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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흔들리는 북한 엘리트 사회

고위 탈북자들 이구동성 “대를 이은 충성은 없다”

북측, ‘자금 횡령’과 ‘기밀 누설’ 혐의, ‘인간쓰레기’로 매도…엘리트들은 세습 독재에 거부감

  • 신석호 동아일보 기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고위 탈북자들 이구동성 “대를 이은 충성은 없다”

고위 탈북자들 이구동성 “대를 이은 충성은 없다”

2009년 9월 29일 북한민주화위원회 사무실 현판식에 모습을 드러낸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오른쪽). 왼쪽에서 네 번째가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이다. [동아일보]

“최근 박근혜 역적패당은 영국주재 대표부에서 일하다 자기가 저지른 범죄행위가 폭로되자 그에 대한 법적 처벌이 두려워 가족과 함께 도주한 자를 남조선에 끌어들이는 비열한 놀음을 벌려놓았다.”

한국 통일부가 8월 17일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귀순 사실을 확인한 지 사흘째 되던 20일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명의의 논평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첫 공식 반응은 통일부가 설명한 태 공사의 탈북 이유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통일부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 동경 △자녀의 장래 문제를 제시한 상태였다.

북한은 태 공사의 혐의로 △국가 자금 횡령 △고의적 비밀 누설 △미성년 성교범죄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논평은 “범죄 수사를 위해 그가 이미 6월에 소환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며 “공화국 중앙검찰소에서는 이 자의 범죄자료를 요해하고 7월 12일 수사시작결정서를 발급했다”고까지 했다.

첫 번째 혐의와 관련해 태 공사가 김정은의 통치자금 60억 원을 들고 도주했다는 한국 언론보도가 있었으나 정부는 공식 부인한 상태다. 두 번째, 세 번째 혐의는 한국과 영국 언론 등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내용이었다. 일견 당황한 북한 당국이 태 공사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황장엽 때와 유사 “비겁한 자 가려면 가라”

고위 탈북자들 이구동성 “대를 이은 충성은 없다”

김일성종합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1994년 탈북해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조명철 전 의원(왼쪽) [동아일보]. 1997년 8월 19일 장승길 주이집트 북한대사가 카이로에서 북·이이집트 쌍무투자보장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이 서명식이 장 대사의 망명 전 마지막 공식활동으로 알려졌다. [동아DB]

이번 북한의 비난 논평은 1997년 8월 장승길 당시 주이집트 북한 대사와 그의 동생인 장승호 주프랑스 북한대표부 경제참사관이 탈북했을 당시 내놓은 비난 성명과 거의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당시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정부의 탈북 발표 하루 뒤 “거액의 국가자금을 횡령하고, 부패 타락 및 주요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7월 말 전직에서 철직돼 법기관의 조사를 위해 소환 지시를 받은 상태에서 도주했다”고 발표했다. 어떻게든 태 공사를 깎아내려야 했던 북한 당국이 과거 전례를 참고해 논평을 만들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러나 미성년자 강간 혐의는 과거에 없던 전혀 새로운 죄목이다. 영국과 국제사회의 인권 중시 사상에 기대어 어떻게 해서든 태 공사의 망명을 막아보려고 새로운 항목을 만들어 넣은 것으로 보인다. 뜻을 달성하지 못한 북한은 “소위 법치를 제창하는 영국당국이 범죄자를 넘겨준 데 대한 우리의 정당한 요구와 범죄자인도와 관련된 국제관례를 무시하고 범죄자를 동족대결에 피눈이 되어 날뛰는 남조선괴뢰들에게 넘겨줬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태 공사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1997년 2월 15일 북한 라디오매체인 중앙방송이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의 망명을 비난한 방식과 같다. 당시 방송은 ‘우리의 승리의 푯대는 붉은 기’라는 제목의 정론을 통해 “비겁한 자는 가려면 가라. 우리는 혁명의 붉은 기를 끝까지 지킬 것이다”라는 유명한 ‘적기가’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황 전 비서의 망명 사실을 사실상 인정했지만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태 공사나 장 대사 때와 달리 황 전 비서의 구체적인 죄명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을 완성한 최측근이자 김일성종합대 총장을 지낼 정도로 북한 학문 세계의 수장이던 그를 나름 예우해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으로 애써 포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는 북한 사상 초유의 경제난이 극에 달하던 1997년 초. 북한 김정일 정권도 풍전등화 같은 국가의 운명에 노심초사할 때였다. 황 전 비서의 탈북이 체제에 주는 영향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해외생활에 익숙한 자녀 위해 망명 결심

황 전 비서는 자서전 ‘황장엽 회고록’을 통해 ‘개인의 생명보다 국가와 민족의 생명이 중요하다’면서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과 가족의 생명을 버리고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함께 모든 권력을 거머쥔 아들 김정일의 전횡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전에 황 전 비서는 자신이 집대성한 주체사상을 김정일이 타락시켰다는 한탄을 자주 했다. 2010년 10월 10일 오후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에 김정은이 처음 주석단에 나온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그날 오전 자택 목욕탕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는 주체사상이야말로 동서고금의 여러 사상을 넘어서는 인간 중심 철학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아버지 김일성의 권력을 이어받는 데 혈안이 된 김정일은 아버지의 눈과 귀를 가려 주체사상을 수령 절대주의 독재체제의 사상적 기반이 된 김일성주의로 퇴락시켰다는 것이다.

김일성과 평생을 함께한 동지인 황 전 비서는 인생의 황혼에 또다시 못마땅한 2대 독재자에게 충성하며 아부하는 비굴한 삶 대신, 가족일가의 생명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르고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마치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 기업에서 가신들이 은퇴하는 창업주와 거취를 함께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 2대 회장에게 충성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부담이 너무 크다고 보는 것이다. 김정일의 덴마크어 통역사였던 태 공사도 3대 독재자 김정은에게 같은 부담을 느꼈을 공산이 크다.

태 공사 망명의 직접적인 원인이 자녀 문제인 점은 1999년 태국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과학기술참사관으로 일하다 망명한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장과 유사하다. 해외 근무가 길었던 홍 위원장의 아들 원경 씨는 열한 살 때 부모를 따라 해외생활을 시작해 99년 당시에는 태국 방콕 ABAC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상태였다. 홍 위원장은 8월 22일 기자와 통화에서 “평양 본부가 상사의 비리 혐의에 연좌제를 적용해 나를 소환했을 때 ‘들어가면 다 망하니 아들 하나라도 살리자’는 데 부부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회고했다.

국가정보원은 8월 22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태 공사가 망명을 결심한 결정적 원인은 김정은이 ‘25세 이상 외교관 자녀 본국 소환령’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보고했다. 해외주재 외교관의 탈북이 잇따르자 김정은은 자녀들을 평양에 볼모로 잡아두려 했고 태 공사는 이를 우려해 망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강화하면서 북한 외교공관을 대상으로 충성자금 헌납 압박이 심해진 상황도 탈북의 한 이유라고 정보 당국자들은 설명했다.

한편 이유를 불문하고 탈북자들을 ‘인간쓰레기’로 매도해온 북한의 태도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태 공사를 “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조국과 부모형제마저 버리고 저 혼자 살겠다고 도주함으로써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초보적인 의리도 티끌만 한 양심도, 도덕도 없는 인간쓰레기”라고 저주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한과 관계가 악화되자 고위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 위협을 공개적으로 내놓았고, 앞으로 태 공사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19대 국회 비례대표의원이던 조명철 전 의원은 김일성종합대 준교수 출신 고위급 인사로 1994년 탈북했지만 북한은 그에 대해 구체적인 비난이나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특히 그의 부인과 아들이 평양에 살고 있고 아들은 의대를 졸업했다는 설까지 흘러나오면서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한과 관계가 악화되자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012년 8월 일군의 고위 탈북자에게 테러 위협을 가하면서 조 전 의원도 그 대상에 포함했다. 북한 측은 당시 대남 발표문을 통해 “처단 대상에는 전 괴뢰통일교육원 원장 조명철, 추악한 변절자 김영환도 포함될 것이란 것을 선포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뷰 | 김정일 가정교사 김현식 전 김형직사범대 교수▼ “국정원의 누나 상봉 공작에 한국행 결심” ▼



고위 탈북자들 이구동성 “대를 이은 충성은 없다”

1990년대 초반 러시아 국립사범대 조선어 파견 교수로 일하다 망명한 김현식 전 김형직사범대 교수는 미국에 정착했다. 사진은 2013년 ‘동아일보’와 인터뷰 때 모습. [신석호 기자]

국가정보원(국정원)은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을 위해 어떤 공작을 했을까. 태 공사는 자신이 한국에 온 뒤 망명 사실과 자신 및 가족의 신상이 공개될 것으로 예상했을까. 김정일의 러시아어 가정교사였던 김현식 전 김형직사범대 교수의 탈북 사례를 통해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다.

1990년대 초반 러시아 국립사범대에서 조선어 파견 교수로 일하다 망명한 그는 러시아 측에 이어 현지 국정원 요원으로부터 망명을 권유받는다. 2013년 발간한 회고록 ‘80년, 7만 리’에 따르면 국정원은 김 교수가 제의를 뿌리치자 ‘가족 상봉’ 전술을 사용한다. 6·25전쟁 때 헤어졌고, 당시 미국에 살고 있던 김 교수의 친누나를 찾아내 러시아에서 상봉케 해준 것이다. 그는 책에서 “느닷없이 미국에서 날아온 누님을 만나면서 내 인생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고 회고했다.

김 교수는 전쟁으로 헤어질 당시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누나가 있었다는 사실을 북한 당국에 숨긴 채 승승장구해왔다. 그의 누나는 생전 어머니의 뜻이라며 “미국이나 서울로 탈출해 반드시 목사가 돼라”고 당부했다. 김 교수는 이를 거부했지만 누나를 안내하던 현지 교민의 밀고로 누나가 미국으로 떠난 다음 날 북한 정보부의 소환 명령을 받고 흔들린다. 남한 국정원의 도움으로 누나를 만난 것 자체가 불경이요, 평생 누나의 존재를 속인 것 자체가 원죄였기 때문이다.

마음이 돌아선 김 교수에게 국정원 요원은 “서울에 가면 신분을 철저히 비공개로 하고 서울대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게 해주겠다”고 설득해 결심을 얻어낸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서울에 온 뒤 국정원은 태도를 바꾼다. 회고록에 따르면 그를 담당한 요원은 “북한에서 큰 죄를 지었느냐. 돈 문제라든가 여자 문제가 있었느냐”고 따져 물었고 “당신의 신분을 언론에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마음이 상한 김 교수는 평양에 남겨두고 온 가족을 위해 2주 동안 단식투쟁을 벌였고 신분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이후 이름을 정종남으로 바꾸고 새로운 은둔자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현재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부인 김현자 씨와 함께 살며 북한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조선어 성경 사업에 여생을 바치고 있다.

기자가 2013년 10월 페어팩스카운티 자택에서 만났을 때 김 교수는 김정은 체제를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미국 예일대 초빙교수에 이어 조지메이슨대 연구교수 자격이던 그는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 비교할 때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며 “김정일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려고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이나 김현희의 대한항공 폭파 기도 사건을 벌였지만 김정은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모험주의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또 “경험 많은 정치인으로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장성택 당 행정부장과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무게를 잡으면서 김정은의 향후 정책 기조를 온건노선으로 조율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군은 철저히 당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김영철 정찰총국장 같은 군부 과격분자는 장성택, 최룡해를 넘어설 지위에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두 달 뒤인 2013년 12월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숙청했다. 최룡해는 여전히 살아 있지만 북한은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의 군사 가정교사였던 김영철은 조선노동당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승승장구하며 대남 강경책을 지휘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졌지만 조국을 향한 애정에는 변함없는 노 탈북자의 기대는 ‘희망적 사고’에 그치고 말 것인가.






주간동아 2016.08.31 1053호 (p22~24)

신석호 동아일보 기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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