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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파동’ 몸살 앓는 중국 학계

베이징大 왕밍밍 교수 번역서 베껴 책 출간 … 학계는 동정론이 주류

  • < 강현구/ 베이징 통신원 > so@263.net.cn

‘표절파동’ 몸살 앓는 중국 학계

‘표절파동’ 몸살 앓는 중국 학계
지난 1월12일 베이징대학 홈페이지에 ‘베이징대 박사지도교수의 표절, 누가 실망하지 않겠는가’(北大博導剽竊, 叫人如何不失望?)라는 제목의 글이 뜬 후 중국 학계는 표절파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글은 베이징대학에서 촉망받고 있는 한 소장교수를 실명으로 거론하며 표절행위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표절혐의 주인공은 베이징대 인류학과 왕밍밍(王銘銘) 교수. 1962년생인 그는 샤먼(廈門)대학 대학원과정 재학 중 장학금으로 영국에 건너가 92년 런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런던시립대와 베이징대 등에서 포스트닥터 과정을 마친 후 94년부터 베징대 사회학과와 인류학과 교수로 부임해 현재 민속연구센터 책임자로 있다. 왕교수는 지난 10년 사이 13권의 저서를 내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친 공로로 중국 소장학자들의 최고 영예인 ‘청년 돌출학자’ 후보에 선정될 만큼 촉망받는 학자였다.

이번에 표절혐의를 받고 있는 책은 98년 6월 왕교수가 쓴 ‘상상의 이방’(想像的異邦, 상하이출판사 발행)이다. 이 책이 미국의 인류학자 W.A. 해빌랜드의 저서 ‘현대인류학’을 표절했다는 것인데 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만자를 표절했다는 엄청난 양도 문제지만, 87년 같은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한 ‘현대인류학’의 번역자가 바로 표절자 자신이라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자신이 번역한 책을 자신의 책에서 대량으로 표절한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곧바로 학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다. 특히 사건의 발단이 인터넷에 올린 글인 만큼 인터넷상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학자의 표절행위는 학문적 도둑질로서 지탄받아야 마땅한데도 의외로 중국 내에서 왕밍밍 교수에 대한 동정 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그만큼 중국 학계에서 표절이 성행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국의 대표적 포털사이트 시나닷컴(http://www.sina.com.cn)은 이 사건이 터지자 발빠르게 특집을 마련하고 네티즌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 사이트에서 실시한 ‘베이징대 박사지도교수인 왕밍밍의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여론조사에 1월20일 현재 1만916명이 응답해 중국 네티즌들의 열기를 보여주었다. ‘학술상 도덕관념의 해이이며 사람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는 의견이 4226명(38.71%), ‘무조건 왕교수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다. 그러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4506명(41.28%)이었다.

사건의 발생지인 베이징대학 내 분위기도 비슷하다. 왕교수가 징계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자 급격히 동정론이 힘을 얻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표절하는데 왜 왕교수만 문제 삼느냐는 식이다.

사실 중국에서 표절행위는 학계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다.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자 모두 쉬쉬하면서 덮어버렸기 때문에 이번처럼 표절행위가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중국에서 표절이 직접적인 사회문제가 된 경우는 99년 허페이(合肥)공업대학 양징안(楊敬安) 교수가 6편에 달하는 외국논문을 상습적으로 표절한 사건을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듯 이번 문제에 대해 학계는 일방적 비난보다 냉정하게 사태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관망론이나 동정론이 주를 이룬다.

왕밍밍 교수의 표절은 작년 7월 베이징대 중문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왕샤오셩(王曉生)이라는 학생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왕샤오셩은 지난 1월 발간된 ‘사회과학보’에 ‘베이징대 박사지도교수의 표절, 누가 실망하지 않겠는가’라는 글을 게재하고 표절사실을 폭로했다.

이 글이 인터넷을 통해 외부로 새나가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상에 이 사실이 알져지자 언론은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당연히 학계나 대학당국도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사건 발생 직후 베이징대는 왕교수의 모든 직무를 정지하고 학교 학술위원회를 중심으로 진상 파악에 나섰다. 동시에 처벌을 검토중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이것이 현실로 나타나면 왕교수는 표절로 처벌받는 첫 케이스가 된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초기 발언자인 왕샤오셩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음이 무겁다. 왕교수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당사자인 왕교수는 ‘베이징청년보’(北京靑年報)와의 인터뷰에서 “아무 생각이 없다. 기다려 보자”는 말로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지만 표절에 대한 공식 인정이나 사과는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책이 내 관심을 많이 끌었다”는 말로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 사건에 대해 동료 교수들의 의견도 기다려 보자는 쪽이 강하다. 베이징대 사회학과 학과장인 마지에 교수는 “이것은 학술적인 문제이므로 그 범위 내에서 비평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마녀사냥식 비난을 경계하고 나섰다. 이런 분위기는 중국의 저명한 인류학자 장하이양(張海洋) 교수가 왕교수를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나서면서 서서히 학계의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 덮어버릴 수 없다는 적극적인 비판 여론 또한 만만치 않다. 이 대학 매스미디어센터의 장이밍씨(張黎明)는 “학교측의 태도와 처리에서 이미 명확한 결론이 났다”며 이 사건은 학술계 반부패운동의 기폭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은 앞서 시나닷컴의 여론조사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세를 나타냈다. 전체 응답자의 11.05%인 1206명이 “이번 사건이 중국 학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결국 이 사건으로 중국 학계가 안고 있는 모순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표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한 중국 학계는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집안 단속을 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베이징대학으로서는 명성에 금이 간 것은 물론,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특히 이로 인해 갈라진 학내 의견을 봉합하는 문제는 왕교수에 대한 처벌이라는 민감한 문제와 더불어 대학당국으로서는 난제가 아닐 수 없다.

2002년 초 중국은 하나의 금기에 도전하고 있다. 더욱이 표절문제가 인테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발생하고 확산되었음을 생각하면, 앞으로 중국에서 인터넷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욕설과 비방이 난무했던 진용(金庸) 대 왕수아(王朔) 논쟁과 비교하면 이번 표절논쟁은 중국 네티즌들의 의식이 한층 냉철해졌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분명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주간동아 322호 (p84~85)

< 강현구/ 베이징 통신원 > so@263.net.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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