • chjparis@hanmail.net

기차 소리 정겨운 ‘맛의 보고’

기차 소리 정겨운 ‘맛의 보고’

과실주와 곡주, 소주 등 어떤 술과도 잘 어울리는 매운돼지갈비찜.

섬에 갔다 왔다. 강화도로 가는 서울 신촌 버스터미널에서 차 시간표를 보며 한참을 머뭇거렸다. 화창한 가을 날씨가 자꾸만 손길을 내미니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 욕망을 다스리고 들어선 골목에는 점집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기찻길 옆을 따라가다 보니 그 뒤로 우뚝 서 있는 아파트 단지가 무척이나 낯설어 보인다. 오래 전부터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동네에도 한바탕 바람이 불긴 분 모양이다. 차라리 오랜만에 이곳에 선 자신이 더 낯설어 보일까. 그래, 신촌 도심에서 불과 몇 걸음인데 변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하면서 들어선 골목은 예전 그대로다. 이곳이 도시의 섬이다. 운명을 알려준다는 점집들을 지나 기찻길을 건너자마자 그 길 따라 왼편에 있는 나지막한 기와집이 정겹다. ‘섬’에 정박했다.

‘섬’은 기찻길 바로 옆에 있다. 대문을 들어서자 멍석이 깔려 있는 마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마루에 오르니 발바닥이 정겹다고 한다. 훤한 유리창 너머 기찻길 보호 난간에는 호박 덩굴이 넘실거린다. 시골집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오래 전 친구들과 함께 춘천 쪽으로 놀러 가서 들렀던 기찻길 옆 막걸리 집도 생각난다.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 호박잎 너머로 푸른 하늘이 여기가 서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옆에 놓여 있는 고물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는 옛 가요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그래서 그 ‘섬’에 가고 싶다.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바라다보고 있으면 백반이 나온다. 이 집에서는 따로 주문할 필요 없이 점심에는 한 상이 차려진다. 반주를 하고 싶다면 과실주가 나온다. 이 가을철엔 돌배주란다. 예전에 동네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돌배는 달지 않고 딱딱하지만 어릴 적 간식거리이기도 했다. 돌배를 소주에 넣어 만든 이 술은 식전주로 무척 잘 어울린다. 그리 달지 않은 과일주가 속을 따스하게 하면서 식욕을 돋운다.

기차 소리 정겨운 ‘맛의 보고’

점심식사로 나오는 ‘쌈밥’.

점심 정식은 쌈밥을 기본으로 한다. 식전주를 마시게 되면 식사를 천천히 내라고 주문하면 된다. 그러면 먼저 삼겹살 구이와 삶은 통오징어가 쌈을 싸먹을 야채와 함께 나온다. 삼겹살은 도톰하게 썰어 구웠는데 돌배주에 재웠다고 한다. 흔히는 와인에 절여 굽는다고 한다. 지나치게 굽지 않아 삶은 돼지 편육처럼 보이는 삼겹살은 씹는 맛이 좋다. 통째로 삶아 썰어낸 오징어도 적절히 익혀 부드럽다. 야채로 찐 양배추, 상추, 호박잎, 배추 그리고 다시마 등등이 대바구니에 수북이 담겨 있다. 그리고 집에서 만들어낸 것 같은 계란찜이 따스하게 나오는데 식기 전에 먹으라고 권한다. 또한 동치미처럼 보이는 물김치는 무, 배추, 오이 등으로 만들었는데 젓갈을 넣어서 국물이 진해 보이고 맑은 국물보다 감칠맛이 있으면서 시원하다.



식전주를 마시고 있으면 식사가 나온다. 잡곡밥과 강된장이 으뜸이다. 팥과 조를 곁들여 압력솥에 지은 쌀밥은 마치 찰밥처럼 끈기가 있다. 강된장은 된장과 애호박만으로 해서 내는데 그리 짜지 않고 단맛이 적다. 너무 달거나 참기름을 많이 넣은 강된장은 첫 입에는 맛있을지 모르지만 금세 물린다. 이 집 강된장은 은근하다. 밥 한 숟가락을 호박잎에 담고 강된장을 듬뿍 떠넣은 쌈이 입 안에서 노래를 한다. 자그마한 생선을 툭 끊어 먹고 쌈을 다시 넣으면 맛이 새롭다.

기차 소리 정겨운 ‘맛의 보고’

‘섬’의 매력은 친한 친척집 같은 분위기에서 정성스런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찐 양배추에 쌈장, 또는 양념장으로 간을 해 넣어보라. 그리고 시원한 배추 된장국으로 입가심을 하라. 이렇게 이것저것 조합해 먹다보면 잡곡밥 한 그릇이 뚝딱이다. 그러면 숭늉이 나온다. 잡곡밥 누룽지가 넉넉히 들어간 숭늉을 들이켜고 나니 일어서기가 아쉽다. ‘섬’에 더 머물고 싶으면 식후주로 삼지구엽초주를 한잔 하라. 음양곽이라고 알려진 삼지구엽초로 담근 이 술은 정력주다. 대낮부터 힘 키울 일 없으면 한 잔으로 족하리라.

‘섬’은 원래 술집이다. 저녁에만 문을 열었으나 손님들이 이 집 음식에 반해 점심에도 찾기를 원했다. 어쩌면 낮에도 놓치기 싫은 이 집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낮에는 밥집, 저녁에는 술집이다. 점심식사는 쌈밥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그날그날 재료에 따라 내용이 변한다. 술안주로는 매운 돼지갈비찜이 좋다. 술안주도 그때마다 내는 것이 달라진다. 술은 맥주, 양주, 포도주, 중국술, 직접 담근 과실주 등이 있다.

이 집은 규모가 작으니 미리 예약하고 가는 것이 좋다. 점심식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한다. 저녁에도 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시고 싶다면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주인의 정겨움에, 그리고 이 집 분위기에 취해 낮술을 하다 보면 몸을 가누기 힘들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리, 이 화창한 가을날에.

기차 소리 정겨운 ‘맛의 보고’

기찻길 옆 식당 ‘섬’.

서울 창전동 ‘섬’

위치 : 신촌 강화시외버스터미널에서 왼쪽으로 가다 기찻길 건너 왼편. 또는 산울림 소극장 맞은편 오른쪽 길 따라 내려가는 길.

연락처 : 02-323-6568

추천메뉴 : 점심정식 1만원, 매운돼지갈비찜 2만5000원

영업시간 : 12~14시, 18~24시

휴무 : 일요일, 설, 추석

주차 거의 불가능, 신용카드 가능



주간동아 459호 (p86~87)

chjpar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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