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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명절이 두렵다”

20~30대 ‘직장인 4인’이 털어놓은 속마음 … “빠듯한 지갑, 아내 눈치 보며 스트레스 쌓여”

  • < 정리=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남자도 명절이 두렵다”

  • ‘여자들은 명절에 힘들다.’ 이건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럼 남자들은 즐겁기만 할까?
  • 설날을 정확히 2주일 남겨둔 1월29일 저녁, 대학 선후배 사이인 네 명의 직장인이 서울 마포의 한 갈비집에 모여 앉았다. 결혼 연차도, 사는 모습도 모두 다르지만 명절을 맞아 느끼는 생각은 대동소이. 그저 쉬는 게 좋고 식구들 만나러 가는 게 기뻤던 총각시절은 이제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 4인의 유부남이 속시원히 털어놓는 속내, “우리도 명절이 두렵다.” <편집자>


-우리가 명절만 두려운 건 아니지. 사실 늘 아내가 두렵잖아(웃음). 나오기 전에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봤더니 한결같이 “당연히 고민이 있지” 그러는 거야.

-명절 때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고생하는 건 100% 맞지. 그런데 아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남편들에게 여과 없이 전해지는 게 크다고 봐. 도대체 시댁에 가고 싶어하지를 않잖아요, 아내들이. 굳이 말은 안 해도 표정에 드러나니까 영향을 안 받을 수 없거든. 가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둘째치고 일단 가기 전부터 ‘작업’ 들어가야 된다고.

-나처럼 무미건조하게 사는 사람은 명절날이 다가오면 그냥 속으로만 전전긍긍하는 거지.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부모님하고 아내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는 부분 아냐? 서로 삶의 스타일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니까. 우리 부모님은 서울에 계시니까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명절 때가 되면 아내도 폭발하는 거야.



-가족끼리 평소에 대화라도 많이 했으면 나을 텐데. 우리나라 남자들은 그게 안 되잖아. 그냥 회피하게 되더라고. 눈앞에서 불꽃 튀는 게 보이는데도 슬금슬금 모른 척하는 거지.

-명절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지. 배갯머리 송사라고 하잖아. “어제는 그래야 맞았던 거 아녜요?” 이렇게 따지고 들거든. 그러니까 어머니와 아내, 혹은 아내와 제수씨 사이에 트러블이 생기는 기미만 보이면 내가 먼저 긴장돼. 당사자들이야 언성도 높이고 하면서 풀지만 나는 방법이 없다고. 명절 내내 살얼음판 걷는 기분이지. 그럴 때는 차라리 남자들이 일하고 여자들이 쉬는 게 낫겠다 싶어.

-그럴 때는 언제 끼어들지 타이밍 잡는 게 중요해. 한 번 기회를 놓치면 아내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거든. 예전에 제수씨랑 와이프랑 서로 고성이 오가며 싸웠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 굴리고 있는데 남동생이 대뜸 나서는 거야.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가 “동생이 형보다 낫네” 그러더라고. 이게 사실 정치학이야. 남자들은 여자들 싸우는 거 보면서 ‘가정 정치학’을 배운다니까.



-나도 부엌일 도와주고 싶다고. 명절날 설거지하기 싫어 안 하는 게 아니라니까. 마음은 굴뚝같지. 문제는 어른들 눈치야.

-그게 그래. 결혼 전에는 어머니께도 그렇게 안 도와드렸잖아. 어머니가 속으로 ‘장가보내 놨더니 마누라만 챙기는구나’ 하실 거 아냐.

-우리 집은 위로 형제만 다섯이야. 완전히 층층시하지. 그러니까 나나 아내나 뭘 바꿔보겠다, 이런 생각을 못해. 70이 넘으신 부모님께 무슨 이해를 바라겠어? 가만히 보면 여자들이 힘들다는 게 단순히 노동 강도가 세서 그런 건 아니야. 다들 지켜보는 듯한 분위기 때문이지. 마늘 하나를 까도 엄청 잘 까야 할 것 같은 그 분위기….

-사실 남자들은 처가에 가서도 놀잖아. 고향은 강릉이지만 처가는 서울이니까 오는 길에 꼭 들르지. 자주 드나드니까 편하기도 하고. 또 장모님은 절대 설거지도 못하게 하시잖아.

-우리 장모는 말리는 시늉만 하시던데.(웃음)

-보통 어떻게들 해? 일단 본가에 내려가 제사 지내고 오후에 처가로 출발하지 않나? 우리 와이프는 처가에 가서 쉬고 어리광도 부리면서 스트레스를 좀 푸는 것 같더라고.

-나 같은 경우는 처가가 제주도라 못 가지.

-제주도면 좀 낫네. 우리 장인 장모는 모두 중국 칭다오에 계시는데.(웃음)

-처가 가는 게 보상의 의미는 아니야. 본질은 해결 못하고 테크닉으로 넘어가는 거니까.

-명절 끝나고 나면 다른 방법으로 달래야지 뭐. 휴일 끝나고 일주일간 가사노동은 전부 내 차지야. 그렇게 정한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걸로 됐어.

-일주일치 가사노동으로 끝나면 다행이게? 새옷에 근사한 외식쯤은 시켜줘야 관계가 복원되는 거 아냐? 우리 마누라만 그런가?(웃음)

-결혼 초엔 의무적으로 처가에 갔지. 근데 점점 처가가 더 편해져. 동서들끼리 고스톱 치고 놀고, 와이프 스트레스 걱정할 필요 없고. 차례상 딱 치우고 나면 아내 눈치가 벌써 달라진다고. 둘이 있으면 언제 친정 가느냐고 자꾸 묻고. 그러니까 오후도 되기 전에 서울에 모임 있다고 거짓말하고 나서는 거야. 부모님께는 죄송하지.

-형이 미국에 유학중이라 아버지는 우리 부부라도 데리고 명절 기분 내고 싶어하시는 게 훤히 보여. 자꾸 “자고 가라”고 말씀하시거든. 와이프는 얼른 갔으면 하는 눈치고. 서글프지. 아버지가 안됐다는 생각도 들고.

-부모님께 간다고 인사드리고 나오잖아. 대문에 서서 손 흔드는 부모님 뒤로하고 (차의) 창문 쓱 올리면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되는 거지. 서로 눈치만 보는 거야. 아내는 무슨 구실로 이 스트레스를 풀까, 나는 나대로 ‘이 여자가 무슨 말을 하려나’ 싶고. 그러니까 아주 사소한 것 가지고도 폭발하는 거예요. 운전을 잘하네 못하네 같은….



-가족들이 모여 앉으면 알게 모르게 비교가 되잖아. 입은 옷 브랜드부터 애들 학교 성적까지. 우리 형님은 상당히 잘산다고. 집도 크고. 자연히 나랑 비교가 되지. 나는 자연히 내 무능력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물론 아내가 대놓고 말하는 건 아니야. 근데 아무 말 안 하는 게 오히려 더 ‘짠’해.

-와이프도 그 자리에서는 웃고 그러지. “잘됐네요” “좋으시겠어요” 하면서. 집에 오면 일단 애부터 구박하는 거야. 누구는 피아노를 어떻게 친다는데 어쩌고 하는 거지. 그 다음 차례는 당연히 나고.

-솔직히 이번엔 뭘 보고 와서 무슨 얘길 할까 걱정돼. 애들은 그렇다 쳐도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은 장난이 아니거든. 갑갑해지는 거지. 그래서 베란다 나가 담배 한 대 피워 물게 되는 거고.

-이상한 게 형제자매끼리는 그게 덜해. 근데 비슷한 나이 또래 사촌끼리 모이면 얘기가 달라져. 또 처가 가면 더 심해지잖아. 잘 나가는 동서들 보면 그런 생각 하게 돼. 장인 장모 용돈도 팍팍 찔러주고. 과시하는 것 같아 눈꼴도 시고.

-그 정도는 알아서 극복해야지. ‘저 동서들을 잘 이용해 봐야겠다’, 그런 마인드가 있어야 사회생활 할 수 있는 거 아냐? 대통령 처조카가 보물선 캐는 세상인데.(웃음) 그렇게라도 해야 덜 힘들지.

-용돈 얼마씩 드려야 되나, 그것도 만만치 않잖아. 취직해서 돈 번 이후로는 그 고민도 크다고 봐. 나는 미리 형제들하고 ‘협정요금’을 정해. 얘기하다 보면 ‘샐러리맨 적정가’가 딱 나온다고. 장인 장모께도 무조건 똑같은 금액으로 하는 거지.

-우리 집사람은 빠듯한 사정을 잘 아니까 “우리 엄마 아빠한테는 안 해도 된다”고 말하곤 하지. 솔직히 그러면 스스로에게 더 열받아. 그렇다고 안 드릴 수 있나? 부담돼도 어쩔 수 없는 거지.

-우리는 선물로 하는데.

-요새는 현찰이야. 부모님도 현찰을 더 좋아하신다니까.

-조카들 선물도 신경 써야 하잖아. 이게 또 은근히 경쟁이 돼. 가는 선물은 얼마짜린데 오는 선물은 얼마짜린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에 신경 쓸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요즘은 또 한 끼쯤 외식을 하잖아. 부모님 모시고 교외로 나가 고기라도 구워 먹고 오지. 그것도 적은 돈이 아니야. 부모님 용돈이나 선물비는 생활비에서 나가지만 외식비는 그대로 내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솔직히 내가 돈이 어딨어, 용돈 타 쓰는 주제에. 그러니 비자금 생각이 솔솔 나는 거야.



-명절은 또 왜 이렇게 심심한 거야? 맨날 TV만 보다 끝나고 말이야.

-식구들끼리 고스톱 댓 시간씩 치는 사람 있나. 잘해봐야 두 시간이지.

-그렇다고 친구들 만나러 나갈 수도 없잖아, 눈치 보여서. 오랜만에 고향 왔다고 동네 친구들은 계속 전화해대지만 와이프하고 부모님만 계시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그냥저냥 연휴 보내고 나면 기분이 찜찜해지지. 일요일 저녁 7시쯤 되면 몰려오는 기분 있잖아. ‘이렇게 또 끝나는구나, 내일부터 출근이구나’ 하는 느낌.

-도대체 뭐가 문제야? 우리 아버지 세대가 명절을 두려워했을 리 없잖아?

-지금 가족이 아버지 때 그 가족이 아니잖아. 막말로 우리 와이프가 우리 집이랑 결혼했나? 내가 좋아서 했지. 나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까지 전부 신경 써야 하나, 그렇게 되는 거지.

-결혼하는 순간 가족관계가 딱 두 배로 늘어나는 거, 우리 부모 생신은 못 챙겨도 장인 장모 생신은 챙겨야 하는 거, 그런 거지. 와이프는 가깝고도 먼 사이라고. 일심동체라잖아. 분명히 둘인데 하나인 것처럼 되기를 서로 바라다 보니 일이 엉키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뭘 어떻게 해. 잘해야지. 정답이 있겠어? 그냥 안 떨어지게 간댕간댕 외줄타기 하는 거야.

-남자들의 명절은 외줄타기다? 그래서 두려운 거야? 답 나왔네.(웃음)





주간동아 322호 (p100~102)

< 정리=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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