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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관광만능주의 그림자

학교 앞 사후면세점 피켓 든 엄마들

3년 새 3배 늘어 스쿨존·주택가까지 침범, 불법주정차에 몸살…“법대로 장사할 뿐”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학교 앞 사후면세점 피켓 든 엄마들

학교 앞 사후면세점 피켓 든 엄마들

서울 마포구 염리초 학부모들이 스쿨존 내 사후면세점 입점에 반대하며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7월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염리동 주택가에 100여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염리초교에서 50m도 안 되는 곳에 신축되고 있는 사후면세점 건물 때문이다. 학부모와 주민들은 “학교 앞 사후면세점이 웬 말이냐” “아이들 안전 위협하는 사후면세점 결사반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사후면세점이 스쿨존(초교나 유치원 근처에 지정하는 어린이보호구역)까지 침입했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이보다 앞서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상암초교 학부모들도 지난겨울부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곳 역시 학교에서 200m 거리에 들어선 사후면세점 때문이다. 상암초 학부모회 관계자는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대형 관광버스가 학교 앞에서 불법유턴을 일삼아 아이들 안전사고가 우려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뿐 아니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연희초교도 지난해 12월부터 똑같은 문제로 학부모들이 시위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결국 이 면세점 업체 측은 잠정적으로 건축을 중단했지만 언제 다시 공사를 재개할지 알 수 없다.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미동초교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도 김치 판매 전문 사후면세점이 들어서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사후면세점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사후면세점은 지난해 말 기준 1만2077개로, 이 중 5756개가 서울에 몰려 있다. 사후면세점 수 집계를 시작한 2012년만 해도 전국 3303개, 서울 1684개에 불과했지만 3년 사이 전국 3배, 서울 4배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 서울시 내에서도 중국 관광객이 주로 찾는 명동과 남대문 일대,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길목인 마포구와 서대문구에 유독 몰려 있다.

사후면세점은 공항과 시내에 있는 사전면세점과 달리 특허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돼 진입장벽이 낮다. 특히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2월부터 ‘즉시환급제’를 도입하면서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즉시환급제는 100만 원 한도 내에서 건별 20만 원 미만인 물건을 구매하면 면세판매장에서 세금을 바로 돌려주는 제도로, 면세 범위는 부가가치세 10%, 개별소비세 5~20%로 정해져 있다. 종전에는 사후면세점에서 물건을 산 뒤 출국 직전 공항에서 세금을 환급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즉시환급제 도입으로 쇼핑 편의성이 한결 높아진 게 사실이다. 더욱이 기존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비롯해 화장품, 의류, 식품 등 부가세 환급을 받을 수 있도록 지정한 일반 매장은 어디든 사후면세점으로 등록할 수 있으며 편의점, 드러그스토어 등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에 한해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소비세를 감면해준다.  



서울 시내 곳곳에 사후면세점이 생기면서 외국인이 쇼핑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됐지만 상대적으로 인근 주민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특히 주택가는 물론 스쿨존까지 침범하면서 주민들과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신고제 이후 서울에만 5756개, 전국 절반 육박

전수아 염리초교 학부모회 운영위원장은 “아무리 관광객 유치도 좋지만 아이들 안전을 담보로 하는 무분별한 사후면세점 확장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은 학교 정문 바로 앞으로 다니게 될 대형 관광버스. 하루에도 수십 대가 통행할 것이 뻔한 만큼 어린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게 분명하다는 얘기다. 전 운영위원장은 “2차로인 이면도로에, 그것도 어린아이들이 다니는 곳에 대형버스가 통행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버스에서 발생하는 매연도 다 마시게 될 뿐 아니라 차량 통행에 따른 소음도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 사후면세점은 아파트 단지와도 인접해 주민들의 생활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인근 한 주민은 “사후면세점을 이용하는 관광버스들이 아무 데나 불법주정차를 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걸 누가 보상해주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업체 측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 업체 한 관계자는 “당초 짓기로 했던 규모보다 절반 이상 줄여 주차장을 확보한 만큼 학부모와 주민들이 걱정할 만한 불편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 등하교 시 안전요원도 배치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서울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후면세점의 폐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차장과 안전요원 확보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한 사후면세점은 지하에 중국 단체 관광객이 이용하는 대규모 식당이 있고 1·2층은 면세점이다. 이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1년 내내 찾아오는 중국 관광객들로 영업에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죽하면 간판도 밖에 안 내놨겠나. 관광객들이 이 일대를 점령하고 있으니 손님이 제대로 알고 들어오겠나. 피해를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모르겠다. 관광버스는 하루 종일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식사나 쇼핑을 마친 관광객들은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휴지를 마구 버린다. 면세점에서 일하는 조선족 출신 직원들까지 우리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통에 못 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후면세점에 관광객이 몰리는 시간은 보통 오전 9시부터 10시 사이. 그 시간 기자가 직접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를 둘러본 결과 사후면세점 근처 도로에 즐비하게 정차한 관광버스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2차선 도로에 관광버스 10여 대가 양쪽으로 동시 주차해 2개 차로를 막아버린 광경도 목격할 수 있었다. 교통체증은 자연스러운 결과. 보도블록 위를 점령한 관광버스 때문에 주민들 통행이 불가능한 상황도 연출됐다.



관광버스 주차장으로 둔갑한 도로

학교 앞 사후면세점 피켓 든 엄마들

주택가 좁은 골목길로 대형 관광버스가 연달아 들어오고 있다(왼쪽). 도로 한 차선을 점령해버린 사후면세점 관광버스들. [홍중식 기자]

헛개나무열매 등 건강보조식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마포구 망원동 한 사후면세점은 승용차 한 대만 세워져 있어도 다른 차량이 지나갈 수 없는 주택가 좁은 골목에 위치해 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면세점 바로 앞에는 다가구주택이 자리하고 있다. 오전 9시 면세점 측 안내원이 교통안내를 했지만 면세점으로 들고 나는 관광버스와 출근 차량이 뒤엉켜 2차선 도로가 꽉 막혀 있었다. 근처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교통 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소음과 매연이 심각하다. 교회에서 예배에 집중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혀를 찼다. 주민 이모 씨도 “직장이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인데 면세점이 생긴 이후 한 시간 일찍 출근한다는 사람도 있다. 아침마다 버스 굉음과 함께 매연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이러한 풍경은 망원동뿐 아니라 홍대 근처 합정동, 상수동, 연남동 등 사후면세점이 있는 곳에서는 일상적인 모습이다.

이처럼 사후면세점이 주민의 편의를 해치는 ‘유해시설’로 전락한 원인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라는 명분하에 이뤄지는 무분별한 장려 정책에 있다. 사후면세점 설치 근거가 되는 ‘조세특례제한법’은 부정유통에 한해서만 행위 제한 규정을 둘 뿐, 입점에 따른 부작용이나 주민 편의 저해를 이유로 설치를 거부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없다. 사업자가 관내 세무서에 사후면세점 신청서를 제출하면 세무서는 7일 내 승인해야 한다. 결국 원하면 누구나 사후면세점 사업을 할 수 있는 구조다.

신축 건물의 경우 991㎡(약 300평) 이상만 교통영향평가를 실시하기 때문에 그 이하 소규모 업체 중에는 주차시설을 아예 갖추지 않은 곳도 허다하다. 사후면세점 업자들이 “법에 저촉되는 사항이 전혀 없다”며 영업권을 주장하는 이유도 사후면세점으로 인한 갈등 요소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10년마다 관세청에서 특허권을 갱신해야 하는 사전면세점과 달리 사후면세점은 운영기한조차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한동안 기업들은 사전면세점보다 사후면세점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점치기도 했다.



중국 관광객 ‘큰손’은 옛말

학교 앞 사후면세점 피켓 든 엄마들

중국 관광객들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 소재 한 사후면세점으로 들어가고 있다. [홍중식 기자]

하지만 사후면세점이 언제까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 수는 없다. 과당 경쟁에 따른 매출 저하로 볼멘소리를 하는 업체도 속출하고 있다. 현재 사후면세점의 주된 모객은 여행사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자칫 여행사와 커넥션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수익 창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 사후면세점 관계자는 “여행사가 손님을 모시고 와야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갑을관계가 철저하다. 아무리 여행사에서 쇼핑 코스를 늘린다 해도 한 팀에서 소화 가능한 업체가 한정돼 있으니 사후면세점은 여행사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 사후면세점이 여행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는 55%에 달한다. 시내 사전면세점 수수료가 25~30%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상암동 소재 사후면세점 한 관계자는 “20만 원짜리 물건을 하나 팔면 15만 원은 여행사에, 2만 원은 가이드에게 주고 남는 건 3만 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 박리다매 구조이다 보니 관광객 모객이 제대로 되지 않는 곳은 운영비를 뽑기도 힘들다”고 귀띔했다. 사후면세점은 한 매장에서 단일 품목을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표적으로 화장품, 건강보조식품(인삼, 홍삼, 헛개나무 추출물 등), 김치, 김, 전기밥솥을 판매한다. 따라서 업종별 가격차로 여행사와 가이드에게 지불하는 커미션은 다소 차이가 있다.

여행사가 사후면세점으로부터 제공받는 수수료가 이토록 많은 이유는 결국 ‘덤핑’ 저가 여행 때문이다. 전직 중국 인바운드 가이드였던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현지에서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모객을 하기 때문에 여행사는 어쩔 수 없이 쇼핑이나 옵션으로 손해를 충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가격대를 올릴 수도 없는 게 중국인 관광객은 대부분 ‘싼 맛’에 한국을 찾는다고 한다. 이미 많은 중국인 관광객을 일본에 빼앗겼다”고 말했다. 



매출 좌우하는 여행사 커미션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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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화장품은 사후면세점 전체 판매 물품 중 60% 이상을 차지한다. [홍중식 기자]

더욱이 최근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발표로 중국 내에서 반한(反韓) 감정이 더욱 심해지면서 한국을 찾는 관광객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아직 구체적인 통계가 집계되진 않았지만 한 사후면세점 관계자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확 줄어든 관광객이 서서히 회복되나 싶었는데 갑자기 사드 문제가 불거져 반한 감정이 일어서인지 최근 방문객 수가 절반 정도 줄었다. 평소 같으면 방학을 맞아 여행객이 많이 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푸념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큰손’으로 부르는 것도 옛말이 됐다. 한 사후면세점 관계자는 “‘싹쓸이 쇼핑’을 하는 관광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 찾아온 손님들을 봐라. 20명이 왔는데 단 1명도 물건을 구매하지 않았다”며 사후면세점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들려줬다. 실제로 중국 관광객의 인당 쇼핑 금액도 많이 줄어들었다. 국내 최대 면세점인 롯데면세점 통계를 바탕으로 하면 인당 쇼핑 금액이 2013, 2014년 70만 원에서 지난해에는 56만 원 선으로 낮아졌다.

그 이유는 중국인의 해외 소비 패턴이 상당 부분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3월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베이징무역관이 작성한 ‘유커 해외여행 트렌드 어떻게 바뀌고 있나’에 따르면 중국 해외 여행객이 즐겨 찾는 품목이 전기밥솥이나 비데 같은 고가 상품에서 중저가 소비재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춘제(설 명절) 연휴 기간 중국 해외 관광객이 선호한 쇼핑 품목은 어린이 감기약, 스타킹, 텀블러, 전동칫솔 등 대부분 중저가 소비재였다.

또한 비슷한 시기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대중에서 소중으로 진화하는 중국 소비자’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최근 중국에선 ‘대중’의 반대 의미로 천편일률적인 제품보다 소비자 각각의 개성을 반영할 수 있는 취향 기반의 제품 선호 트렌드를 나타내는 ‘소중’이라는 단어가 부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해외 직접구매(직구) 등 인터넷 쇼핑 사용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오프라인 매장 매출이 줄어든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심지어 국내 여행 중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해 숙소로 배달받는 관광객도 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교통체증, 소음, 매연 등으로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는 사후면세점은 영업 실적 면에서도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분위기다.






주간동아 2016.08.10 1050호 (p22~26)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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