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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댄스 열풍

전국은 지금 춤의 열기 속으로

대중화 바람 타고 춤 배우기 확산 … 동호회·교습소 등에 예비 춤꾼들 초만원

전국은 지금 춤의 열기 속으로

전국은 지금   춤의 열기 속으로

서울 압구정동의 댄스바인 ‘까사살사’에서 살사춤을 추고 있는 젊은이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하지 마세요. 상대의 이마나 귓불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스텝을 밟아요. 자, 스텝! 스텝! 락스텝! 트리플 스텝! 킥 볼 체인지….”(강사 민동기씨)

5월7일 저녁 7시30분, 50여명의 선남선녀들이 모인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댄스바 ‘스윙’. 밖에는 장마비 같은 봄비가 도시를 흥건히 적시고 있지만 50여 평의 밝은 실내는 스윙을 배우려는 이들의 열기로 후끈하다. 이날은 인터넷 동호회 ‘스윙시티’(cafe.daum.net/swingcometrue)의 7기 기초강좌가 열리는 첫날. 온라인상에서만 만나던 남녀 회원들이 처음으로 직접 만나 서툰 춤동작을 취하다 보니 어색하기만 하다. 20대에서 40대까지 다양한 직업·계층의 사람들이 몸짓만으로 소통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강사 민동기씨(30)와 신유정씨(28·여)의 밝고 노련한 진행에 사람들은 금세 분위기에 동화돼 웃음꽃을 피운다. 두 강사는 스윙을 배운 지 2~3년씩 된 베테랑. 상업 댄스 스튜디오의 강사들이 아니라 동호회를 이끌어가는 운영진이어서 회원들에게 ‘공짜로’ 자신들의 실력을 전수한다. 1시간쯤 지나 대부분이 기본 스텝을 익히자 강사는 인디고 스윙 밴드의 감미로운 노래 ‘사랑스러운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네(My baby just cares for me)’를 틀어주었고 사람들은 바로 춤의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스윙·살사·재즈 등 종류도 다양 … ‘불륜’ 딱지도 떼내

“음악이 울리고 있는 동안에는 어떻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춤을 추는 거야. 계속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을 추는지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멎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댄스 댄스 댄스’에 나오는 양아저씨의 말을 기억이라도 한 듯 회원들은 2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춤을 춘다. 헤드헌팅회사에 다니다 한 달 전 그만두고 요즘 춤만 추고 있는 강사 신씨는 “스윙은 남녀노소 누구나 젊음의 한가운데 데려다놓는다”며 “기본지식만 갖추면 얼마든지 자기식으로 변형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최고의 춤이다”고 스윙 예찬론을 편다.

전국은 지금   춤의 열기 속으로

신사동의 ‘스윙바’ 내부(작은사진). 4월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동아일보사장배 전국댄스스포츠선수권대회에서 멋진 춤을 선보이고 있는 선수들.

이날 모임에 참여한 한 전업주부는 “영화 ‘쉘 위 댄스’를 보고 춤을 배우고 싶었다”며 “스윙을 배워보니 너무 경쾌하고 멋있는 춤이어서 앞으로 열심히 배울 계획”이라고 말한다.

스윙은 보통 6박, 8박의 스윙음악에 맞춰 추는 춤으로 지터버그, 린디홉, 새그, 발보아, 자이브, 밥, 윕 등이 있다. 이 춤들은 스윙의 전신인 찰스턴이라는 춤이 지역마다, 시대마다 조금씩 변형된 것들이다. 스윙은 술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춰야 하고, 처음 보는 이라도 춤을 권하면 거절하지 않는 게 에티켓이다. 커플을 이루어 추는 춤 가운데 가장 건전하고 신나서 춤출 때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라는 게 애호가들의 주장.

스윙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1999년 말 미국 유학을 다녀온 나혜석씨가 서울 신대방동 보라매공원 체육관에서 무료 공개강습을 한 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윙 인구는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당시 강습받은 몇몇 사람들이 주축이 돼 ‘스윙키즈’라는 스윙동호회를 만들었고, 이후 수많은 동호회가 생겨나 전국적으로 40여개 이상이 활동하고 있으며, 5000명 이상의 스윙 인구가 생겨났다. 5월14일에는 전국대학연합회가 발족하고, 6월15일에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스윙 피버 인 코리아’라는 스윙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전국은 지금   춤의 열기 속으로

5월10일 서울대 체육관에서 열린 2003댄스스포츠페스티벌에서 노인들이 즐겁게 춤을 추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즐겁기만 하다. 강남역 근처 댄스 강습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왼쪽부터).

스윙을 즐길 수 있는 곳도 늘어나 신사동의 스윙바, 강남의 헬로우 스윙, 신림동의 부기우기바 피에스타, 삼성역 근처의 스윙 인 더 파크 등 스윙 전문 클럽과 홍대 앞의 보니따 등에서 즐길 수 있다.

이런 열기는 스윙 장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살사·재즈·힙합·나이트댄스에서 복고풍 왈츠·디스코·벨리댄스·탭댄스·댄스스포츠 등 수없이 다양한 춤들이 유행하고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적극적으로 춤을 배우고 나이트클럽이나 댄스바 등을 찾는 이들은 적어도 500만명에 이른다.

한때 ‘불륜 양성소’라는 오명을 안았던 댄스스포츠도 화려한 날갯짓을 하고 있다. 5월5일 어린이날 오후 서울 남산 힐튼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열린 IDSF서울국제오픈2003스탠더드 & 라틴대회. 어린이 청소년 일반인 각 부문에 국내외 선수 250여명이 참가해 열띤 경쟁을 벌였다. 한껏 멋을 낸 남녀 선수들은 왈츠와 룸바 같은 느린 음악에 맞춰 우아하게 돌다가도 스페인 투우음악에서 나온 파소도블레 종목에 이르러서는 칼로 자르는 듯한 절도 있는 동작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켰다.

댄스스포츠에는 모던 스탠더드 댄스 5종목(왈츠 탱고 퀵스텝 폭스트롯 비엔나왈츠)과 라틴댄스 5종목(룸바 삼바 차차차 자이브 파소도블레)이 포함되는데 국내에는 현재 일본에도 없는 댄스스포츠학과(용인대 등)가 생겼으며, 초·중·고교 가운데 특별활동시간에 이것을 배우는 학교가 수없이 많다.

2002년 가을 한국댄스스포츠연합회에서 조사한 결과 일반학교와 문화센터, 자치센터, 사설학원 등에서 댄스스포츠 강습을 받고 있는 이가 14만여명에 달했다. 관련 대회도 한 해 40여개가 넘는다. 최근에도 IDSF서울국제오픈2003뿐 아니라 동아일보사장배 전국댄스스포츠선수권대회(4월27일, 장충체육관), 2003댄스스포츠페스티벌(5월10일, 서울대체육관) 등이 열려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런 대회를 통해 댄스스포츠는 생활체육, 사회체육의 하나로 점차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물론 아직도 일본이나 중국, 대만 등에 비해 댄스스포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게다가 낡고 음습한 분위기의 무도강습소나 카바레가 많아 부정적인 이미지가 완전히 걷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댄스스포츠진흥회 김두련 회장은 “댄스스포츠는 체조와 음악이 어우러진 건강 스포츠”라며 “누구나 자기 수준에 맞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인기를 누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확산이 댄스 열풍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

그러나 댄스스포츠는 아직 제도적인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선 올림픽 종목 채택 가능성이 예견되면서 전문 댄서와 대학교수 등이 선수들을 기르고 각종 대회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반면, 정부 당국은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서울 여의도 동아문화센터에서 1981년부터 댄스스포츠를 강습해오고 있는 박효 한국댄스스포츠연합회 회장(57)은 “이미 대학에 관련 학과까지 생겨나는 등 댄스 문화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며 “댄스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우선 관련 법령부터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아직도 일반 국민들이 댄스스포츠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문제”라며 “우선 11개로 난립해 있는 프로단체들이 하나의 조직을 만든 다음 대한체육회에 가입해야 제도적인 지원이 가능하다”고 밝혀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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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는 어린이들의 마음도 사로잡는다. 세계적인 스포츠댄스 챔피언을 꿈꾸는 어린이 커플.

댄스스포츠 경력 10년차인 강철구 오구인테리어 회장(56)은 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회장은 “국제회의 참석 등으로 해외 출장이 잦았는데 회의 뒤에 열리는 댄스파티에 한 번도 끼지 못해 안타까워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며 “댄스스포츠를 배운 뒤 외국인 바이어들과도 더 가까워져 일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강회장 부부는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5월24일부터 열리는, 꿈의 대회로 알려진 영국 블랙풀댄스페스티벌(78회) 일반인 부문에 참가한다.

전문가들은 만약 댄스스포츠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다면 한국선수들도 입상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댄스스포츠 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박지우씨(22) 같은 이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박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를 휴학하고 현재 영국 라반센터에서 춤을 익히고 있다. 지난해 10월 권위 있는 영국 로열알바트홀 세계대회에서 동양인으로는 최상위권인 7위에 입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박씨는 “골프가 대중화의 길을 걷는 것처럼 조만간 댄스스포츠를 모르면 후회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도대체 춤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이처럼 끌어들일까. 28년간 한 번도 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가 2년 전 “삶이 너무 밋밋해서 동호회를 통해 춤을 배워 댄스마니아가 됐다”는 송현주씨(38)는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본능의 몸짓인 춤 자체가 즐겁다는 것. 더욱이 자전거 타기나 운전처럼 한번 배워두면 평생 써먹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둘째 댄스를 매개로 이성과의 건전한 교제가 가능하다는 것. 특히 요즘 대도시를 중심으로 크게 유행하고 있는 파티문화를 통해 일정한 커뮤니티에 들어가 대인관계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상에 파묻혀 있던 이들이 춤을 통해 잊었던 자아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댄스를 ‘권하는’ 사회적 풍조도 댄스 열풍에 한몫하고 있다. 매스컴 등의 영향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춤 잘 추는 이가 선망의 대상이 된 데다 인터넷의 확산으로 댄스 동아리가 크게 늘어났다. 각 시·군·구의 복지회관 등에서도 댄스 강습을 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고, 댄스학원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홀을 갖춘 헬스클럽들도 대부분 회원들을 대상으로 댄스 교습을 하고 있어 댄스 열풍을 부채질하고 있다.

방송가에서도 인기를 얻으려면 춤 실력이 필수다. 드라마 ‘인어 아가씨’에서는 주인공 장서희가 댄스 스튜디오에서 집중 강습을 받고 ‘살사’춤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한 개그프로그램에서 “샘, 제가 그쪽으로 가겠어~요.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을 외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재즈)댄서 킴(김기수)이나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해두고 진동이 울릴 때마다 화려한 춤솜씨를 과시하는 개그우먼 김지선 등도 춤으로 사랑받는 이들이다. 김지선은 5월9일 자신의 결혼식에서도 섹시한 춤을 선보여 2000여명의 하객을 즐겁게 했다. 이 밖에 르네 젤위거와 캐서린 제타 존스가 화려한 가무를 선보이는 영화 ‘시카고’는 3월28일 개봉돼 한 달 넘게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고, 1980년대의 디스코 열기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는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는 매회 80% 이상의 객석 점유율을 보이며 4월5일부터 한 달간 5만여명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5월10일 막을 내린 이 뮤지컬은 LG아트센터로 장소를 옮겨 6월 앙코르공연에 들어간다.

존 트라볼타와 올리비아 뉴튼 존이 주연한 뮤지컬 영화 ‘그리스’와 1952년에 상영돼 인기를 끌었던 진 켈리 주연의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도 뮤지컬로 각색돼 5월 말께 국내에 선보인다. 이들 복고풍 뮤지컬이 2030세대뿐 아니라 중년층까지도 춤의 열풍 속에 합류시킬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댄스 애호가들 겨냥한 댄싱 레스토랑도 등장

그러나 댄스 열풍의 가장 중요한 배경은 인터넷의 확산. 어느 포털사이트에서건 상위 대여섯 개 댄스동호회의 회원수만 합해도 100만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회원들은 대개 젊은층이지만 차차차 룸바 탱고 등 댄스스포츠를 가르치는 전문사이트도 많아 40, 50대 네티즌들도 많이 찾고 있다. 이들 사이트는 동영상과 플래시, 사진 등을 통해 기본부터 알기 쉽게 가르치고 있어 인기가 높다.

3D 애니메이션을 통해 힙합, 재즈, 가요댄스를 가르치는 ‘오락닷컴’(oraq.com)과 ‘아이댄스’(idance.co.kr)의 회원수는 60만명을 넘는다. 최근엔 휴대전화, 개인휴대단말기(PDA) 등을 통한 무선 콘텐츠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어 매출이 한 달 평균 30% 이상 급증하고 있다.

시장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확대일로다. 댄스 열풍은 자연히 이 업계의 시장을 확대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만 댄스바가 5개, 춤을 가르치는 댄스 스튜디오는 8개나 된다. 댄스바가 7개 이상 있는 홍익대 근처뿐 아니라 강남역 근처에도 최근 댄스 스튜디오가 하나 둘씩 늘어나 10여개가 자리잡았다. 이곳 거리엔 강습을 알리는 대여섯 개의 플래카드가 행인들의 눈길을 끈다.

댄스 애호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작은 스테이지를 갖춘 댄싱 레스토랑들도 하나 둘씩 들어서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역 근처에 5월중 들어서는 25층 쌍둥이 빌딩 교보타워에도 가벼운 춤을 즐기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댄싱 레스토랑이 생길 예정이다.

압구정동의 살사 전문바인 ‘까사살사’ 주인 송현주씨(29)는 “70여평의 댄스바를 온라인 동호회의 정기모임 장소로 제공하고 있는데 일곱 군데만 잡아도 일주일 내내 매일 평균 120여명이 몰려든다”며 “별다른 초기 투자 없이 인테리어만 깔끔하게 해놓으면 댄스 애호가들을 끌어들이는 게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송씨는 조만간 강남지역에 술과 음료를 즐기며 다양한 장르의 춤을 배울 수 있는 수백평 규모의 체인점 형태의 대형 댄스 콤플렉스를 열 계획이다.

국내에서 댄스문화는 이제 막 어두컴컴한 밀실에서 벗어나 산뜻한 양지로 나왔다. 술에 취해 흥청거리는 도구로 전락했던 댄스가 젊은이들의 건전한 사교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고, 덩달아 관련 산업도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춤은 한 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칼럼니스트 제럴드 조너스의 말이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2003.05.22 385호 (p12~15)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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