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1

2002.04.25

바람에 몸 띄워 하늘아 놀자!

  • < 허시명 / 여행작가 > storyf@yahoo.co.kr

    입력2004-11-01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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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에 몸 띄워 하늘아 놀자!
    해발 1172m 지리산 정령치 고갯마루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다. 언젠가 헬리콥터가 내려앉을 정도의 공간에 모여 있던 ‘용사’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특수 임무를 띤 특전사 낙하산 대원쯤으로 보였다. 종잡을 수 없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아득하게 멀어지는 그들이 용맹무쌍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함부로 목숨 거는 사람들처럼 보여 나로서는 감히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올 봄 진달래가 좋다는 여수 영취산을 올랐을 때다. 다도해를 배경으로 패러글라이더가 창공을 날고 있었다.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기라도 한 듯, 완만하게 가로누운 8자 곡선을 그리면서 유유히 내려오는 그 모습이 한 마리 새 같았다. 그때 처음으로 절실하게 ‘날고 싶다!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러글라이더를 타기 위해 서울 근교를 둘러보았다. 경기도 광주의 매산리 비행장은 일요일만 개방하고, 유명산 활공장은 초급자가 이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경기도 화성 어섬에 초보자가 이용하기에 좋은 활공장이 있다. 어섬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비봉 나들목에서 빠져 대부도 쪽으로 가다가, 송산면 소재지에서 고포리 쪽으로 빠져 바다에 다다르면 나오는 섬이다. 지금은 시화호에 갇혀 뭍이 된 곳인데, 개펄에 갈대와 바다 바람만 무성한 버려진 땅인 듯싶어도 둘러보면 레저 천국이다. 개펄이 탄탄하게 마른 개활지라 초경량 비행기가 뜨고 내리기에 좋고, 야외 승마에도 좋다. 해풍을 막아선 야산이 있어 패러글라이딩과 행글라이딩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또 물이 있어 윈드서핑과 카이트보드(보드를 타고 스포츠연을 이용해서 달리는 것)를 즐길 수도 있다.

    바람에 몸 띄워 하늘아 놀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은 어섬 안쪽 해발 50m쯤 될까, 한 야트막한 야산 정상에 있다. 주말에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러 나오는 사람이 많다. 패러글러이더가 3, 4분 간격으로 연이어 떠오르는데, 간혹 여성들도 눈에 띈다.

    활공장에는 초급자들을 지도하느라 교관들의 목청이 우렁차다. 초급자들은 교관이 잡아주는 날개가 맞바람을 받아 펼쳐지면,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땅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간다. 무게중심을 조금이라도 앞에 두기 위해 몸을 잔뜩 움츠리는데, 허공에 둥실 떠오르면 비로소 허리를 펴고 하네스(조종사를 지지하여 글라이더에 고정시켜 주는 장치)에 기대는데 마치 의자에 걸터앉은 자세가 된다. 교관은 초급자의 가슴에 달린 무전기로 연신 다음 동작을 지시한다. 함께 타고 가면서 가르칠 수 없어 무전기를 이용한다.

    바람에 몸 띄워 하늘아 놀자!
    남자친구와 함께 온 성현아씨(26)는 첫 비행 때는 교관의 무전기 소리만 들릴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 했다. 이제 여덟 아홉 차례 비행하고 나니 여유가 생겨 발 아래 풍경도 보이고, 풍선을 타는 듯한 기분도 느껴지고, 새가 된 듯한 착각에도 빠져들 정도가 되었다.



    패러글라이더는 낙하산에서 진화된 기구다. 낙하산이 단순하게 낙하 기능만 수행한다면, 패러글라이더는 바람을 이용해 날아가는 활공 기능을 갖추었다. 그래서 이름도 패러슈트(낙하산)와 글라이더(활공)의 합성어다.

    바람에 몸 띄워 하늘아 놀자!
    패러글라이더는 인간이 새처럼 날 수 있는 기구로, 배우기 쉽고 안전해 단기간에 가장 많이 보급된 항공 스포츠다. 현재 2만명 정도의 동호인이 있으며, 각 도마다 두세 개의 활공장을 확보하고 있다. 15~20kg 되는 패러글라이더를 배낭에 짊어지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면, 그리고 날개와 줄을 펼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어느 산 어느 봉우리에서든 비행할 수 있다. 바람과 열기류(지열로 공기가 팽창하면서 생기는 바람)를 이용해 비행하는데, 높게는 3000m까지 올라간다.

    패러글라이더는 그냥 탈 수 있는 기구가 아니다. 최소한 3일 정도 이론 교육과 지상 교육을 받은 뒤라야 실습 비행을 할 수 있다고 ‘글라우드배이스 플라잉 스쿨’을 운영하는 이우한씨(32)는 말한다.

    패러글라이더는 좌우 방향과 속도를 조정할 수 있으며 구조는 날개와 줄, 조정줄과 비행의자 겸 배낭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에처럼 생긴 날개는 홑겹이 아니다. 위아래 두 겹으로 되어 있는데, 날개의 앞쪽이 입처럼 벌어져 있어 그 속으로 공기가 들어차게 된다. 날개가 맞바람을 받아 일어서는 것도 그 주머니 속으로 공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7~8m에 이르는 날개는 거대한 공기주머니인 셈인데, 바람이 들어차면 누에처럼 통통하게 변한다. 이 때문에 날개가 접히지 않고 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소용돌이가 치면 날개가 접힐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만약 날개가 접히면 준비한 비상 낙하산을 펴야 한다.

    활공장은 바람을 잘 받는 산 정상이라야 한다. 패러글라이더는 바람을 이용한 무동력 비행체다. 바람 부는 방향과 바람의 속도를 간파할 줄 알아야 함은 물론이다. 바람의 속도는 풍속계로 쉽게 잴 수 있는데, 초속 7m 이하면 괜찮다. 연기가 90도 정도로 기울어지고, 이파리 없는 나뭇가지가 움직이고 먼지가 일 정도여도 비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물결이 일고, 작은 나뭇가지가 휘고, 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면 비행해서는 안된다. 물론 바람이 없어도 날 수 없고, 옆바람이나 뒷바람이 불어도 날 수 없다. 앞바람이 불어 주머니처럼 생긴 날개 안에 바람이 들어차면서 날개가 일어서야 비로소 몸을 날릴 수 있다.

    바람이 좋은 날, 패러글라이딩을 멋지게 타보려고 어섬을 찾아갔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차가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서해안 어섬에 도착하니 바람이 매서웠다. 전문가인 이우한씨조차 패러글라이더를 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패러글라이딩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만용이다. 패러글라이딩은 자연을 정복하는 게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는 행위다. 이 원칙을 지키면 결코 위험하지 않은 레포츠다. 특전사 대원들의 완력이나 담력으로 하는 특수 기술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편안한 놀이이자 운동이 될 수 있다. 체중 40kg이 넘는 중학생 이상이면 누구라도 즐길 수 있고, 실제 여성 동호인도 많다.

    문명의 이기는 전자제품이나 인터넷만이 아니다. 스포츠공학의 발전으로 사람도 저마다 새처럼 자유롭고 안전하게 날아오를 수 있게 되었으니, 300만원짜리 날개를 갖춰 입는다고 생각해 보라. 예전엔 하늘을 나는 일이 꿈이었고 목숨 건 곡예였다면, 이제는 자연과 하나 되는 놀이운동이다. 처음에는 두려움에 가슴 졸이겠지만, 익숙해지면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장쾌한 세계가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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