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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구입‘아무나’ 범죄악용‘어쩌나’

전과자 등 부적격자 손쉽게 소지 허가 … 총포상 교묘한 판촉, 형식적 신체검사 주요 원인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총기구입‘아무나’ 범죄악용‘어쩌나’

총기구입‘아무나’ 범죄악용‘어쩌나’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어 범죄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5mm공기총.

법조계 인사들이 구설수에 오르는 등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화여대 H양 살인사건에서 범인들이 살해 도구로 사용한 것은 ‘공기총’이었다. 쌀부대에 담겨진 채로 발견된 H양은 눈에 두 발, 귀에 두 발, 뒤통수에 두 발 등 모두 여섯 발의 ‘살상용 탄환’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공기총’을 들고 위협하는 인질범에게 경찰이 권총을 빼앗긴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있었다. 4월 경북 칠곡에서 K씨가 경찰과 대치하다 자살한 사건이 바로 그것. 당시 K씨는 경찰관 2명을 공기총으로 위협, 인질로 잡고 수갑을 채우는 등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을 벌였다.

까다로운 자격 규정 ‘있으나 마나’

공기총은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총기(엽총 공기총 가스총) 중에서 범죄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무기다. 최근 공기총 관련 범죄가 늘고 있는 것은 누구나 이 ‘범죄용 총기’를 손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총기범죄와 관련해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얘기다.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등에 따르면 심신상실자,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자, 알코올중독자 등은 총을 살 수 없다. 전과자의 경우엔 전과 내용의 경중을 따져 주소지 관할경찰서에서 총기 소유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일선 경찰서에서 총기 면허를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까다로운 신원조회와 철저한 신체검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등록된 총기가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은 이 경찰관의 주장과는 크게 달랐다. 10월17일 서울의 K총포상. 일반인을 상대로 공기총과 엽총을 판매하는 곳이다.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고 있는데 총기 구입이 가능하냐”고 묻자, “술 좋아하는 사람은 총을 사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느냐, 면허를 받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폭력 전과가 있어서 엽총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하자, “공기총도 잘만 사용하면 화력이 만만찮다”며 공기총 구입을 권유했다.

총기구입‘아무나’ 범죄악용‘어쩌나’

폐쇄회로TV에 잡힌 포천농협 총기강도.

서울의 또 다른 총포상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강도 전과자’라고 밝혔더니, 총포상 주인은 대뜸 “신체검사하는 데 5분밖에 안 걸리니 번거롭더라도 친구나 가족을 데려오라”고 했다. 총기상이 나서서 전과자의 총기 구입을 돕고 있는 셈이다. 이 총기상 주인은 “신체검사는 어차피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사진 4장과 주민등록등본만 가져오면 1주일 안에 총을 구해주겠다”고 말했다.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다거나 대마초 흡입 사실을 암시해도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총기 구입에 결격사유가 있음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총포상 중 상당수가 “총기를 구입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다. 한 업자는 “경찰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총을 사용하고 싶으면 경찰서에 맡겨야 하는 엽총 대신 조준경을 부착할 수도 있고 화력도 만만찮은 5mm공기총을 구입하라”고 ‘훈수’하기도 했다.

총포상이 총기 구입 업무를 일괄 대행하는 과정에 경찰과의 유착 여부가 의심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총기업자들의 주장이다. 총포상들이 부적격자에게 총기 구입을 권유하는 것은 사냥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총기 판매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총기도매상의 경우 한 달에 판매하는 총기가 4~5정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불황을 겪고 있다.

총기를 구입하기 전에 병원에서 받아야 하는 신체검사는 경찰이 총기 소유 허가 여부를 결정할 때 비중 있게 참고해야 하는 자료다. 엽총의 경우엔 병원에서, 공기총은 의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은 뒤 결과에 이상이 없어야 총기 구입이 허가된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신체검사는 ‘형식’일 뿐이다. 간단한 시력검사와 색맹검사 외엔 대부분의 검사가 문진(問診)으로 이뤄진다.

실제로 서울 마포의 한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아봤다. 신체검사에 걸린 시간은 4분 남짓. 형식적인 시력검사를 한 뒤 팔을 몇 번 올렸다 내리게 하더니 ‘신체 이상무’ 판정을 내렸다. 심신상실과 정신장애 진단은 간호사가 한두 마디 물어본 게 전부. 서류엔 의사의 도장이 찍혔지만, 신체검사를 받을 때는 의사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신체검사 결과도 우편 등을 통해 거주지 경찰서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검사자 본인이 직접 총포상이나 경찰서로 가져가게 돼 있다. 검진 결과 ‘총을 살 수 없다’는 진단이 나오면 검사가 엉터리로 이뤄지는 다른 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으면 그만이다. 또 다른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아봤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공기총 구매자가 검사를 받게 되는 의원의 경우는 검사 과정이 더 엉망이었다.

총기구입‘아무나’ 범죄악용‘어쩌나’

검거된 서울 중랑구 한빛은행 총기강도 사건 용의자들.

이처럼 공기총은 ‘기호품’ 대접을 받고 있을 뿐더러 유통단계의 관리 소홀로 정신병력자나 전과자도 쉽게 소지할 수 있다.

경찰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현재 소지 허가가 난 총기는 공기총이 23만9649정으로 가장 많고, 엽총 3만5746정, 가스총 1만2552정, 권총 1602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총기 관련 범죄가 늘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찰은 “서울 상봉동 한빛은행 무장 은행강도 사건을 포함해 모두 20건의 민간인 총기사용 범죄가 발생했는데 대부분 5mm 또는 5.5mm 구경 공기총이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공기총이 범죄 도구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소유자가 총을 집에 보관하며 언제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엽총은 수렵철인 11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낮 시간에만 소유자가 총기를 사용할 수 있고 나머지 시간엔 경찰에 맡겨둬야 한다. 그러나 관리가 비교적 잘 이뤄지고 있는 엽총과 달리 공기총은 경찰에서 아예 관리를 포기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일선 경찰서들은 관내의 공기총 개수조차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기총은 파출소에 영치해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총구의 지름이 5.5mm 인 것은 영치 대상이고 그보다 0.5mm가 작은 5mm는 영치 대상이 아니다. 경찰에 따르면 파출소에 영치하도록 돼 있는 5.5mm공기총은 살상무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두 공기총의 성능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최근엔 공기총에 불법 조준경을 다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는 5mm공기총도 ‘저격용 소총’ 구실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총기는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다. 총기 관리가 이처럼 허술하게 이뤄진다면 최근 미국을 떨게 하고 있는 ‘연쇄살인 저격수’가 우리나라에서도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에선 공기총에 대한 규제를 엽총과 같은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명대 허경미 교수(범죄학)는 “민간 보유량이 많은 공기총이나 엽총이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현행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로 총기 허가 절차를 엄격하게 실시하고, 현재 민간이 관리하도록 하고 있는 총기의 일부도 경찰에 영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2.10.31 357호 (p42~43)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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